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향후 5년간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는 보통주 2571만8099주(13.2%), 우선주 15만9835주(9.8%)로, 현 시가 기준으로 3조원 규모다. 소각 규모는 향후 5년간 매년 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매년 6000억원 정도의 자사주가 소각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이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5년 내 전량 소각하겠다고 16일 밝혔다. [사진=한국경제TV 캡처]
삼성물산이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5년 내 전량 소각하겠다고 16일 밝혔다. [사진=한국경제TV 캡처]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이사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2025년 주주 환원 정책'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즉 이번 조치의 표면적인 명분은 주주 환원 기조를 유지하면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데 있다.

하지만 지난 3일 취임 100일을 맞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계산법은 좀 더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일석삼조’ 전략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① 이재용 회장 체제의 자신감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효과

우선 ‘이재용 회장 체제’의 안정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효과를 갖는다. 자사주는 우리나라 상법상, 경영권 방어의 핵심 수단이다. 당장 의결권은 없지만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거나 중대 의사결정이 있을 경우, 우호 세력에게 매각함으로써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변한다. 즉 ‘백기사’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자사주이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가 했던 역할도 그렇다. 당시 삼성물산은 자사주 5.76%를 KCC에 매각했다. 매각된 자사주는 의결권이 살아난 주식으로 변했고, 이를 손에 쥔 KCC가 찬성표를 던지면서 합병안은 69.5% 찬성으로 통과됐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배당도 확대된다. 이재용 회장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삼성물산 지분은 33.76%이다. 이재용 회장 18.13% 그리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6.24%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단순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는 이 회장 일가이다.

자사주 전량 소각은 지난 연말 구축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체제가 안정화됨으로써 막대한 금액의 자사주를 쥐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을 선언하는 효과가 크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정적인 지분율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이재용 회장의 삼성 경영권에 대한 한국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판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방문, 전시된 디스플레이 제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방문, 전시된 디스플레이 제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②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12조원 규모 상속세 재원 마련 효과도 커

막대한 상속세 재원 확보라는 효과도 기대된다. 5년 동안 자사주 소각을 할 경우 주가 부양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식 가격이 오르면 동일한 배당률을 적용해도 배당금액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소각과 함께 2025년까지 3년간 매년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를 현금 배당 방식으로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최소 주당 배당금은 2000원이다.

이재용 회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 등 삼성 오너일가의 현금배당 액수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20년 10월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타계하면서, 이 회장은 선대회장이 보유했던 삼성그룹 지분을 상속받았다. 이 회장의 유산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 19조원과 부동산·미술품을 합치면 약 26조원이다. 주식은 삼성전자 4.1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9%, 삼성SDS 0.01% 등이다. 이 선대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3명의 자녀는 법정비율 등을 반영해 이들 회사의 지분을 상속받았다. 이들 총수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는 12조원에 이른다.

주식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홍 전 관장 3조1천억원, 이재용 회장 2조9천억원, 이부진 사장 2조6천억원, 이서현 이사장 2조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6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2025년까지 배당수익의 60~70%를 현금배당 방식으로 주주환원할 경우, 그 최대 수혜자는 천문학적 액수의 상속세 부담에 시달려온 삼성 총수 일가가 되는 셈이다. 매년 막대한 배당 수익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 일가는 지분 매각 및 대출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왔다. 이서현 이사장은 최근 삼성SDS 보유주식 전량인 151만1584주를 처분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유가증권처분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삼성SDS 전체물량의 1.95%에 해당된다.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 소각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 계열사 보유지분을 팔아야 하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③ ‘선순환 고리’ 형성 효과...3조~4조원을 투자하면 삼성물산 기업가치 올라

삼성물산이 자사주 전량 매각을 통해 얻게 될 거액의 현금을 신성장 동력 및 기존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에 투자한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향후 3년간 3조~4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광, 수소, SMR(소형모듈원자로), 배터리 리사이클링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 사업 확대와 바이오프로세싱, 차세대 치료제 분야 혁신 기술 투자 등 바이오·헬스 분야 등과 같은 신성장 산업 분야에 1조5000억~2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품·서비스 고도화 및 디지털 전환에도 1조5000억~2조원을 투자한다.

이처럼 거액의 신규투자가 대출이 아닌 현금유동성을 통해 이뤄질 경우,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제고되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