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추상적 집합이 아닌 너와 나의 개인으로 사는 삶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민족이란 단어는 참으로 감성적이어서 가슴 뭉클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한민족이라 일컫는 우리 민족은 어쩌다가 이 땅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가? 아마 북방의 기마 민족의 일부가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 반도에 막히고 더 이상은 갈 데가 없어서 터를 잡고 살았을 것이고, 일부는 남방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관상에 의하면 고 정주영 회장은 북방계이고 고 박태준 회장은 남방계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는 어느 역사 학자의 주장을 본 적이 있다. 비록 외세의 영향으로 더러 수난을 당하기는 했지만 수천 년 세월 속에 큰 나라들의 언저리에서 한민족으로서 이어져 내려온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러기에 더욱 민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감상적 정서를 다 벗어 던지고 냉철해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 감성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사실이나 현실을 기초로 한 이성적 판단을 못 하고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민족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민족주의가 일으킨 수많은 실패 사례를 상기할 때, 이 단어로 인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민족(民族)’은 일본의 근대화기에 ‘nation state’ 즉 국민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민국가라 했으면 민족과 국가가 합쳐진 의미로 더 잘 통했을 텐데, 민족이라 하니 어쩐지 국가 시스템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인종이나 종족을 뜻하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우리의 경우와는 좀 다른 차원이겠으나 서양사를 보면 국민국가 성립 후 민족주의(nationalism)는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계화된 시대에 민족이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우리끼리를 강조하는 용어로 쓰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된다. 우리는 지구촌에서 민족이라는 추상적 집합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개인으로 사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족 개념이 형성되면서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지 폐쇄된 ‘우리끼리’를 지향하는지는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 형성된 애국심이 어떤 이념을 추구했는지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초 국민국가(nation state)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말 유럽에서였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 신성로마 제국, 수많은 왕과 귀족의 영향력이 얽혀 모자이크처럼 나누어져 있었고, 자주 각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오랜 전쟁에 휘말렸다. 예를 들어 프랑스 지역의 왕위 계승문제로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에 시작된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 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했다. 이 전쟁의 막바지에 프랑스인들은 전설적인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잉글랜드를 물리치고 프랑스의 왕위를 지켰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차츰 민족의식에 눈뜨게 되었다. 이는 기독교의 교황청과 신성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도 대변되는 제국의 통치로부터 점차 현재 유럽 국가의 원형이라 할 독립 국가들로 자리잡는 과정이었다.

르네상스와 지리상의 발견으로 시작된 유럽 팽창의 흐름을 타고 가장 앞서 근대적 국민국가를 세운 것은 17세기 영국이었다. 영국은 앞선 과학 정신과 산업혁명, 부르주아지의 성장이라는 배경 속에서 국권은 국민의 것이라는 존 로크의 주권재민 정치이론을 받아들여 청교도 혁명을 거쳐 근대국가를 세웠다. 이어서 미국도 독립혁명을 일으켜 근대 국민국가를 세웠다. 이 두 나라의 건국 리더들은 국민국가의 설립 과정에서 애국심을 폐쇄적인 인종주의로 몰아가지 않고, 장차 국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 결과 영국과 미국은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모델이 되었다. 특히 미국은 수많은 인종이 섞여 살면서도 일단 미국 시민이 되면 자신이 미국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는 종족이라는 의미의 민족은 삶의 방식과 이념을 뜻하는 국가 체제에 비해 실체가 약한 관념적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에서 폐쇄적 의미의 민족주의에 빠진 경우도 많았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선두에 부르주아지가 서서 민중을 이끌어 절대권력을 폐지한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 시 애국자란 곧 왕정을 폐지하는 혁명가를 말하는 것이었고, 기존의 질서를 모두 허무는 것이 곧 애국이었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자코뱅당은 혁명 자체가 목적이었으므로 폭력을 앞세운 독재를 하다가 그 자신도 쿠데타로 단명에 권력을 잃었다. 이어서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은 후 국민국가를 세우는 이념은 프랑스에 대한 잠재적인 침략자를 멸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민족주의로 볼 때, 프랑스가 유럽대륙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하는 것을 정당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군주정을 강화하는 쪽을 향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가 개막하면서 강대국은 다양한 이유에서 약한 민족을 식민지화했다. 이 시대 제국들의 민족주의는 전쟁을 미화하고 약소민족을 압제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20세기 들어서 1930년대의 파시즘에서 민족주의는 극단적인 국가 이기주의를 추구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파시즘과 군국주의는 침략전쟁을 미화 혹은 신성시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 같은 인간성의 가치는 완전히 부정했다. 이렇게 민족주의를 자국의 배타적인 이익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했을 때 세계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전체주의 독재자의 희생양이 되었다. 폐쇄적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향할 때 벌어지는 비극은 대규모 전쟁뿐 아니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보스니아의 ‘인종청소’ 만행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세계사에 보면 국민국가 운동이 전개되어 근대 국가를 이루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는 반면, 국가보다는 인종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길을 잃은 예도 많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종족을 강조하는 의미가 되어 스스로 닫힌 사회로 들어가게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족으로서의 민족이 강조된다는 것은, 정치 체제와 이념의 공동체인 국가 위에 민족이라는 관념이 올라앉는 구조를 말한다. 이는 마치 근대국가의 헌법 위에 민족이라는 관념이 덧씌워져 헌법의 권위를 스스로 모호하게 만드는 형국인데, 한국이 겪고 있는 증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한국이 해방 후 70년의 노력 끝에 근대국가를 세워 세계 10여 위권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전근대적인 관념인 민족을 국가 위에 놓는 것은 큰 모순이다. 물론 민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한국민의 역사성에 대한 정서를 가볍게 보자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열린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감성적 속성을 유의해서 사회가 감정 과잉, 폐쇄적으로 흐르지 않고 현실과 실질을 직시하는 방향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국력에서 열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니 하며 목청 높이 민족을 외치고 이웃 나라와 적대하려 한다면, 한국이 예전처럼 나라를 잃었을 적이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국가에 무익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주 땅이 고구려의 옛 영토였다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언행에 자극 받아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자기들 역사에 편입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무튼, 한국의 국력이 지정학적으로 극동 지역의 패권을 다툴 정도가 되어 중국, 일본, 러시아에 대적할 수준이면 모를까, 민족 감정을 이웃 나라에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국익에 백해무익하다.

