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매체마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등져 국가위기 재촉
-바보 동아, 창업자 인촌 김성수 서훈 박탈에 마냥 침묵 중
-홍석현의 신문 중앙은 기명 칼럼을 통해 ‘사회주의 실험’ 지지
-그중 낫다는 조선의 지면도 ‘결기 없는’ 무기력한 지면 제작

조우석 객원칼럼니스트(KBS 이사)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KBS 이사)

“조중동이 신문이라면, 우리 집 두루마리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냉소의 끝을 달리는 이 우스개가 나돈 건 1년 반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무렵이었다. 탄핵 소동 자체가 언론의 난(亂)이라는 걸 너끈히 가늠하던 사람들이 주류매체 조중동에 대한 환멸을 그렇게 표현했다.

책임 있는 주류 매체가 사라진 현 상황은 언론환경의 변화, 그 이상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수호하려는 매체가 전무(全無)하다는 얘기이고, 그건 국가위기를 새삼 재확인해준다. 그럼에도 조중동 사이엔 미세한 편차가 있어, 그걸 나는 ‘눈치 보는 조선, 날뛰는 중앙, 왕바보 동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유감은 세 신문의 제작태도는 개선된 바 없고 점점 나빠진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부패 기득권 신문의 몰골을 보여준 송희영 사태 이후 과연 무얼 했던가? 창간 이래 최대 위기였던 그때 단 한 번도 공식 사과를 통해 독자의 용서를 구한 바 없다. 인적 쇄신-지면쇄신도 없었고, 좌파 학자 손봉호를 내세워 윤리규범을 만든다고 요란을 떠는 걸로 대충 때웠다.

조선의 지면이 그래도 상대적으로 낫다지만,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본질에 대해 바른 말을 제대로 해본 적 있던가? 없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의 폭주가 거듭 된다. 그리고 미련 떠는 동아의 지면도 정말 환멸이다. 2개월 전인가? 그 신문 논설주간 김순덕이 쓴 괴상한 칼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배우는 협상의 법칙’을 동아닷컴 머리에 떡하니 올린 거야말로 악명 높다.

맞다. 그 신문은 완전히 얼빠졌는데, 명백한 증거가 있다. 그 신문의 창업주 인촌 김성수의 건국훈장 서훈 취소에 대한 저 무기력한 대응을 보라. 친일을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56년 만에 서훈을 취소한 게 지난 2월인데, 그건 동아일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폭거이자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었다.

놀랍게도 그 신문은 이 사실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부끄럽다고 판단해 묵살한 걸까? 사설이나 기명 칼럼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했다. 뭐하자는 건가? 그 신문 편집국의 200명 기자는 지금 무얼 하는가? 그래서 동아는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죽은 매체다. 오죽했으면 고려대 서지문 명예교수가 조선일보 작은 지면에서 서훈 취소 문제를 언급해야 했을까?

나는 이 문제를 올 상반기 미디어계 최대 참사의 하나라고 판단해 별도로 다룰 예정이지만, 중앙일보의 배신도 그 못지않게 참담하다. 올해 최악의 칼럼을 며칠 전 읽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 신문 수석논설위원이라는 고대훈의 5월 11일자 칼럼 ‘문재인과 미테랑의 사회주의 실험’ 이 그것이다.

문제의 칼럼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위선적 리버럴의 전형이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1년 평가를 겸하고 있어 더 쇼킹하다. 문재인 정부 1년은 미테랑 시절의 프랑스처럼 “사회주의 실험”이며, 그런 이념노선을 취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투다. 문재인 정부 1년은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이란 추임새까지 늘어놓았다. 논란은 다음이다.

“개혁-진보란 모호한 포장을 걷어내고 사회주의 실험이란 이름을 당당히 내걸고 국민 동의를 구할 때 성공 가능성이 있다.…어설픈 사회주의는 그만큼 비극적이고 치명적이다” 아무리 봐도 “사회주의 제대로 해보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통진당 이석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석기가 진보적 민주주의 운운했을 뿐, 드러내놓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을 말한 바는 없었다. 이 정도면 고대훈 칼럼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일간지로선 처음 있는 궤도 이탈이다. 이게 고약한 건 중앙일보 전비(前非)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그 신문이 무얼 했던가? 중앙과 JTBC의 일탈(逸脫)은 오너 홍석현의 좌편향 이념을 반영한 집단 행패였다.

드디어 그 신문이 ‘이념 본색’을 드러내자는 건가? 책임있는 주류 매체가 사라진 현 상황은 그래서 두렵다. 상황이 그러하니 일상적인 지면제작이 온전할 리 없다. 이를테면 올 상반기 내내 조중동에서 천재 래퍼 벌레소년 관련 글을 읽어보신 적 있는가? 거의 없으실 것이다.

올해 출현한 스타인 그가 ‘평창유감’, ‘좌파 강점기’, ‘김정은 꺼져’라는 정치풍자 랩을 잇달아 발표하고 수백 만 조회수를 기록할 때 조중동은 다시 완전 침묵했다. 한국 사회에 넘실대는 좌익의 물결이 두려워 조중동은 몸 사리기로 작정한 셈이다. 즉 조중동과 좌익세력 사이의 암묵적 동거가 지금 상황이다. 그걸 익히 알던 내가 또 한 번 쇼크 먹었다.

이번엔 전두환 경호병력 철수 소식과 관련해 조중동이 다시 일제히 침묵했다. 경찰청장 이철성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경호 병력을 내년까지 전원 철수하겠다고 밝힌 게 21일이다. 그날 ‘언론 위의 언론’ 포털을 중심으로 악다구니를 쳤다. 반면 조중동은 사실 보도부터 부실했다.

물론 이 사안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사설이나 기명 칼럼을 내보낸 바도 없다. 외부의 테러 위협 앞에 아무런 대응능력이 없는 90세 가까운 전직 국가수반 두 분을 방치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생존인물, 더구나 전직 국가수반을 린치의 표적으로 내버려두자는 건가? 경찰청장의 이번 결정은 예상되는 그런 행위를 방조-선동하겠다는 얘기다.

이철성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간접 살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왜 아무도 입도 벙긋 않는가. 오버하는 게 아니다. 며칠 전 쓴 내 글대로 좌파 만화가 강풀 원작의 6년 전 영화 ‘26년’을 기억하시는가? 관객 300만 명을 끌어 모았던 그 영화는 전두환 테러 행각을 노골적으로 담았다.

직후 정치인 박찬종은 MBN-TV에 출연해 “동학운동 때처럼 국민이 죽창 들고 연희동 사저를 찾아갈 것”이란 발언을 내뱉었다. 한 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자의 광기어린 언행이 그러했다. 분명 전두환-노태우 두 분에 대한 테러 위협 노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런대도 현대사를 잘못 아는 눈먼 대중들의 광기를 몰라서 경호병력을 철수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미디어 생태계는 전반적으로 요동친다. 특히 종이신문과 지상파는 신뢰의 위기, 산업적 위기, 내부 구성원의 자멸 가능성이란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한국 상황은 실로 심각한데, 이런 물결에 더해 정치적 이유로 자기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조중동의 배신은 그래서 슬프고 두렵다.

조우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KBS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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