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3월 24일 – 과학 소설의 아버지, 쥘 베른 사망

 과거에는 먼 미래였던 오늘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한 대표적 작품으로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꼽는다. 조지 오웰의 <1984>는 1946년에 집필되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통제는, 오늘날 곳곳에 설치된 CC-TV, 다양한 스마트 기기 등으로 개인 정보를 드러내고 감시당하는 우리의 삶을 연상하게 한다. 그보다 앞서 1932년에 발표된 <멋진 신세계>는 당시 포드 자동차에서 시작한 대량 생산을 풍자하고 거기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이다. 작품 속 시대 배경은 아주 먼 미래인 서기 2540년이지만 2023년의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가 작품 속에 그려낸 것들에 생각보다 빨리 다가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복제 인간의 ‘생산’이다.  

 예측에 가까운 미래를 그려낸 작가로서 쥘 베른을 빼놓을 수 없다. 쥘 베른이라는 작가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그가 쓴 <80일간의 세계 일주>, <해저 2만 리>, <15소년 표류기> 등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과학 소설 개척자로,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아방가르드 문학과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준 작가로 여겨진다. 그는 오늘날 유행하는 장르 소설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아예 그를 예언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쥘 베른.

 그가 쓴 작품 <기구를 타고 5주일(1863)>, <지구 속 여행(1864)>, <지구에서 달까지(1865)>, <달나라 탐험(1869)>, <해저 2만 리(1869)>, <80일간의 세계 일주(1873)> 등에는 당시로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지구 속이나 달나라, 깊은 바다로의 여행을 다루고 있다. 또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거의 불가능한 목표를 이뤄내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해내려니 아직 발명되지 않았거나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전인 잠수함, 잠수용 수중 호흡기, 텔레비전, 우주선 등 앞선 과학 기구가 그의 작품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쥘 베른은 1905년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상상했던 기구들은 이제 모두 현실이 되었다. 달나라나 깊은 바닷속 여행이 가능해진 것도 이미 오래전이며,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80일은 고사하고 사흘도 채 안 걸린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예언자라 부르는 것이다. 

'80일간의 세계 일주' 책 표지.

 

 쥘 베른같이 대단한 상상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 자체도 별로 창의적이지 못하지만 나 나름대로 그의 삶에서 두 가지 계기를 꼽아보았다.
 
 첫째, 쥘 베른이 어린 시절 만난 낭트의 기숙학교 선생님 삼빈 부인의 영향이다. 삼빈 부인의 남편은 그로부터 30년 전에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삼빈 부인은 학생들에게, 해군 선장인 남편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어느 무인도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며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린 쥘 베른의 상상력은 무척이나 활발해졌을 것이다. 

 둘째, 친척 프루뎅 알로트와의 만남이다. 쥘 베른은 휴일이면 알로트의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며 지냈는데 알로트는 쥘에게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제 알로트는 선주로서 외국 여행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알로트의 영향이었을까? 쥘 베른은 열한 살 때 인도에 다녀올 계획을 세운다. 인도에서 산호 목걸이를 가져와 사촌 캐롤린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쥘 베른은 허드렛일을 해주기로 하고 돛대가 세 개 달린 범선에 올랐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 피에르 베른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 아버지가 “여행은 상상 속에서만 해!”라고 야단쳤다는 얘기도 있다.  

 변호사였던 피에르 베른은 장남인 쥘 베른이 자신을 따라 변호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실제 쥘 베른은 법률을 공부하여 법률가로서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법률가로 살기보다는 당시는 환상과 같이 여겨지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기를 원했고 80여 편의 과학 소설과 모험 소설을 써 냈다.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쥘 베른이 살았던 시대 이후 100년 동안 이룬 발달 상황을 지금은 10년 이내에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의 모든 과학 분야가 발달하여 더 이상 쥘 베른처럼 미래 예측에 가까운 상상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문명은 계속 진보할 것이고 그 기술 발달이나 진보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쥘 베른의 재능이 앞서 얘기한 삼빈 부인이나 푸르뎅 알로트 덕분에 계발되었는지는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은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하고 사는가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류 문명 진보에까지 이어지는 어린이들의 상상력 계발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을까? 남편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어느 무인도 살고 있을 것이라는 삼빈 부인의 실감나는 이야기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알로트의 낯선 외국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상상력을 무한대로 키웠을 어린 시절의 쥘 베른. 그런 모습을 우리 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황인희 작가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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