현대차 ‘일정한 거리두기’, HD현대 ‘적통(嫡統)강조’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자택에서 21주기 제사에 참여한 현대가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정몽용 현대성우홀딩스 회장이다. [사진=연합뉴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峨山) 정주영(1915~2001)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군 한국경제의 거목이다.

지난 20일 정주영 회장의 22주기를 맞아 고인이 생전에 살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는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손자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대선 HN 사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등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현대로템 등 정주영 회장이 만든 주요 기업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막상 현대가의 적장자 기업인 재계순위 2위 현대차그룹과 최근 HD현대로 이름을 바꾼 재계 9위 현대중공업그룹이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을 대하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현대차그룹이 정주영 회장과 연결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인데 반해 HD현대는 정주영 정신의 승계와 전파에 매우 적극적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 이 사진은 1985년 12월 1일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개점 당시 백화점 내부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당장 범현대그룹의 근거지가 된 울산만 가더라도 현대차 공장에는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조형물이나 시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현대중공업은 정주영기념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러가지 기념물이나 방문자를 위한 영상 등을 갖추고 있다.

얼마전 한 기관은 언론사와 함께 현대차그룹에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서적출판 등 기념사업을 제안했지만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반면 정몽준 이사장으로부터 아들 정기선 사장으로의 3세 승계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HD현대는 매년 이산봉사대상 시상식과 아산복지재단 주최로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 등에 대한 독후감 경시대회를 여는 등 정주영 기리기 작업에 열심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현대가의 가장 상징적 장소인 정주영 회장의 청운동 자택을 자신의 명의로 구입, 매년 기일이면 이곳에서 제사를 주재하면서 적장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면서도 정주영 창업주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지난 2000년 발생한 이른바 ‘현대그룹 왕자의난’을 그 이유로 든다.

정주영 회장은 작고하기 직전, 현대차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경영권을 차남 정몽구 회장 대신 5남인 고 정몽헌 회장에게 모두 넘기려고 했지만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이에 반발하면서 경영권 다툼,즉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당시 정몽구 회장측의 완강한 버티기로 현대차의 경영권은 정몽구 회장이 차지하게 된다.

이 때문인지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이끌던 시절 현대차의 뿌리를 정주영 회장에서 찾는 기념사업 등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의선 회장으로서도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판단이다.

현대차 그룹으로서는 이와함께 ‘포니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현대차를 오랫동안 경영하면서 첫 국산 승용차, 포니를 만들었던 정주영 회장이 동생이자 정의선 회장의 삼촌,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흔적도 적지않게 부담이 되는 요소다.

정세영 회장이 현대그룹 전체의 경영을 이끌던 시기, 그는 현대차 사장으로 근무하던 아들 정몽규 HDC 회장과 함께 현대차 경영권을 물려받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무산된 바 있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재계 서열 2위이자 현대가의 적장자 기업인 현대차의 이같은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삼성그룹의 이병철 창업주에 비해 정주영 회장에 대한 기리기가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고위 간부는 과거  “전경련 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재계를 이끌었던 정주영 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하려고 해도 현대차가 워낙 반대 내지 소극적으로 나오니 방법이 없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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