특히 통일 논할 때 민족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면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감성적 특성으로 인해 현실을 왜곡하고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같은 단어라 해도 지난 70년의 세월을 거치며 남과 북 사이에 민족이라는 단어가 갖는 개념이 달라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는 해방 후 토지개혁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해 전체 국민이 점차 근대시민이 되었다. 이는 한국의 민족 개념은 자유로운 근대시민으로서의 민족을 말한다. 즉 생명권과 자유가 보장되고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자유 시민으로서의 민족이다. 반면에 해방 후 북한은 무상분배에 의한 토지개혁이라고 포장된 농노제 국가를 만들었다. 북한은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고, 분배된 토지를 팔 수도 없는 체제, 대기업도 없고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재산권이 없는 체제 속에서 3대에 걸친 김 씨 세습권력을 우상으로 여기는 체제이다 속에 살았다. 이런 체제의 주체인 북한 정권이 말하는 민족이라는 단어는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떠나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민족’이라는 특수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한민족을 다시 합치는 통일을 말할 때 그 실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의 민족 지상주의자들은 감성이 앞선 탓인지 통일을 말할 때 구체적으로 무슨 통일을 말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그저 정서가 과인인 상태가 아닐까 싶다. 민족적 정서가 과잉인 사람들은 몇 가지 증상을 갖는다. 백두대간이니 하며 국토를 마치 사람의 신체인 것처럼 형상화하는 것은 어쩐지 백두혈통이라는 북한의 우상화 용어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한국사 중에서 단군 이래 가장 자랑스러워 해야 할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하고 싶어 한다. 오늘날 집요하게 왜곡되는 공교육 역사교과서의 편협성은 다시 논의하기조차 지칠 정도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옛 고구려 땅 만주 구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쉽게 한다. 그들은 한미 동맹은 반대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만, 솔직히 한미간의 자유주의 집단안보 동맹이 없는 처지에 그런 소리를 해도 그들의 민족주의가 나라를 지켜줄지는 의문이다. 그런 것 보다는 북한의 동포들에게 자유를 주고 한반도가 외세의 영향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실질적인 방안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국가란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연합체라는 국가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통일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좀 더 명확해진다. 그것은 한국의 자유경제체제로 통일하든가 북한의 김 씨 왕조체제로 통일하든가 둘 중의 하나이지 그 어중간한 통일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평화통일’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은 현실에 없는 국가 체제를 가능한 것처럼 말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정서 과잉의 민족 지상주의자라 할 수 있다. ‘자주통일’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사람은, 더 문제가 많은 경우인데, 이는 통일을 위해서 한미 동맹을 해체해야 한다는 북한 정권의 책략을 대변하는 격이다.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자유주의의 최 전방에서 공산주의, 전체주의 세력을 막아내는 데 미국과의 집단 안보동맹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축복이기도 하고 세계사적으로 자랑스러운 역할이었다.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데에는 구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남침 6.25 전쟁을 막아내기 위한 수많은 희생이 있었고, 동맹국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도 5만 명이나 되었다. 이는 역사의 순리에 따라 이념이 같은 동맹이 함께 자유를 지키는 것이지 민족 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외세 의존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유럽의 NATO도 모두 해체해야 한다. 북한의 김 씨 세습 체제는 우리가 어렵사리 70여 년을 달려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동안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조선 시대의 왕조체제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그런데도 민족 지상주의자들은 이런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족을 국가의 위의 실체인 것처럼 올려놓고는, 국가의 정체성이야 어찌 되었든 한반도의 민족이 통일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통일이 한국의 지상과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통일은 자유주의 대한민국의 품에 북한의 동포를 껴안아 자유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통일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반대의 통일은 인류사에 대한 죄악이고 있을 수 없는 역행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도 나와 있을 만큼 엄중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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