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쉬어가는 WBC 대표팀, 분위기 수습 총력.2023. 3. 10.(사진=연합뉴스TV)
하루 쉬어가는 WBC 대표팀, 분위기 수습 총력.2023. 3. 10.(사진=연합뉴스TV)

지난 금요일 저녁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한·일전이 있었다. 수일 전부터 요란스러운 예고방송들이 이어지더니,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지상파방송 3사가 동시 중계방송을 내보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객관적 전력과 무관하게 필승을 확신하는 애국 열기에 가득 찬 중계였다. 한국 프로야구와 국가대표팀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는 이미 재작년 올림픽에서 확실히 검증되었고, 그 이후에도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힘든데 말이다.

실제로 경기 내용은 실망을 넘어 '폭망'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제대로 된 프로리그조차 없는 호주에게 졌을 때, 한·일전 대패는 이미 예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프로팀과 고교 팀 대결 같았다. 일본 측에서 보면 그야말로 ‘도쿄 대첩’이었다. 중계방송 도중에 인터넷 온라인에 올라온 댓글 중에는 안타까워하며 응원하는 내용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창피해서 못 보겠으니 중계를 끊으라는 소리가 훨씬 많았다. 심지어 일본 팀을 응원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댓글 중에는 “이렇게 형편없이 지는 것 보여주기 위해 방송 3사가 함께 중계하는 게 맞는가”라는 비판도 많았다. 차라리 정규 편성되었던 ‘모범택시 2’를 방송하라는 댓글도 있었다. 하긴 방송 3사를 합한 시청률이 11.7%이었으니, 평균 시청률 15% 내외였던 ‘모범택시 2’보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KBS2 채널은 3사 중에 제일 낮은 3.5%에 그쳤다.

그럼에도 방송 3사는 여전히 굳건하게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한국 팀 경기들을 동시 중계하고 있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국 팀 경기는 지상파방송 3사의 몫이었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한국과 다른 국가 간에 벌어지는 국가대항전’처럼 비추어지고 있는지도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상파방송 3사 간에는 ’안락한 독과점 구조‘가 관행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치 “특종은 못해도 되지만, 낙종은 용서되지 않는다”라는 언론계의 오랜 격언을 연상케 한다.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질적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크게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중계 수수료를 세 방송사가 나누어 지불하면서, 동시에 편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중요 국가 행사나 국제 경기는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보편적 접근권(universal access)’을 들어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보편적 접근권은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지상파방송사들이 모두 방송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민적 관심사를 특정 유료 방송이 독점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접근 불평등을 막자는 취지다. 더구나 상업방송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공영방송 목표에도 맞지 않다.

이처럼 경쟁 없는 공생 체제는 우리 방송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온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미스터 선샤인’ ‘오징어 게임’ ‘파친코’에 이어 최근에는 ‘카지노’ ‘더 글로리’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OTT들의 공세에 국내 방송이 맥을 못 추고 있다. 국가대표 OTT를 표방하고 거창하게 출범했던 웨이브도 침몰 직전이다. 이 역시 경쟁 없는 안락한 공생 체제가 만들어놓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 WBC 중계방송은 우리 방송의 본질적 문제점을 또다시 드러내 주고 있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공영방송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방송이 글로벌 매체들의 공세에 완전히 무기력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야구와 방송이 동반 몰락한 원인을 경쟁 없는 안락한 과점체제라는 공통 원인에서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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