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블룸버그통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4일 앞둔 20일(현지시각)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재회했다. 80세 노(老)대통령의 깜짝 행보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에서도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당국자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과 펜타곤(미국 국방부 청사)의 극소수만이 알고 있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외신들이 보도할 정도다.

■ 아군에도 적군에도 '은밀'하게, '소규모'로 이뤄졌던 키이우 방문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가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건 지난 17일(현지시각)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략 회의 도중이었다"며 "심지어 백악관과 펜타곤 내에서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20일(현지시각)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수도로의 여정은 최측근의 보좌진이 수 달간의 세심한 계획 끝에 이뤄졌다"며 "마치 '첩보 영화 같은(cloak-and-dagger)' 비밀 유지가 엄수됐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방문이 과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전쟁 지역 방문과 유사하지만, 잠재적으로 더 위험했다"며 "그런 곳들과 달리 미국은 이번엔 영공이나 공항을 통제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훨씬 소규모로 계획됐다"고 밝혔다.

우선 대통령 보좌진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젠 오말리 딜런 비서실 부실장, 애니 토마시니 집무실 운영국장 등 일부만이 포함됐다.

기자단에도 단 두명의 기자만 포함됐다. AP통신의 에반 부치 사진 기자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사브리나 시디퀴 기자다. 이들은 17일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의 사무실로 불려가 비밀 엄수를 준수하겠단 서약을 했다. 또 출발 세부사항과 더불어 '골프 토너먼트 시합에 관한 도착 지침'이란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고,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직전 휴대전화는 압수됐다.

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기자들도 몇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19일(현지시각) 밤 늦게서야 키이우에 있는 하얏트 호텔로 아침 일찍 오란 지침을 받았다.

러시아에 언제 알릴 것인가도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해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충돌 방지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 출발 '몇 시간 전'에서야 러시아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러시아가 이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개된 바 없으며, 러시아의 공식 반응 또한 없는 상황이다.

■ 키이우 여정의 구체적 과정은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관계자들의 발언을 토대로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 과정을 자세히 추적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내내 워싱턴DC에서 머물렀다. 오후엔 조지타운 대학교 내 천주교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했으며, 그 후 미국 국립사박물관에서 '영부인' 전시회를 관람했다. 그 뒤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워싱턴DC의 식당 '레드 헨(Red Hen)'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마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돌이켜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머물며 주말을 시작하는 방식엔 특이한 점이 있었다"며 "보통 대통령과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델라웨어에 있는 자신들의 자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주말 일정을 워싱턴DC에서 시작한 것에서부터가 이례적이었던 이야기다.

미국인 대부분이 자고 있을 19일 새벽 4시, 바이든 대통령은 에어포스 원을 타고 워싱턴DC 외곽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서 출발했다. 에어포스 원은 워싱턴DC에서 독일에 있는 람슈타인 공군 기지를 거쳐 폴란드의 제슈프(Rzeszów)까지 날아갔다. 폴란드에서부터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700여 km(430마일)를 기차로 이동한 시간까지 합쳐 총 10시간이 걸렸다. 바이든 일행은 그후 5시간 정도 키이우에서 머무르며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키이우 방문이 이렇듯 급박하고 은밀하게 이뤄진 결과 아무 것도 몰랐던 미국인들은 20일 일어나자마자 바이든 대통령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낀 채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며 일어나게 됐다. 이날은 미국의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2월 셋째주 월요일)'이었다.

■ 바이든 "키이우 돌아와서 좋다"...방문 중 공습경보 울리기도

이번까지 합치면 바이든 대통령은 키이우를 총 8번 방문한 셈이 된다. 그래서인지 키이우에 대한 애정을 직접 말로 표현했는데, 기차에서 내리면서 "키이우에 돌아와서 좋다"고 하는가 하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는 "키이우가 내 마음의 한 부분을 사로잡았다"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기를 북돋는 발언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와 줘서 고맙다"고 하자 "당신을 만난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인사하는가 하면, "미국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함께 서 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음을 밝혔다. 실제로 이날 4억6천만달러에 달하는 추가 군사 원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방문의 의미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전쟁 중인 국가로 여행하는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역사적, 시의적절, 용감(Historic. Timely. Brave)"이라고 간결하게 평가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성 미카엘 황금 돔 성당 앞을 지나가는 동안 공습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는데, 두 정상에겐 별다른 일이 벌어지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일 저녁 8시경 기차를 타고 폴란드로 돌아갔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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