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한반도의 봄’ 강조하던 일련의 보도행태들을 문제삼는 목소리 커져
트럼프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은 왜곡-축소보도
애써 모른척 평화만 기대하는 미화·왜곡 보도...오역 논란 이어지기도
국내언론 통해 소식 접하던 국민들도 '잘 되고 있구나' 생각하다가 날벼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미국 현지시간) ‘미북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와 상당수 언론이 연일 떠들던 ‘한반도의 봄’ 기운이 멈칫한 모습이다. 취소되기 전날까지도 ‘한미 정상이 미북정상회담 성공 노력’,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루어진 훈훈한 분위기와 농담’ 등 낙관적인 모습만 전하던 언론사들이 무색해진 양상이다. 이에 따라 제대로 된 현안 파악을 토대로 전략 논의를 이어가기보다는 맹목적으로 ‘한반도의 봄’에만 취해있던 일련의 보도행태들을 문제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가오는 봄 기운에 발맞춰 정부와 언론은 ‘한반도의 봄’ 기운만 부추기는 모습이었다. 지난 1월에는 평창올림픽에 힘입어 남북 한반도기 공동입장과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 등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고 지난 2월 11일에는 북한 예술단의 서울공연이 이뤄졌다. 4월 1일에는 우리나라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 봄이 온다’를 이어갔다. 지난 4월 말 치러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피날레로 ‘하나의 봄’이라는 공연이 이루어지며 봄 기운과 설렘을 극대화시켰다. 언론에서는 한미·남북·미북 간에 이뤄지는 논의와 관련해 상호 간에 웃는 모습의 사진들이 연일 메인뉴스를 차지했다.
 

(좌측 상단부터) '평양공연 - 봄이 온다', 남북정상회담[판문점 선언], 한미정상회담 관련 보도에 자주 활용된 사진들

문화적인 교류와 상호간 대화 등 모두 감정적인 교류를 통해 관계 개선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약속 번복 등을 모두 무시한 채 봄기운 이미지와 감성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直視)하는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았았다.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되는 부분도 낭만과 설렘, 웃음으로 일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옴에도 언론은 설레는 여론을 부풀리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같은 보도는 국민들에게 현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를 돕기보다는 무분별한 감성만 자극하며 호도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오히려 현실에 기반한 ‘불편한 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차단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트럼프의 '미북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은 왜곡-축소보도

포털 네이버의 ‘많이 본 뉴스’ 등에 배열된 기사들은 회담의 겉핥기식인 ‘성공 노력’이라는 보도만 이루어졌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취소 가능성을 시사한 부분은 국내 언론 환경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트럼프 발언이 무시됐다고 느껴질 만큼, 차질이 생긴 모습은 찾기 힘든 모습이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와 KBS 모두 <한미 정상 “북미 정상회담 차질 없는 진행에 최선”>이라는 논조의 제목들이 올라왔다. 트럼프 발언은 애써 모르는 척 왜곡-축소 보도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언론은 트럼프의 발언에 큰 무게를 두기보다는 '의례적인 외교수사'를 배치해 국민들로 하여금 ‘잘 진행되고 있구나’, ‘진척이 있구나’ 하는 생각만 이어갈 수 있도록 호도하는 모습이었다. 성공 노력, 해소 방안 논의, 부드러운 분위기 등을 나타내는 보도들이 상위권에 올랐으며 23일 오전 7-8시 많이 본 뉴스에는 김정숙 여사가 미국 부통령 부인과 오찬을 통해 평화에 대해 논의 했다는 기사가 많이 본 뉴스 2위에 오르기도 했다.이후 시간대에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국내 언론사도 갈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 ‘많이 본 기사’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트럼프의 발언은 자취를 감췄다. 국내 취재진이 핵실험장 폐기식 참관을 거부당했다가 다시 허가받은 극적인 변화를 전하는 내용이기에 관심이 집중됐을 수 있지만, 곧 있을 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려 모든 관심이 집중됐던 상황에 과연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발언을 했어도 한미정상회담과 관련된 보도가 자취를 감출지 의문일 정도의 기이한 언론 환경이었다. 

애써 모른척 평화만 기대하는 미화·왜곡 보도...오역 논란 이어지기도

이외에도 회담 분위기를 훈훈하게 미화하거나 좋은 모습만 부각해 보이려는 듯한 노력도 엿보였다.

회담 관련 '신뢰, 행운' 키워드가 추가된 검색결과

22일(미국 현지시간) 이루어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자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자역할로써 우리 대통령을 얼만큼 신뢰하느냐?’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인 것은 한국에 행운이다", "그에게 통역해줘라", "나 잘했지 않나. 이보다 더 대답을 잘 해줄 수는 없을 것 같다.(Did I do a good job? Huh? I can’t do better than that. That’s called an A-plus rating, right? I can’t do better")"라고 답변했다. 이에따라 대다수 언론은 농담도 이어진 훈훈한 한미정상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은 실상 의례적인 외교수사에 가까우며 실질적인 외교적 알맹이는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한 언론에서 인용한 보도 외에도 표현된 '해석해줘라' 등의 표현을 굳이 활용한 것은 '이정도 칭찬해준다' 식의 외교적 결례라는 논란도 제기됐다. 이외에도 언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역할이 'A+'라고 평가했다는 식의 보도가 이루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평가를 한' 자신에게 A+를 줬다는 해석이 더 올바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A+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회담 막바지에 이루어진 JTBC 기자의 추가 질문과 관련해서는 오역 논란도 불거졌다. 시간이 길어지자 백악관측에서 회담을 마무리하려는 시점인 상황이었다.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친(親)정부 기자이니 질문하게 두라'면서 문 대통령과 JTBC 기자는 질의문답을 이어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대답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에 들은 말일 것이니 통역으로 들을 필요가 없다(And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며 기자와의 시간을 자체 종결시켰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풀 기자들은 해당 부분을 '"통역이 필요 없겠다.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함'이라고 적어 기자단에 공유했다. 대다수 언론도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기에 훈훈하게 마무리됐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좋은 말이어서 통역을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며, 억지 미화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외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 취소 서한을 공개하자 오역 논란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성한 서한의 서두는 “우리는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회담에 관련하여 당신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We greatly appreciate your time, patience, and effort with respect to our recent negotiations and discussions relative to a summit long sought by both parties, which was scheduled to take place on June 12 in Singapore.)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언론 보도는 급하게 받아쓴 탓인지 ‘with respect to’를 ‘존중을 갖고’라고 번역했다. ‘with respect to’는 ‘~에 관한'이라는 격식을 갖춘 표현으로 활용된다.

한편 평화 무드를 이어가던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하던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미북 정상회담 취소’에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미국만 과도한 요구를 하며 일방적으로 회담을 취소해 이상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 언론을 통해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 미국은 같은 논조로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왔다는 것이 지배적인 중론이다.

이같은 오해는 국내 언론이 희망과 낙관에 기대어 현실과 괴리된 보도를 이어간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언론이 좀더 국민들이 현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보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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