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리는 북한이 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다"의 의미
트럼프 "이제 나와 김정은 둘의 대화만이 중요하다"...다른 플레이어들 배제
청와대 "회담 취소 예상 못해...현재 사태 파악 중"
청와대, 이틀전 "싱가포르 회담 개최 확신"
김정은 심경 변화 묻는 트럼프 질문에 동문서답만 한 文
트럼프 다시 '판의 기강'을 잡았다...한국과 북한에 강력한 메세지

22일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에 도착해 손을 흔드는 문재인 대통령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미북(美北) 정상회담을 전격취소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서한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전달한 내용과 최근 북한의 움직임 사이에 나타난 차이를 우회적으로 지적하면서 미북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한국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을 사실상 '해고'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한에서 "우리는 북한이 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다"고 밝히며 미국과 북한사이에서 무언가 내용이 잘 못 전달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We were informed that the meeting was requested by North Korea.)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미 의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북한 측에 회담과 관련한 문의를 했지만, 답변이 없었다"며 의아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달을 받았다고 하는 대상은 문재인 정부일 가능성이 높다. "We were informed"라는 문장은, 우리 미국은(We) 미국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전달(informed) 받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어 "하지만 그 사실은(그것이 어떻든) 우리(미국)에게 전혀 중요치 않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당신과 함께 하기를 고대했다"고 말한다. (but that to us is totally irrelevant. I was very much looking forward to being there with you.)

누군가 잘못 전달을 했든 어떻든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감으로써 그 전달자가 배제되고 트럼프와 김정은만이 이 판에 남게 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설명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보면서 미국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어 "결국엔 그(당신과 나 사이의) 대화만이 중요성을 가진다"고 강조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I felt a wonderful dialogue was building up between you and me, and ultimately it is only that dialogue that matters.) 오직 자신과 김정은 둘만의 대화만이 중요성을 띈다는 얘기는, 이제 자칭 중재자 등 다른 플레이어의 대화는 중요치 않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는 미국 측이 회담을 취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서한이 발표된지 30분이 지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답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일단은 정확한 사태 파악이 우선”이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측이 회담취소 발표를 문재인 정부와 전혀 상의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틀전 20분간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 후 기자들을 만나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으로 잘 진행됐다”며 “최종적으로는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릴 것으로 생각을 갖고서 열심히 추진하기로 한 분위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당시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릴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추진하기로 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회담의 연기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외교적 결례를 무릎쓰고,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후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Now President Moon may have a different opinion, I'd like to have your opinion on that. What you thought of the second meeting with President Xi. What is your feeling? You may have an opinion")

트럼프의 "you may have an opinion"이라는 발언은 "당신도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로 점잖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 그 전의 상황과 당시의 뉘앙스로 봤을 때 "당신도 뭔가 의견이 있을 것 아니냐"고 추궁하는 분위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회의적인 시각이 미국 내에 있는 것 잘알고 있다"며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동문서답성 답변을 한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께서 (정상회담)을 해내시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총 세번의 발언을 한 문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에 대해 묻는 마지막 한국 기자의 질문에도 "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고 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발언에 대해 "전에 들었던 얘기일게 뻔하니 통역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미 적잖은 '이상 기류'가 나타났다. 한미 정상회담 시간은 이례적으로 짧았다. 문 대통령이 '문맥'에 안 맞는 웃음을 짓는 장면이 자주 포착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문 대통령의 미국 도착 때부터 회담 후 백악관 출발 때까지의 의전도 동맹국 정상에 대한 의전 치고는 지나치게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 취소를 내심 검토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와 문 대통령은 전혀 이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 맞춰 싱가포르를 방문해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런 구상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답을 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문제, 특히 대북 의료및 농업 지원 방안을 설명한 데 대해서도 백악관은 불편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한 후 백악관 기자 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회견에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맡게 될 역할을 정리해주며 문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그리고 일본과 이야기했다”며 “북한이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준비가 돼 있을뿐 아니라, 불행한 상황이 불가피하게 벌어진다면 작전 중 미국에 생겨날 비용, 재정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꺼이 떠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I have spoken to South Korea and Japan. And they are not only ready should foolish and reckless acts be taken by North Korea, but they are willing to shoulder much of the cost of any financial burden, any of the cost associated by the United States in operations, if such an unfortunate is forced upon us.)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군사행동시 발생하는 비용을 성실히 부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회담 취소 발표는 강력한 승부수로서 대화의 판을 바꾸어 놓았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먼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문재인 정부가 완전히 배제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또한 북한은 서한이 공개 된 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 측이 꼬리를 내리며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세지를 공개적으로 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서한에서 "만약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당신의 생각이 바뀐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 "세계는, 특히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큰 번영, 부유함을 위한 큰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상 너무도 슬픈 순간입니다"라며 미국은 최선을 다했기에 당장 북폭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음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4일(미 현지시간)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 원문과 PenN 번역문.

 

May 24, 2018

His Excellency
Kim Jong Un
Chairman of the State Affairs Commission of the Democrac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Pyongyang

Dear Mr. Chairman:

We greatly appreciate your time, patience, and effort with respect to our recent negotiations and discussions relative to a summit long sought by both parties, which was scheduled to take place on June 12 in Singapore. We were informed that the meeting was requested by North Korea, but that to us is totally irrelevant. I was very much looking forward to being there with you. Sadly, based on the tremendous anger and open hostility displayed in your most recent statement, I feel it is inappropriate, at this time, to have this long-planned meeting. Therefore, please let this letter serve to represent that the Singapore summit, for the good of both parties, but to the detriment of the world, will not take place. You talk about your nuclear capabilities, but ours are so massive and powerful that I pray to God they will never have to be used.

I felt a wonderful dialogue was building up between you and me, and ultimately it is only that dialogue that matters. Some day, I look very much forward to meeting you. In the meantime, I want to thank you for the release of the hostages who are now home with their families. That was a beautiful gesture and was very much appreciated.

If you change your mind having to do with this most important summit, please do not hesitate to call me or write. The world, and North Korea in particular, has lost a great opportunity for lasting peace and great prosperity and wealth. This missed opportunity is a truly sad moment in history.

Sincerely yours,

Donald J. Trump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친애하는 위원장님,

우리는 양쪽 모두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회담에 관련하여 당신이 시간과 인내, 노력을 보여준 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전달받았지만, 그 사실은(그것이 어떻든) 우리(미국)에게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당신과 함께 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귀측의 가장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볼 때, 지금 시점에서 오랜기간 준비해온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껴집니다.

따라서 세계에는 해악이 되겠지만 우리 서로를 위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임을 이 서한을 통해 알리고자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우리(미국)의 핵무기들은 엄청나게 방대하고 막강해서, 나는 신에게 절대 이런 무기들을 사용할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할 정도입니다.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훌륭한 대화의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당신과 나 사이의) 대화만이 중요성을 가집니다.

언젠가는 나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는 사이,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인질들의 석방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스처였으며,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만약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당신의 생각이 바뀐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하길 바랍니다. 세계는, 특히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큰 번영, 부유함을 위한 큰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의 너무도 슬픈 순간입니다.

Sincerely yours, (정중한 인사)

도널드 트럼프

미 합중국 대통령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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