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대기자의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의 특장점은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적 시각으로 조망·분석한다는 점이다. 일국사적 시각으로 보면 청일전쟁은 대륙침략의 야욕에 불타는 일제가 조선을 먹기 위해 작심하고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단정된다. 하지만 세계사적 시각으로 보면 이러한 일국사적 시각이 얼마나 허황한 자기만족의 국뽕 해석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역사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의 시각에서 집중 조명하고 있는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의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의 일곱 번째 역작 『조선 왕비 시해되다』가 발매되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청일전쟁의 와중에 시동이 걸린 제2차 갑오개혁(1894년 10월)부터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하는 아관파천(1896년 2월)까지다. 불과 1년 4개월에 불과한 기간이었지만 우리 근대사 흥망의 변곡점, 즉 망국으로 기우는 결정적 시기였음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로 정리된다.

첫째,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조선의 운명은 일본의 보호국 신세로 전락했다.

둘째,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일본은 은화 2억 3,150만 냥(랴오둥반도 반환 대가까지 포함 금액), 일본 정부 1년 치 세수의 4~6배에 달하는 어마무시한 배상금을 뜯어내 단숨에 열강 반열에 오른다.

셋째, 과욕을 부려 중국의 전략적 요충인 랴오둥(遼東)반도를 탈취한 결과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주동한 삼국간섭의 역풍을 맞는다. 일본은 전쟁에선 승리했으나, 외교 전쟁에선 참혹하게 패전한다.

넷째, 일본은 삼국간섭을 허용함으로써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에 고속도로를 깔아주었다.

다섯째,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조선의 기득권을 일본에 넘기고 열강의 제물로 전락하여 분할·해체 수순에 돌입한다.

여섯째, 일본이 러시아에 굴복하는 모습에 감격한 고종과 민비는 재빨리 러시아를 한반도로 끌어들여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으로 급선회한다.

일곱째, 고종·민비의 인아거일 덕에 조선 보호국화 전략이 파탄 난 일본은 민비를 시해하고 친일 내각을 구성, 을미개혁으로 고종을 압박한다.

여덟째, 러시아는 고종을 설득하여 아관파천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일본을 몰아내고 조선을 러시아 세상으로 만든다.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김용삼 대기자의 신간 "조선 왕비 시해되다". 청일전쟁에서 아관파천까지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다룬 책이다.
김용삼 대기자의 신간 "조선 왕비 시해되다". 청일전쟁에서 아관파천까지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다룬 책이다.

#. 국가의 죽음을 연구해 보니...

흥하는 국가(민족)에겐 흥하는 이유가 있고, 망하는 족속에겐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인류사의 잠언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국가나 민족에겐 기회와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그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발전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집단은 성공의 길로 질주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집단은 망국을 체험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국제정치학자이자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인 타니샤 파잘(Tanisha Fazal)은 『국가의 죽음(State Death)』이란 저서에서 망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파잘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816년부터 2000년 사이에 207개 국가 중 무려 32%인 66개국이 망해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멸망한 66개 국가 중 50개가 이웃 국가가 행사한 폭력(전쟁)에 의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런 통계수치를 근거로 파잘 교수는 특히 라이벌 국가 사이에 놓인 완충국가는 다른 국가보다 망국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떤 상태였기에 이웃 나라 일본에 망국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바로 그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시도한 책이 김용삼 대기자의 신간 『조선 왕비 시해되다』이다.

#. 지정학적 완충국의 운명

저자는 서문에서 지정학적 완충국 조선의 운명을 『은자의 나라 조선』의 저자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의 표현을 빌려 “조선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맷돌 사이에서 갈려진 곡식 가루”라고 설명한다.

