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전기요금 인상안을 결정할 예정이었던 정부가 30일로 결정을 미뤘다. 지난해 3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했던 정부는 지난 1월에도 13.1원/kWh 인상해, 무려 4차례에 걸쳐 총 32.4원/kWh을 인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적자 규모는 32조 6034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한전은 사상 최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올해 전기요금을 ㎾h당 51.6원 인상해야 한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1분기에 이미 13.1원을 인상해, 계획대로면 앞으로 kWh당 38.5원을 더 올려야 한다. 가구당 전기요금을 월 8만원 이상 올려야 한다는 계산인 셈이다. 이는 서민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는 한전의 재무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인상하는 계획을 내놨고, 1분기 이미 13.1원을 인상했다. 계획대로면 앞으로 kWh당 38.5원을 더 올려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정부는 한전의 재무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인상하는 계획을 내놨고, 1분기 이미 13.1원을 인상했다. 계획대로면 앞으로 kWh당 38.5원을 더 올려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따라서 정부는 SMP(전력도매가격)상한제 재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 가구당 8만원 이상 올려야 하는 수준

한전은 지난 16일 전기요금 결정을 위한 연료비 조정 단가 내역을 산업부에 제출했다. 한전이 전기요금에 대한 의견서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제출하면 산업부와 기획재정부의 협의를 거쳐 요금이 확정된다. 한전은 1분기에 이어 2분기도 9.5%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한전의 인상안을 통과시켰지만, 기획재정부에서 전기요금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는 말이 정부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당초 산업부는 단계적인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역대 최대 영업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요금을 약 20% 올렸다. 유휴부지를 팔아 3조8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했지만 재무 개선은 요원한 실정이다.

한전은 올해도 밑지며 파는 중이다. 올 1월 기준 전기를 1㎾h당 164.2원에 사들여 147.0원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1㎾h당 17.2원을 손해를 보며 팔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올해 한전의 적자는 더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각 부처 간의 줄다리기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물가 고금리 과점체제 부작용으로 서민이 많이 어렵다”며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물가안정을 주문했다.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에너지 수요가 폭발하는 여름을 앞두고 서민물가와 직결되는 전기요금을 올리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2분기 전기요금 인상폭을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2분기 전기요금 인상폭을 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올해 전기요금 20% 이상 인상 못하면 윤 정부 내 한전 적자는 140조원 육박?

윤 정부 내 한전의 적자는 1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올해 전기요금 20% 이상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상반기에 전기요금을 못 올리게 되면, 하반기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내년 4월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표심잡기’에 나서야 하는 여야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동결할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시행된 ‘SMP(전력도매가격)상한제’의 4월 재시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SMP 상한제는 한전이 민간 발전사에서 사오는 전기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국무조정실은 SMP상한제에 대해 석 달 연속 적용하지 못한다는 조건을 달면서, 3월에는 중단돼 한전은 다시 원래 가격대로 전력을 사오고 있다. 적자가 다시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는 SMP상한제 ‘재시행’ 카드 만지작...2조원 이상 손실 본 민간 발전사업사들은 강력 반발

SMP상한제는 직전 3개월간 SMP 평균이 과거 10년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때 발동된다. 이때 한전은 국제 연료값이 아무리 뛰어도 10년 평균가의 1.5배에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할 수 있다.

SMP상한제 시행으로 2022년 12월 한전의 전력구매단가는 ㎾h당 약 160원으로, 실제 SMP와 비교해 한전이 80~110원가량 싸게 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한전이 절감한 비용만 3개월간 2조1000억원 정도에 달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한전의 적자를 민간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SMP상한제 시행 이후 민간 발전사업사들의 손실 규모가 2조원에 이르고, 30%가 넘는 업체들이 적자 경영에 빠졌다며 관련 단체들이 제도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민간 발전업계는 지난해만 3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의 경영악화를 SMP상한제로 막는 건 '언발의 오줌누기'라며 민간의 동반 부실을 초래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한국집단에너지협회 등 12개 에너지협단체는 21일 서울 LW컨벤션센터에서 SMP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에너지협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전의 경영 부담을 줄이고자 시행한 긴급정산상한제로 적자 개선은 되지 않고 민간 발전사 적자만 야기하고 있다"며 "민간 발전사는 지난 3개월 동안 시행된 SMP상한제로 추정 손실액이 2조원을 넘어서는 등 고통이 극심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협단체는 SMP상한제가 △정부의 시장원칙 기조 위반 △한전 적자 개선 불가능 △민간 투자 위축 등의 문제를 초래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집단에너지협회를 비롯한 국내 11개 에너지 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중구 LW 컨벤션센터에서 SMP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집단에너지협회를 비롯한 국내 11개 에너지 단체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중구 LW 컨벤션센터에서 SMP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기요금 인상률 낮추기 위해 대기업 계열 발전사들에게 부담 넘길 듯

SMP상한제로는 근본적인 한전의 적자를 개선할 수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홍기웅 전국태양광발전협회장은 "한전 적자 원인은 국제 에너지수급 불안에 따른 에너지가격 상승에 있다"며 "SMP상한제로 33조원에 달하는 한전 적자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올여름 전기 소비자의 냉방비 폭탄을 막기 위해서는 SMP상한제가 고려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냉방은 무조건 전기를 써야 하는데, 이미 지난해에 비해 약 30% 정도 오른 전기요금이 벌써부터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폭염으로 인한 사망위험률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MP상한제는 3월 한달간 정지돼 있는 상태이고, 4월 재개 여부를 앞두고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기 소비자에게 냉방비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지난 석 달간 SMP상한제 시행으로 인해 한전은 매달 6000억~7000억원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용을 줄인 만큼 적자 증가 속도는 늦춰지고,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 폭을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지난해 한전이 역대급 적자를 내는 동안 SK나 GS, 포스코 같은 대기업 계열의 민간발전사들이 작년 3·4분기까지 벌어들인 돈이 2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기업의 이익을 뺏어 한전의 적자를 메우는 방법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한전의 적자를 메운다는 의미보다는 전기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한시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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