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3월 28일 – 크림전쟁의 시작

 크림전쟁의 배경은 무척 복잡하고 여러 나라의 이해가 얽혀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줄거리는 단순하다. 부동항 확보를 노리는 러시아제국이 남쪽 진출을 꾀한 것이고, 영토 침략의 위협에 처한 오스만제국, 러시아가 흑해를 통해 남쪽으로 세력을 뻗는 것을 원치 않은 영국과 프랑스 등이 러시아의 적이 되어 싸운 것이다. 

크림전쟁에서 진지를 사수 중인 러시아군.

 
 크림전쟁은 1853년 10월에 이미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정교회 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하며 오스만제국을 압박했고 이것이 크림전쟁의 직접적이고도 표면적인 원인이 되었다.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도나우강 연안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했다.
 
 먼저 전쟁을 선포했지만 오스만제국의 군대는, 유럽 전체를 제패한 나폴레옹 군대를 꺾고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러시아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오스만제국의 해군은 아나톨리아 북부의 항구 도시 시노페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에게 참패했고 다른 곳들에서도 연전연패를 면치 못했다.
 
 어쩌면 여기까지의 전쟁은 ‘크림전쟁’이라기보다는 오스만제국과 러시아제국의 국지전에 불과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진짜 참혹하고 비참한 ‘크림전쟁’은 1854년 3월 28일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한 군사력을 가진 여러 나라가 얽혀드는 바람에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기간도 길어졌으며 그와 비례하여 희생자도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흑해 안으로 볼록 튀어나온 반도로, 지금 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졌지만 그 대부분은 1년의 상당 기간 동토가 되어버린다. 그런 러시아에 따뜻한 남쪽 지방 흑해 연안은 정말로 매력의 땅이며 보고만 있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곳이다. 더구나 바다를 통해 그 아름다운 지중해는 물론 더 멀리 다른 대륙으로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 출구가 아니던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 회담의 도시 얄타도, 러시아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겨울에도 온화한 도시 소치도 흑해 연안에 있다. 

 크림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항구 도시 세바스토폴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러시아 세바스토폴 연방시 또는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 특별시라 불린다.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얻어낸 영토로 러시아에 합병되었지만 여러 나라와 유엔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와 같은 애매한 지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사실상 러시아 영토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영토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상’이라는 말이 실감 나듯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군과 영‧프‧오스만 연합군 양측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1854년 10월, 연합군은 세바스토폴 요새를 포위했다. 요새 안의 러시아군은 끈질기게 버텼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졌다. 게다가 1855년 3월 러시아제국의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세상을 떠났고 7월에는 세바스토폴 공방전의 영웅이었던 나히모프 제독마저 전사했다. 연합군은 사기가 꺾인 러시아의 세바스토폴을 집중 공략했고 349일 동안 계속되었던 세바스토폴 전투는 24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1855년 9월이었다. 이후 전세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패배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 보병 장교로 크림전쟁에 참전하여 바로 이 세바스토폴 전투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는 전쟁이 끝난 1856년 ‘세바스토폴 이야기’라는 단편 소설을 써서 크림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훗날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 이 소설에는 ‘인간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끈질기게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겨 있다. 

 “두 시간 전만 해도 고결하거나, 비열하거나, 가지가지의 꿈과 욕망에 차 있던 사람들이, 몇백 명의 사람이, 이제는 피범벅이 된 굳은 손발을 팽개친 시체가 되어, 능보에, 참호에, 이슬이 촉촉이 내린 꽃이 만발한 골짜기에, 세바스토폴의 장례 교회의 마룻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제와 그대로였다. 샛별은 사푼 산의 산마루 위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 장대하고 아름다운 태양이, 생기에 찬 온누리에 사랑과 행복을 약속하며, 또다시 둥실 떠올랐다.” - ‘세바스토폴 이야기’ 중

 “이 소설에서 누가 악한이고 누가 주인공이란 말인가? 모든 사람이 선하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악하다.” - ‘세바스토폴 이야기’ 중

 지금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찌 보면 크림전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따뜻한 남쪽 지방 흑해 연안을 손에 넣고자 하는 러시아의 야망이 담겨 있고 이를 막으려는 서방 세력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을 치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민간인 희생이 많다. 러시아군은 원정군이기 때문에 군인들 희생이 많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침략자이든 침략을 당한 자이든 인명은 소중하고 희생은 안타깝다. 톨스토이 말대로 누가 악한이고 누가 주인공인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끈질기게 전쟁을 하는가?’

 크림전쟁이 끝난 지 157년이 지났지만 인류는 아직도 톨스토이가 고뇌한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지만 매일 장대하고 아름다운 태양이 또다시 떠오른다는 점이다. 어쨌든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황인희 작가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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