한국인은 스스로 위안 삼기 위해 단일민족이니 배달겨레니 반만년 역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입에 달고 산다.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주변 강대국에 비해 국력의 격차가 너무 큰 약소국 신세였기에 늘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제1권: 한반도의 깊은 잠, 제2권: 개항 전야, 제3권: 강화도조약·임오군란의 뒤안길, 제4권: 영국·러시아 그레이트 게임의 파장, 제5권: 동학 폭발하다, 제6권: 조선을 침몰시킨 청일전쟁, 제7권: 조선 왕비 시해되다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제1권: 한반도의 깊은 잠, 제2권: 개항 전야, 제3권: 강화도조약·임오군란의 뒤안길, 제4권: 영국·러시아 그레이트 게임의 파장, 제5권: 동학 폭발하다, 제6권: 조선을 침몰시킨 청일전쟁, 제7권: 조선 왕비 시해되다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자기 작품 『언덕 위의 구름』에서 청일전쟁에 대해 “원인은 조선에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나 한국인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죄가 있다면 한반도라고 하는 지리적 존재에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일본이 조선을 영유하려 했다기보다는 조선을 다른 강대국에 빼앗기면 일본의 국가안보가 위태롭게 된다는 수동적 차원에서 전쟁에 임했다고 썼다. 한반도가 다른 대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는 뜻이다.

일본은 10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연이어 두 차례 모험적인 대외전쟁을 발동하여 제국주의 클럽에 뛰어들었고, 제국을 완성했다. 단기간에 비정상적 방식으로 제국을 건설한 결과 일본은 침략전쟁에 대한 의존성이 강하고, 군국주의 경향이 짙으며, 대외 확장의 열정과 욕망이 특별히 강한 나라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반면, 패전국 청나라는 해외에서 빚을 얻어 전쟁 배상금을 상환하느라 식민지화가 가속화되었다. 조선 정부에 “러시아를 조심하라”라는 외교 지침서인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써 준 황준센(黃遵憲)은 패전 소식을 듣고 ‘웨이하이를 통곡한다’라는 시를 썼다. 그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판다.

‘아 슬프도다. 해군과 육군이여!/ 적군은 단결했는데 우리 군은 분열되었구나/ 움츠릴 줄밖에 모르는 벌레처럼 우리는 힘을 펼치지 못했구나/ 싸움닭처럼 우리는 스스로 단결하지 못했구나’

청일전쟁에서 패전하자 ‘웨이하이를 통곡한다’라는 시를 통해 패전의 원인을 파헤친 황준센.
청일전쟁에서 패전하자 ‘웨이하이를 통곡한다’라는 시를 통해 패전의 원인을 파헤친 황준센.

남의 나라 실패담을 미주알고주알 참견하기에 앞서 그렇다면 조선은 청일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청일 양국이 증기선 철갑함대를 동원하여 청일전쟁 마지막 전투인 웨이하이웨이(威海衛) 공방전을 치른 1895년, 조선은 통제영과 각도 수군이 공식 해체되었다. 해군 없는 조선의 바다는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무렵 주한 영국 총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는 조선은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임을 본국 정부에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이 나라(조선)를 경험한 어떤 사람도 개혁과 관련된 계획을 조선인에게 맡기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에 공감한다. 부패는 도를 넘어 모든 공공기관이 일본이나 다른 외국의 감시하에 있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조선은 처절하게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임을 확인한 것이 청일전쟁에서 얻은 조선의 수확이었다. 지정학적 완충국이 스스로 개혁조차 할 수 없는 실패 국가라면 다음 수순은 무엇이었을 것인지는 현명한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만약 조선이 실패 국가로 전락하기 전에 김옥균이나 박영효, 김홍집 정권이 일본의 지원과 도움을 받아 개혁에 성공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조선과 일본,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 견제에 성공하여 러일전쟁이 예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었다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러시아도 평화적인 근대화를 이루어 세계사에서 좌우 세력이 폭력적으로 대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조관자, 「청일·러일전쟁기의 사상과 동아시아의 변혁-일본의 아시아주의, 국수주의,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한림일본학』 제32집,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2018).

