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 홍준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미국에서 외교적 망신을 당하고 돌아오자 '문재인 대통령 힘내세요'라는 국민청원이 10만을 넘겼다. 이 정도면 청와대 국민 게시판이 웬만한 연예인 팬 사이트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국가 지도자를 지도자로 보는게 아니라 무슨 TV속 연예인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한 나라의 정상을 비꼬는데도 실실거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송출된 것으로 모자라 한국의 국민 수준도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생겼다. 베네수엘라를 파국으로 이끈 차베스와 그를 아직까지도 영웅시하는 자들을 보며 우리가 혀를 끌끌 차듯이 세계인들도 우릴 보며 혀를 찰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26일 영국 BBC는 유튜브를 통해 '한반도의 양 지도자들이 깜짝 '할리우드식' 미팅을 했다'는 제목으로 영상 한 편을 올렸다. 청와대가 배포한 남북정상의 만남에 장엄한 할리우드식 음악이 깔리고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된 영상을 '할리우드식'이라며 비웃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영국의 체임벌린이 우매하게 히틀러에게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국이 양국 정상의 만남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 정도로 비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가의 지도자이자 거짓말쟁이, 독재자와의 만남에 감격하는 한국인들을 조소하는 상황이다.

베를린 신문(Berliner Zeitung)에도 이날 북한 문제와 관련한 문 대통령의 외교를 비꼬는 만평이 실렸다. "내가 급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라며 북한 길들이는 트럼프의 급제동에 문 대통령이 벽에 붙어버린 모습을 그렸다. (글 마지막에 첨부한 사진 참고)

북한은 강력한 국제제재로 갈 곳을 잃자 대화에 나섰다. 국제적 구걸이자 할리우드 뺨치는 연기였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평화로 향하는 제스처로 보였나 보다. 결국은 '자금줄 문제'이기에 미국은 단호했고, 중국의 시진핑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핵화의 의지를 표명하며 개방하겠다고 나선 북한은 중국을 등에 업자마자 보란듯히 비핵화 압박이 과도하다며 미국을 향해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남북간의 정상의 만남에 무언가 대단한 듯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치곤 북한은 그 진면목을 일찍 드러냈다.

실험경제학에 '최후통첩 게임' 이론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내쉬 균형 이론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최후통첩게임은 잃을 것이 없는(Nothing to lose)의 플레이어와 얻을 것이 필요한(Something to need)의 플레이어가 붙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게임 이론이다. 국제 제재로 말라죽게 생긴 북한이었다. 결국 국제적 고립이 그들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잃을 것이 없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북회담을 취소하고 나섰다. 당시 주요 외신들은 이에 대해 북한을 길들이고 중국을 압박하는 협상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한반도 운전자론이니 평화니 주창하던 문재인 정부는 다급히 북한을 만나러 판문점으로 뛰어갔다. 협상을 할 줄도 모르고 주도권을 잡을 줄도 모르니  열심히라도 뛰어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동안 심했었나 보다. 어떤 말들이 오고 갔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고 청와대는 답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인기가 높다”고 하자 김정은이 “다행입니다”라고 답변했다고 말이다.

김정은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굽신거렸다면 CVID같은 심각한 주제는 역시나 얼버무렸을 공산이 크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어떤 워딩을 근거로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판단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추가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북한이 CVID를 수용했는가"라는 질문에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거듭 말씀드렸기 때문에 저의 거듭된 답변이 필요하지 않다”며 둘러댔다. 비핵화는 커녕 그냥 가서 북한 달래주고 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다. 왠만한 정신 똑바로 박힌 국민들이라면 이미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감성으로 다가가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진 정부다.

결국 중국이 북한을 살살 달래고 북한이 남측에게 징징대니 청와대가 우둔하게 끌려 들어갔다. 이정도까지 왔으면 미국은 '중-북-남 vs 미-일' 로 관계를 재정립하고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한국 정부를 배제하자는 의견이 나와도 놀랍지 않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비핵화를 향한 운전대는 고사하고 시속 100km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밖으로 발로 차내 버려질 수도 있다.

마음씨가 따뜻하다 못해 우둔함마저 사랑하는 세력들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외교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니 적폐타령같은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갇혀 문재인은 선(善), 그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은 악(惡)으로 낙인찍는 '창의성'이 나오고 있다. 지도자를 연예인 보듯이 하니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트럼프 앞에서 웃어대는 모습이 국가적 망신으로 보이지 않고, 경제가 작살나도 "그래, 우린 이 어려운 난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라며 스스로 최면을 걸게된다. 이 와중에 꽤 똑똑하다고 알려진 인물이 "미국 나쁜놈!"이라고 한 마디 외쳐주면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라며 이성의 도구화 과정에 이른다.

'민족'과 '평화'라는 허구가 무서울 단계까지 왔다. 북한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건 거짓말을 했건 이 정권에겐 중요하지 않다. 민족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는 독일어로 곧 나치(National Sozialist)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에 그렇게 묘사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치만큼 민족과 평화를 주창한 정당도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힘이 있으니 동등한 외교가 가능한 것인데, 평화같은 감성팔이로 외교가 될 것으로 착각한다. 국가통치를 감성으로 하니 경제를 작살낸 것으로 부족해 외교·안보도 작살낼 지경에 이르렀다. 민족과 평화라는 허구적 세계에서 언제쯤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차릴 셈인가.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그가 전 유럽의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위험인물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인들 중 일부는 자신들과 비슷한 정치 성향의 집단이 승리한 것, 게르만이 승리한 것에 대해 기뻐했다는 점은 우리가 다시 상기해 봐야 할 대목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베를린 신문(Berliner Zeitung)에 소개된 만평.
트럼프, "내가 급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북한 길들이는 트럼프의) 급제동으로 벽에 붙어버린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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