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보루여야할 법관들이 동료 법관 컴퓨터 수색
21세기 대한민국 영장주의 공공연히 짓밟히고 있어
한국사회 정치만 개입되면 옳고 그름 판단할 능력 상실
자유민주주의 갈망하는 시민들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법조계에 과거 정권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17년 12월 법원이, 2018년 5월 검찰이 법조인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먼저 법원의 사례를 보자. 2017년 12월 한국당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회 판사 7명을 형법상 비밀침해죄(형법 제316조)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2017년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부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판사들 중 일부가 판사들의 뒷조사를 한 파일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여 대법원이 진상조사위를 구성하고 2017년 4월경 자체 조사를 한 결과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강하게 재조사를 요구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추가조사를 지시하였다. 추가조사위원회 소속 법관들이 법원행정처 해당 법관들의 의사에 반하여 컴퓨터를 열고 삭제한 파일까지 복원하여 조사 활동을 했다. 이런 행위는 입헌민주정의 핵심원리 중 하나인 영장주의(令狀主義)를 위반한 것이다. 현행 헌법상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의 보루(堡壘)이어야 할 법관들이 영장주의에 위반하여 동료 법관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를 수색한 것이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법원행정처 해당 판사들이 사용한 컴퓨터가 법원의 소유물이므로 그 사용자의 동의 없이 가동시켜 삭제 파일까지 복원해도 영장주의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를 펴는 이도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피고인 아닌 자의 신체, 물건, 주거 기타 장소에 대하여 수색을 하려면 압수할 물건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할 수 있고 압수영장은 소유자가 보관하고 있는 물건 뿐만 아니라 소지자, 보관자가 보관하고 있는 물건에도 적용된다(형사소송법 제113조, 제109조, 제106조, 제215조, 제219조). 그러므로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사용한 컴퓨터가 그 판사의 개인 소유이냐 또는 법원행정처의 비품이냐 하는 것은 영장주의 적용 여부에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다. 저런 논리를 허용하면 회사가 노조사무실에 대여한 컴퓨터를 노조원 동의없이 개봉하고 삭제된 파일을 복원해도 된다는 논리가 되는데 상식에 반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법원장과 법관들이 저렇게 영장주의를 위반하니, 이번에는 MBC 최승호 대표이사 및 그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 직원들이 사용한 컴퓨터을 열어 메일을 복구, 수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영장주의는 이렇게 공공연히 짓밟히고 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검찰이 또 충격을 주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단장 양부남 광주지검장)이 고발인의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추가고발장을 대필 작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당초 고발할 당시 피고발인은 최종원 전 춘천지검장, 권성동 의원, 염동렬 의원이었는데 수사관이 고발인을 조사하면서 추가 고발장을 대신 써 주었다고 한다. 고발인과 피고발인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사를 해야 할 수사기관이 고발장을 대필해 준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정도에서 벗어난 행위이다. 그 추가고발장 내용이 고발인이 자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면 직권남용이 될 수 있고, 사실관계 여하에 따라서는 무고 또는 무고 교사 등으로 문제가 번져 갈 수 있다.

이렇게 최근 들어 법관과 검찰의 직업 윤리나 직무 집행 수준이 막장 수준으로 무너지고 있다. 법조만 그런가? 아니다. 눈을 돌려 다른 사회 부문을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언론계를 보면, 기자가 취재원의 발언을 왜곡해서 기자 자신이나 회사의 영향력을 한껏 높이면 그 보도의 품질, 진위에 관계없이 상을 받는 사례가 왕왕 생긴다. 2008년 광우병 보도는 그 내용의 허위 여부가 큰 문제이지만 보도 자체의 품질도 높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보도가 상을 받았다. 어떤 언론인은 논평하는 대상의 발언을 정반대로 소개하고도 시청자들이나 해당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이슈는 물론이고 과학적으로 규명이 가능한 분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에 광부로 간 조선인들이 노예취급받았다는 최근의 선동에 대하여 실증적 데이터에 기초하여 조선인 광부와 일본인 광부의 임금 격차는 숙련도에 기한 것이고 조선인 광부가 숙련도가 높아짐에 따라 그 격차가 줄어들고 있었다는 이우연 박사의 논문이 발표되어도 대중은 군함도의 왜곡된 이미지에 매몰되어 있다(펜앤마이크의 2018년 이영훈 교수님의 ‘거짓말하는 사회’ 칼럼 참조). 2008년 광우병 사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의 왜곡된 보도의 영향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2014년 발생했던 박주신씨 병역 의혹을 제기한 양승오 박사 재판 과정에서 제기된 의학적·과학적 의문도, 2016년 발생한 백남기씨 사망의 사인과 관련하여 물대포로 두개골 기저골절상이 발생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도 사회적 정치적 세력의 대립 속에 과학적 규명은 내팽겨졌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의 광복이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잘 해서라는 취지로 역사적 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도 무감각하다.

이렇듯 한국 사회는 논쟁의 대상이 된 이슈가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인 것이든 또는 과학적인 것이든 관계없이, 정치만 개입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본적인 능력이나 용기를 상실해 버린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회 전반에 걸쳐 지식인들의 도덕성 결여, 표절 만연, 출세만능주의, 거짓말에 대한 무감각, 위선적인 문화 풍토, 진영논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1980년 졸업정원제 이후 대학생 숫자가 늘어나자 박사 학위도 없이 또는 박사 학위를 사칭하여 강단에 서는 이들이 상당히 생겼다. 김영삼 정권이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채택, 대학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부실한 박사 학위에 기해 대학 강단에 서는 이가 더 늘었다. 그런 과정에서 지적 절도행위(知的 竊盜行爲)인 표절에 대하여 서로 눈감아 주고 넘어가는 풍토가 만연했다. 사회의 학문을 담당하고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대학이 표절과 거짓에 허물어진 것이다. 이런 풍토 속에 교수나 박사들이 연구와 논문을 통해 학문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네트워크를 통해 출세하려는 풍토가 퍼진 것은 아닐까? 이런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유리하다 생각하면 역사적 사실,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와 결탁한 사이비 전문가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해서 혼란을 야기해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아니, 정치적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하여 과학적 근거가 있든 없든 더 크게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 놓으면 유능하다 칭찬을 받는다. 이렇게 진영논리가 확산되다 보니, 진실과 진영의 이익이 상충되는 경우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우익 정당이라고 하는 정당들은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도 의지도 능력도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정치 과잉의 시대에 우익 정당이 거짓말, 허위 선전·선동에 대항하여 싸울 의지가 없다 보니 법관, 검사, 공무원 등이 특정 정파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법질서 수호의 보루인 검찰, 법원이 이렇게 흔들린다는 것은 사회 공동체가 균열될 수 있다는 심각한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치유는 법조계 직역만 따로 떼어 내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위에서 본 잘못된 사회 문화 풍토부터 개선해야 한다. 조바심내지 말자. 그 길이 험하고 멀더라도 역사의 진전에 공짜는 없으니 끈기를 가지고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우리들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조국 대한민국이다. 자유민주정의 복원을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어느 미국인 전쟁 영웅 병사의 말로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포기하는 자는 절대 이기지 못하고 이기는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차기환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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