#. 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운명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해 배상금 2억 3,150만 냥 외에 타이완을 식민지로 탈취했고, 전쟁 중 노획한 군수물자와 무기·탄약·군함 등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최소 1억 냥이 넘었다. 이것을 종잣돈으로 하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일본은 열강 클럽의 일원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청일전쟁을 보면 전쟁이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판돈으로 건 희대의 도박이다.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의 배상금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마력이 그들을 또 다른 전쟁으로 내모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위정자와 국민이 러일전쟁이라는 모험에 겁도 없이 뛰어든 군부를 지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전리품’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자신들에게 제공할 혜택에 이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대차대조표를 조선으로 돌리면 참으로 끔찍한 사실들이 작렬한다. 초반 전투가 벌어진 곳은 대부분 조선 영토와 해역이었다. 시모노세키 강화조약 체결 직전 주한 일본공사관의 평양 일대 현지 조사에 의하면 인구가 수십 년 전에 비해 3분의 1 이상 줄었다. 청국 병사들이 평양에 들어와 약탈을 일삼는 바람에 평양·황주·순안·중화 부근은 닭·돼지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또 청군이 여성을 겁탈하고 잡아가 생사불명인 사람이 상당수에 달했다.

1895년 4월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어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 중 퍼진 돌림병 덕분에 한반도에서는 세균과의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콜레라로 인해 평안도에서만 6만 명, 조선 전체에서 30만 명이 사망했다(신동원, 「조선말의 콜레라 유행」, 『한국과학사학회지』 제11권 1호, 1989, 66쪽).

청일전쟁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에서는 콜레라뿐만 아니라 말라리아·장티푸스·천연두 등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극성을 부렸다. 특히 평양전투에서 사망한 청군 시체가 부패하면서 이질이 발생하여 맹위를 떨쳤다.

#. 청일전쟁을 촉발시킨 주인공은 고종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다. 이 작품은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더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티끌뿐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근대문학사의 서막을 연 『혈의 누』가 ‘일청전쟁의 총소리’로 시작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 한국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의 무대는 청일전쟁이 벌어진 평양이다.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 한국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의 무대는 청일전쟁이 벌어진 평양이다.

이인직은 청일전쟁의 원인을 지배층의 부패와 무능, 백성들의 무관심과 무기력에서 찾는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총체적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지름길은 문명개화라고 깨닫는다. 옥련을 비롯하여 아버지 김관일 등은 백성과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방법을 찾기 위해 조선을 떠나 문명국 일본·미국으로 떠난다.

‘힘이 곧 정의’라는 자신의 논리에 따라 급진적 개혁을 요구했던 지식인 이인직에게 일본은 문명개화의 모범적 사례였고, 미국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었다. 조선이라는 봉건적 토양에서는 문명개화가 발아할 수 있는 물적 토대·인재·정치세력이 부재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문명개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개화 세력은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조선의 부국강병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역관 오경석, 개화승 이동인이 그랬고, 김옥균과 박영효, 윤치호와 유길준, 이인직이 그러했다.

그들의 문명개화 노선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운영마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순간, 파탄의 절벽 아래로 추락한다. 백성과 나라를 구하겠다고 발버둥 쳤던 그들의 일생은 ‘친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조선은 청일전쟁의 교전 상대국이 아니었다. 그저 남의 전쟁에 휘말려 들어간 것이다. 일반인들은 근대사에 대한 총체적 지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이런 표현에 슬쩍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청나라와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 다툼에 조선이 휘말렸다고?

여기서 김용삼 대기자의 『조선 왕비 시해되다』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대체 조선을 거덜 낸 청일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만고의 역적은 누구인가?

청일전쟁의 근원을 추적하면 동학란을 폭발시킨 전봉준과 동학과 조병갑이 등장한다. 그런데 동학란이 아무리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해도 청일 양군이 파병되지 않았다면 전쟁의 불꽃은 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청일 양군 파병의 주인공이 정답이 된다.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동학란 진압을 의뢰한 것은 고종이다. 고종의 요청으로 청군이 파병되자 일본도 대병력을 보내 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청일전쟁의 뇌관을 때려 일본을 열강의 반열로 승격시켜 주었으니 일본 입장에서 볼 때 고종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에 해당한다. 국내에서 『매국노 고종』이란 책이 인기를 끌었으니, 다음번엔 일본인 저자에 의해 『애국자 고종』이 등장할 때도 된 것 같다.

