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의 F-22 전투기가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는 모습. 풍선의 잔해는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 해변에 흩어져 있다. 미국은 잔해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AP통신]

4일(현지시각) 중국의 정찰 풍선이 대서양에서 F-22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고 난 후 미국은 풍선 잔해를 수집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보복을 시사하고 나섰다. 만일 정찰 풍선 잔해를 조사해 미국과 그 동맹국의 기술이 사용됐음이 판명될 경우엔 혹독하고 신속하게 보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외신들이 전했다.

이날 미국에 의해 격추된 중국 정찰 풍선의 잔해 및 파편들은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머틀 시의 머틀 해변(Myrtle Beach)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해 "적어도 스쿨버스 두대 크기의 풍선과 여러 센서들의 잔해가 머틀 해변 바닷속 50피트(15미터) 속에 빠져 있고 7마일(11 킬로미터) 근방에 흩어져 있다"며 "잠수부들과 크레인이 향후 며칠 동안 수면에서부터 각종 잔해들을 수거할 에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마도 정보 전문가들이 이 잔해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의 정보 공작 능력에 대해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은 또 풍선 잔해 분석을 통해 풍선 적재물(payload)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기술이 적용됐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중국이 저궤도 위성(low earth orbiting satellites)과는 별개로 정찰 풍선을 띄운 의도가 미국 본토에 있는 주요 전략 시설들에 대한 상세한 시각자료를 획득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촬영 기술이 들어간 센서 등이 필요한데, 이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의회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의원들이 이미 풍선의 적재물이 미국 또는 그 동맹국들의 기술을 탑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며 "다만 바이든 행정부는 풍선이 어떤 것들을 탑재하고 있었는지를 정확히 공개하긴 원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만일 미국 및 동맹국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제공한 기술들이 되레 중국의 정보 공작 활동에 사용됐음이 판명된다면, 미국 조야에서 중국에 대한 보복이 필요하단 여론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찰 풍선 관련 미국 여론은 이미 격추 상황을 지켜보던 미국인들의 환호·열광으로 확인된 바 있다. 

미국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1년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대체로 중국과 협력하며 중국 경제의 발전을 묵인·장려해왔다. 이는 중국의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화해 상호 화합이 가능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미국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전 세계에서 제2위의 경제 규모를 갖게 되자 대국굴기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내며 미국과의 패권경쟁을 노골화했다. 이에 미국은 2011년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며 중국을 본격 견제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러한 미중대결의 맥락 속에서 이번 정찰 풍선 사건을 바라보고 있단 평가다. 중국은 풍선이 그저 '기상 관측용'이며 민간기업의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거짓으로 보고 중국 정부의 정보 공작 활동의 일환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혹독하고 신속한 보복을 고려 중이란 익명의 관계자의 발언이 있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이미 미국의 보복은 시작됐단 평가다. 늦어도 6일엔 방중할 것으로 알려졌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사건을 이유로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더해 블링컨 장관이 정찰 풍선에 대해 중국에 더 강경한 메시지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본토 영공을 침범한 정찰 풍선을 즉각 격추하지 않고 동부 해안까지 날아가게 뒀다며 공화당이 비판하고 나서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더 공세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단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정찰 풍선에 미국 기술이 담긴 부품이 사용됐음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엔, 미국의 대중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미 중국의 전략 분야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가 추가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투자 제한도 강화되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경부터 대 중국 수출 통제를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고, 중국이 하이엔드(최고 성능의) 반도체를 다루지 못하게 막고 있다. 이에 더해 네덜란드,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었다.

중국은 미국의 풍선 격추를 비난하면서도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에 대응할 수단이 마뜩잖다는 것을 의미하며 운신의 폭이 좁음을 반증하는 것이란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메데이로스 조지타운대 교수는 "들켜버렸는데 갈 곳이 없는 것"이라며 중국의 지정학적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고 평가했다. 또 스탠퍼드 대학교의 프리먼 스폴리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인 오리아나 스카일라 매스트로는 "중국이 이번 사건을 크게 문제삼을수록 중국 입장에서 매우 나쁜 전략적 행보가 될 것"이라면서 "흥분하면 할수록 중국 측 주장의 신빙성이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해왔던 중국으로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하게 된 셈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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