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은 ‘감성독재’에 유달리 관심많아...'민족'이라는 '감성침투' 경계해야
경제 강국인 일본이 잘사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객관화'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인의 관심 대상이었던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 대한 취소를 통보했다. 한미정상회담이 있은 직후의 발표고, 미북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지대할 것이라고 믿었던 터라 더욱 놀랍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감동적으로 치루는 행사를 보여줬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 간 평화가 다가오는 듯 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평화를 이루려는 남북한의 공동의지를 미국에 전달하고,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민족끼리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북한을 너무 감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전쟁을 일으킨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실상을 보기 보다는 탈선한 가족 정도로 생각한다. 이번 미북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핵 폐기였다. 그리고 북한 핵에 치명적으로 노출된 나라는 한국이다. 따라서 북핵 폐기에 가장 민감해야 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설마 같은 피붙이인데’ 하면서 위험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수준이다. 

우리는 북한을 민족이라고 부른다. 민족은 전근대적 공동체를 나타내는 다소 공허하면서 추상적인 개념이다. 조선시대에선 민족이란 말이 없었다. 양반이 지배하는 엄격한 신분세계에서 모든 백성을 아우르는 민족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도 없다. 때문에 민족이란 용어는 조선시대 이후에 사용됐고, 특히 일제하에 독립에 대한 염원을 민족이란 용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방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이란 용어의 순기능은 딱 거기 까지다. 대한민국은 자유의 나라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 가치도 자유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수준은 자유가치보다 민족을 우선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6.25 전쟁은 같은 민족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침범한 전쟁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보다 민족에 더 가치를 둔다. 

북한 핵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민족이란 이름의 자금에 의해 개발됐다. 북한은 우리가 민족이란 용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민족이란 용어 바이러스로 우리 국민의 사고를 마비시키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을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협박할 수 있는 핵을 완성했다. 북한 핵의 최대 피해 집단인 한국은 북한 핵 위험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지도 마비됐다. 요사이 유달리 ‘우리 민족끼리’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유사한 이름을 한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가 처한 위험한 환경에 대한 인신이 더욱 둔감해져 간다.

탈북시인 장진성 시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북한 김정일은 ‘감성독재’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북한은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의 대남공작을 폈다. 물리적 침투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우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고도의 공작이 ‘감성침투’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 인지하는 것보다, 감성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감성을 점령하기 위해선 우선 감성공격에 가장 효과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아마 우리가 가지는 인식방패에서 가장 깨어지기 쉬운 취약한 부분이 ‘민족’일 것이다. 그래서 민족 바이러스가 퍼짐으로 인해, 이제 우리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을 개발한 북한에 대해 조심스런 경계보다는 민족이란 띠를 두르고 판문점 공동선언에 감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은 경제 강국이다. 잘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일본인은 그들의 문제를 놀랄 정도로 객관화시킨다.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시각으로 조명함으로써 문제를 밝히고, 해결방안은 제시한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시각으로만 보면, 모든 게 이유가 있고, 아릅답다고 평가하고 자위한다. 그래서는 절대 그 집단은 발전할 수 없다. 북한은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핵 개발로 세계를 많이 놀라게 했다. 그때 마다 당사자인 한국에선 핵에 대한 공포도 없고, 단순한 사건 혹은 사고 뉴스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의 언론매체는 연일 북한 핵의 위험성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국민을 교육시킨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청와대의 발언과 한국 언론매체들의 보도는 완전히 민족에 취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찬양하는 수준이었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장이 흘린 감동의 눈물에는 국민생명을 걱정하는 자리의 무거움이란 없었다. 그 어디에도 우리를 객관화시켜, 냉철하게 보는 시도가 없다. 미국의 수많은 언론에선 북한의 의도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객관화를 배제하고, 철저히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관적 감성에 빠져 있었다.

민족이란 시각으로 북한을 보면, 모든 게 이유가 있고, 그래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의 문제를 좀 더 객관화해서 우리를 냉철하게 봐야 한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상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교활함을 저술한 찰스 조이(jCharles Joy)의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는 현재 북한을 보는데 좋은 교훈을 준다. 여러 가지 내용 중에서 특히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인용한다.

“공산주의자의 약속은 믿지 마라; 공산주의자의 행동만 믿어라”
“공산주의자들은 상대편이 양보하면 이를 상대편이 약하다는 신호로 본다.”
“대전투에서 자유가 승리자가 되려면 협상이 자유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공산주의와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현진권 객원 칼럼니스트(前 자유경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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