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구조의 집들 앞에 ‘결사옹위’라는 선전구호가 보인다. (사진= 강동완 교수)
똑같은 구조의 집들 앞에 ‘결사옹위’라는 선전구호가 보인다. (사진= 강동완 교수)

“예로부터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큰 설움이라고 일러왔습니다.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다람쥐도 제 굴이 있다는데 제 몸담을 변변한 집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며 행랑살이하는 사람들의 설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 공화국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설움을 모르고 삽니다. 심지어 집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국가에서 지어준 궁궐같은 새집을 무상으로 받아안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사회에 사는 우리 인민은 정말 행복합니다.”

북한 주민이 실제로 사는 집의 모습 (사진= 강동완 교수)
북한 주민이 실제로 사는 집의 모습 (사진= 강동완 교수)

위에서 인용한 글은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메아리>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도 아직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집을 공짜로 준다니 조금 솔깃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저토록 자랑하는 무상주택의 실상은 어떠할까요?

지난 25일 김정은은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지요. ‘사랑스런 자제분’이라 불리는 자신의 딸 김주애와 함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2023년도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 건설과 별도로 수도 평양의 북쪽관문구역에 4,000여세대의 살림집을 일떠세워 옹근 하나의 특색있는 거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대상건설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과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 통채로 맡기기로 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청년돌격대는 대규모 국가적 사업(댐, 도로 등)을 위해 자원한 청년들로 구성됩니다. 주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지요. 북한이 백두산 댐을 지을 때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가 주축이 되었습니다. 당시 열악한 건설장비로 인해 물속에 직접 들어가 ‘인간 다리’를 놓기도 했었지요.

이번 서포지구 건설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백두산청년영웅돌격대’로 불리는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전국에서 10만 명이 탄원(자원)했다는 점입니다. 착공식 이후 ‘조선중앙TV’는 연일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 원수님’, ‘친아버지’ 이미지를 강조하지요. 건설장 선전 포스터에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새겨졌습니다. 착공식에 동행한 딸 김주애는 김정은을 ‘친근한 아버지’의 상징적 이미지로 만드는 광고모델이었습니다. 대외적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닌 딸을 둔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이미지 연출은 김정은의 본색을 숨기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포동포동하게 살찐 김주애의 모습과 건설장에 동원된 청년들의 깡마른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김정은의 연설에 이어 첫 삽을 뜨고 시험발파를 하는 등 온갖 이벤트가 연출된 착공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한창 꿈을 꾸고 미래를 만들어갈 청년들이 건설현장에 강제로 동원되어 청춘을 바쳐야 하는 노동착취의 현장일 뿐입니다. 평양 수도 건설사업에 탄원하여 영광이라며 눈물까지 흘리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은 진정 무엇을 의미할까요? 평양을 혁명의 수도라 치켜세우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김정은과 그의 추종세력들이 사는 그들만의 세상입니다. 인민의 낙원이라 선전하지만 정작 인민은 없지요.

서포 지구 건설장에 설치된 선전구호에 ‘아버지원수님’이라는 글귀가 보인다(사진 조선중앙TV)
서포 지구 건설장에 설치된 선전구호에 ‘아버지원수님’이라는 글귀가 보인다(사진 조선중앙TV)

한번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지요. 만약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서울의 어느 건설장에 동원 되었습니다. 물론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하지요. 그들이 밤낮으로 잠도 자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4,000세대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그곳에 입주하는 서울시민들은 과연 어떤 마을일까요?

무상으로 집을 줘 너무 행복하다는 선전문구를 보며, 문득 제가 북중국경에서 직접 촬영한 북한의 어느 마을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조선 시대 때나 봄 직한 기와집과 초가지붕으로 엮은 집들이었지요. 저런 곳에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굳이 사족을 달면, 정말 북한이 무상주택을 한다고 여전히 믿고 계신 분은 안 계시겠지요? 그런 분들을 굳이 종북좌파라 부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도 북한이 좋으시면 북한에 가서 한번 살아보시면 어떠실는지요. 단,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 필수조건입니다.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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