#. 국뽕에 도취된 일국사적 역사는 이제 그만

김용삼 대기자의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의 특장점은 한국 근대사를 세계사적 시각으로 조망·분석한다는 점이다. 일국사적 시각으로 보면 청일전쟁은 대륙침략의 야욕에 불타는 일제가 조선을 먹기 위해 작심하고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단정된다. 하지만 세계사적 시각으로 보면 이러한 일국사적 시각이 얼마나 허황한 자기만족의 국뽕 해석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세계사적 시각으로 당시 역사를 분석한 김용삼 대기자의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여 청일전쟁을 벌인 이유는 한반도를 향한 러시아의 남진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에서 청일 양국이 ‘조선은 자주독립국’임을 명기한 이유는 자비로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일본은 청의 속국인 조선을 청나라에서 분리하기 위해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라는 조항을 명기했다. 조선이 독립된 존재여야 조선을 자신들의 보호국으로 만들어 러시아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으니까. 막대한 전비와 수많은 청춘의 피를 제물로 바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런데 끝내기 수순에서 과욕을 부려 러시아에 되치기당했다. 러시아의 말 한마디에 랴오둥반도를 토해내는 모습을 본 고종과 민비는 왕후는 재빨리 러시아에 투항함으로써 일본의 전쟁 목적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그 허탈감과 증오심이 사무라이들의 피를 끓게 하여 저지른 국제적 만행이 을미사변, 즉 민비 시해다. 일본이 을미사변으로 도전해오자 러시아는 아관파천으로 응전한다. 이로써 러일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향한다.

#. 일본은 영국, 고종은 러시아와 손잡은 결과는?

난세를 돌파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나 조직이나 민족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줄이라도 잘 서야 한다. 정치외교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동맹의 선택 능력’이다. 당시 세계사의 패권 세력은 영국을 필두로 한 해양 세력이었다. 일본은 패권 세력과 손잡고 동맹의 힘을 국가발전의 동력원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조선은 누구를 생존 파트너로 선택했을까? 패권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손잡고 그들 힘에 의지하여 왕권을 유지하려 발버둥 쳤다. 영·미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헌법과 법률로 보장하고 군주의 권한을 의회가 통제하는 근대국가를 지향했다. 반면, 러시아는 차르로 상징되는 억압과 통제를 바탕으로 한 절대군주제 국가였다.

독립협회를 창설한 개화파 인사들은 고종이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여 국가 주권을 팔아넘길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의회 개설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고종은 폭력을 동원하여 의회 개설운동을 박살내고 조약을 체결,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독립협회를 창설한 개화파 인사들은 고종이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여 국가 주권을 팔아넘길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의회 개설을 통해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고종은 폭력을 동원하여 의회 개설운동을 박살내고 조약을 체결,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고종은 이러한 차르 체제를 모방하여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절대군주제를 성문화한 ‘대한국 국제(國制)’를 반포한다. 고종은 절대군주제 국가에다가 국가와 인민의 모든 생명과 재산을 황제의 것으로 만든 가산제 국가를 혼합시켰다. 독립협회를 설립한 개화파 선각자들은 절대군주제+가산제 국가로 전락한 대한제국은 황제 한 사람만 결심하면 나라의 주권이 너무나 손쉽게 타국에 양도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개화 선각자들은 저질스런 지도자 고종 리더십의 핵심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고종은 여차하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길 수도 있음을 깨닫고 이를 원천 봉쇄하려 했다. 의회를 설립하여 황제가 타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나라를 팔아넘기려 할 때 의회의 권한을 행사하여 이를 막기 위해 의회 개설 운동을 벌였다. 고종은 독립협회의 의회 개설 운동을 황국협회와 경찰력을 동원하여 박살을 내버렸다.

급기야 대한제국은 독립협회 선각자들이 우려했던 방법 그대로, 고종·순종이 일본과의 조약을 통해 주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망했다. 그 대가로 고종과 그 일족은 일본 황족의 일원에 편입되어 총독부로부터 막대한 세비를 받아 안락하고 쾌적한 삶을 살았다.

김용삼 대기자의 『조선 왕비 시해되다』는 읽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신선한 충격과 명징한 역사 인식을 제공하는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책이다. 독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한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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