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그들의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에 만나는 많게는 수십,수백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정치인의 숙제이자 중요한 자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덧씌워진 이미지와는 달리 군인 시절부터 사람을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이 비상했다고 한다. 수십명이 모인 자리가 끝날 무렵이면 얼굴과 이름을 전부 외워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돌아온지 한참 지나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스무명 가까운 참석 기자들 뿐 아니라 그 배우자의 이름, 집 전화번호까지 미리 외워와서 자신의 암기력을 뽐낸 일도 있었다.

3선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동갑내기 정치인이지만 대인관계에 있어 정반대의 특성이 있었다.

김문수 위원장은 사람을 잘 못알아봐서 같은 사람을 여러번 만나도 계속 명함을 주는 습관 때문에 상대방을 섭섭하게 만드는 일이 잦았고, 정몽준 대표는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와! 정말 오래간만입니다”라고 인사해 어리둥절하게 했다.

나중에 정몽준 대표는 이렇게 해명했다. “예전에 만난 사람을 못 알아봐서 섭섭해하는 일이 많이 생기다 보니까 아예 오래간만입니다로 인사를 바꿨다.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이 어리둥절 한 것이 만난 적 있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하더라.”

1970년대 학생운동 출신으로 가장 오랜기간 노동자 생활을 한 김문수위원장은 진정성과 성실함이 정치적 자산이었다. 경기도 부천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한여름밤에 폭우가 쏟아지자 개천이 범람하지나 않을까 밤새도록 쪼그리고 앉아서 감시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김문수위원장의 성실함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큰 타격을 입은 20대총선 대구출마에서 오히려 독(毒)이 되기도 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새벽 4시면 일어나 수성구의 약수터를 돌면서 명함을 주면서 인사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반면,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있던 경쟁자 김부겸 후보는 아침 9시가 돼서야 집을 나서는 식이었다.

이른 새벽 약수터에 나타나 살갑게 안사하고, 손을 잡고 하트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김문수 후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뜻밖의 ‘민원’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아니 나흘이나 연속 약수터에서 봤는데 똑같이 명함을 주고 사진도 또 찍자 그러고...”

결국 당시 김문수 캠프에서는 후보가 직접 명함을 돌리지 말고 명함은 옆에 수행원이 대신 돌릴 것, 약수터에는 맨날 같은 사람들이 오니까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는 한 먼저 사진찍자고 하지말 것 등등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김문수위원장이 처음 경기도지사가 됐을 때도 도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몇번을 만났는데 명함을 주고 또 주고...”였다. 고위 간부인 실국장들이 가자들과 만나 서로 도지사한테 받은 명함 개수를 자랑(?)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한 보좌관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김문수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사람아. 일이 중요하지 이름이 뭐가 중요해. 그리고 이름과 얼굴 같은 신상에 너무 집착하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거짓말 재판’이 점입가경이다.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시절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처장급 간부로 대장동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문기 전 처장을 이 대표가 몰랐다고 한 것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다.

김문기 전 처장의 유족들은 그가 이재명 대표의 “모른다”는 발언에 큰 충격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또한 자신이 이 대표에게 등을 돌린 이유로 김 전 처장의 죽음과 이 대표의 ‘거짓말’을 들고 있다.

대장동 같은 중요사업에 대해 여러차례 대면보고를 했고, 호주로 함께 출장을 가서 여러날을 보내며 골프장에서 같은 카트를 타고 4시간동안 골프까지 쳤던 동반자 김문기 전 처장이 과연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는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이에대해 이 사건의 1차 재판에서 이재명 대표의 변호인단은 “(어떤 사람을)안다는 것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변론을 펼쳤다. 수십번을 만났어도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최애제자’ 베드로는 예수가 체포된 직후 자신도 붙잡힐 위기에 놓이자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다. 모르는 사람도 아는 척하는게 정치인의 숙명이건만, 이재명 대표는 지금 베드로의 길을 걷고있는 것일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