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 전시장에서 2년만에 처음으로 국정연설을 진행했다. 단상 정면 가운데엔 러시아 제국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국장 '쌍두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년만에 처음으로 국정연설을 진행한 날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특히 우려하게 된 연설 부분이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연방 국회의원들과 최고위 당국자들이 모두 자리한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 전시장에서 국정연설을 하던 도중 러시아가 미국과 체결했던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의 준수 중단을 선언했는데, 여기서 미국의 우려가 심화됐단 평가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협정에 복귀하는 조건으로 미국만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핵무기 또한 통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의 연설 부분은 상대 진영에 늘 해왔던, 일상적인 비난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그 외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땅'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단계적 과업을 신중하고 일관되게 수행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지적 갈등을 세계적인 대립 단계로 전환하길 원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동맹국인 미국과 유럽"이라며 전쟁의 책임을 돌렸다. 

약 2시간 넘게 이어진 연설 동안 푸틴은 서방에 대한 비난을 이어 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이전부터 서방과 무기 공급에 대해 의논했다"며 "전쟁을 일으킨 건 서방이고, 억제하려 한 건 우리였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확전의 책임은 서방 엘리트에게 있다"고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러시아가 어렵고 결정적인 시기를 거치고 있다"라고 진단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돈바스 방어를 위한 우리 작전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를 패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란 말도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그가 거의 2년 만에 처음으로 국정연설을 한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 분쟁의 책임을 미국과 그 동맹에 돌려왔던 그의 노력이 다시 한번 시도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발언보다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준수 중단'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의 핵무기 정보를 이 협정을 통해 파악해 왔는데 앞으로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고스티니 드보르 전시장에서 푸틴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블룸버그 통신]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협정 준수 중단으로 인해 미국이 러시아 핵탄두의 수와 이를 발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상 및 해상 수단에 대한 사찰·감시 자료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며 "국방부, 정보기관, 국무부에서 선발된 약 200여명의 사찰단이 협정에 따라 검증을 수행하도록 배정돼 왔다"는 전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 스티븐 파이퍼의 말을 전했다. 파이퍼 전 대사는 러시아와 군비통제 협상을 진행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파이퍼 전 대사는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가 핵무기 사찰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이 오간 후에도 관련 자료는 계속해서 교환됐다"면서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연간 약 2000건의 통지를 받아 러시아 핵전력 상태를 안보 관계자들에게 알려 왔다. 양 측은 6개월마다 서로의 자료를 갱신하고 교환했다"고 했다. 미·러간 갈등 수위가 지금보다 높았을 때조차 서로의 핵무기 전력을 상호 감시가 이뤄져왔는데, 러시아의 협정 준수 중단 선언으로 불가능하게 됐음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우려가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준수 중단을 선언했다고 해서 러시아가 먼저 핵무기 실험을 재개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란 조건을 달았다. 또 러시아 외교부는 이에 대해 협정이 만료될 때가지는 핵무기 제한 규정을 계속해서 준수할 것이며 협정에 따른 자료 교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또 협정 중단 결정은 뒤바뀔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독재 국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정보의 비공개화·폐쇄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엔 코로나19 초창기 관련 정보를 온전하게 공유하지 않아 전 세계가 대규모 인적·경제적 피해를 봐야 했고, 최근 정찰 풍선 관련해서도 솔직하게 정보를 공개하기는커녕 미국의 잘못을 비난하는 '적반하장' 태도를 고수했다.

러시아도 이와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하기 시작해 갈등 수위를 낮추기 어렵게 만들고 있단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카네기 센터의 정치분석가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참여 중단은 매우 적대적 신호"라며 "서방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아무런 희망이 없게 됐으며, 푸틴 대통령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한편 파이퍼 전 대사는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협정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핵무기) 숫자가 아니라 투명성"이라며 협정의 취지를 강조했는데, 전쟁은 지속되지만 그와는 별도로 미·러 두 강대국의 갈등 조정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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