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빨라졌다. 보험료율 인상이나 소득대체율 인하를 하는 대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32년 뒤인 2055년엔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수지 적자 발생 시점은 2041년부터이다.

국민연금 대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2055년에는 기금일 바닥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국민연금 대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2055년에는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 제도 현행 유지를 전제해서 향후 70년의 재정수지를 추계해 27일 이같은 시산(試算·시험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직전 추계보다 소진 시점이 2년 앞당겨졌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된 데 따른 결과이다. 국민연금을 받아야 하는 65세 이상 노인층은 2025년 기점으로 20%를 넘기는데, 국민연금을 부어야 할 생산연령인구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수를 나타내는 제도부양비는 올해 24%에서 2078년 143.8%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입자가 수급자보다 많은 삼각형 구조에서 가입자보다 수급자가 훨씬 많은 역삼각형 구조로 뒤바뀌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약 20년간은 연금 지출보다 수입(보험료+기금투자 수익)이 많은 구조가 유지된다. 현재 915조원(2022년 10월말 기준)인 기금은 2040년에 1천755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41년부터는 지출이 총수입보다 커지면서 기금이 급속히 감소해 2055년에는 소진될 것으로 추정됐다. 이 시점이 되면 47조원의 기금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78년엔 35%까지 높여야 한다.

정부는 오는 3월 다양한 시나리오별 분석을 포함한 재정추계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회 연금특위가 오는 4월 말까지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10월 말까지 국민연금 운영계획을 내놓을 계획이다.

정부와 국회 안팎에서 논의되는 국민연금 개혁 대책은 크게 4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이들 4가지 방안 중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병목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병목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① 핵심적 논의=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을 조합하는 개혁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개혁 논의 초점은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연금수령액 비중) 조정을 조합하는 방식에 있다. 첫째, 기금고갈을 막는 수준에서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소득대체율 40%는 유지된다. 보험료율 인상 폭이 적어지는 게 장점이다. 둘째,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소득대체율도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보험료율 인상 폭이 커지는 대신에 소득대체율을 현실화하는 장점이 있다. 셋째, 보험료율은 현행 유지하고 소득대체율을 인하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는 보험가입자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주지만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는 단점이 크다.

이들 세 가지 방안 중 국회 연금개혁특위 민간 자문위원회는 이달 초 첫째와 둘째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40%인 소득대체율을 인하하는 방안은 배제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자는 데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27일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한 ‘필요 보험료율’도 함께 제시했다. 이는 소득대체율이나 가입·수급연령 등은 고정한 채, 보험료율 조정만으로 재정목표를 달성하려 할 때 필요한 보험료율 인상률이다.

이 계산에 의하면 70년 후에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하기 위해선 현행 9%인 보험료율을 2025년 17.86%로 인상해야 한다. 적립배율 1배라는 것은 그해 지출할 연금만큼의 적립금이 연초에 확보됐다는 의미이다.

재정추계전문위원장인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추계 시산 결과는 현행 제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전망한 것"이라며 "이는 국회 연금개혁 논의와 향후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수립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② OECD 국가의 자동조정장치 도입=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연금급여, 은퇴연령, 보험료 등을 자동 조정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자동조정장치(Automatic Adjustment Mechanism)’를 도입하는 개혁 방식도 가능하다.

자동조정장치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연금급여, 은퇴연령, 보험료 조정 등을 통해 재원 고갈을 막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의 근본적 재정안정화 정책은 될 수 없고 보조적 정책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인구구조 안정화’가 근본 해결책이라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17년에 ‘아시아 연금의 자동 조정 메커니즘’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민연금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연금급여가 임금‧물가, 은퇴 시 기대여명, 또는 연금 재정상태에 따라 조정되도록 만들어진 장치이다.

예컨대 미래에 임금이 올랐다면 연금급여의 경우 자동으로 상승해 제공된다. 기대여명이 늘어나면 급여가 낮아진다. 연금 재정이 악화돼도 급여가 낮아지도록 조정된다.

또 기대여명이 늘어나면 은퇴연령이 늘어난다. 가입기간과 수급기간 비율이 일정해지도록 은퇴연령이 자동조정되는 것이다.

‘보험료 조정’은 재정이 재정안정화 임계 수준보다 낮아지면 보험료를 인상하는 시스템이다. IMF는 이 세 가지 정책 수단 중에서 ‘은퇴연령’이 기대여명 변화에 연계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권고했다.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보험료율을 높이는 자동조정장치는 노후보장 기능 상실이나 과도한 부담 등의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동조정장치는 현재 스웨덴, 독일, 일본, 핀란드, 캐나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3분의 2 정도가 운영하고 있다.

효시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8년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연금 제도를 대개혁했다. 보험료로 적립금을 쌓고 그 수익으로 가입자 급여를 지급하는 전통적인 확정기여방식과 달리, 개인이 부담한 보험료에 일정 수준의 이자를 추가한 금액만큼 연금을 지급한다는 개념이다.

스웨덴은 이어 1999년 공적연금에 인구통계학적, 경제·재정적 지표 변화와 연계해서 연금 재정에 따라 수급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추가적으로 도입했다. 캐나다도 재정추계 주기인 3년 내에 정치권에서 재정안정화 합의를 보지 못하면 자동으로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를 동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③ 보완적 개혁방안=정년연장과 연금수급 연령 늦추기

프랑스 정부는 정년연장과 연금수급 연령 늦추기를 동시에 단행함으로써 연금고갈을 막는 개혁을 추진중이다. 이 방법은 핵심대책이라기보다는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 핵심대책과 함께 수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연금 수급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상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연금을 100% 받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기로 한 시점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이는 수급연령 늦추기 계획을 조기에 실천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렇지 않으면 2030년부터 연금 적자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프랑스는 1981년 정년을 65세에서 60세로 대폭 낮추면서 연금이 빠르게 고갈됐다, ‘정년 65세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노동자 파업 등과 같은 반발이 거센 실정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만 55∼64세를 핵심 인적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기업의 자율적인 계속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장려금을 대폭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고용노동부와 관계 부처는 27일 서울로얄호텔에서 올해 첫 고용정책심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우리나라는 2025년에는 65세 이상 비중이 20.6%에 달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수를 나타내는 제도부양비는 올해 24%에서 2078년 143.8%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 수급자 수를 나타내는 제도부양비는 올해 24%에서 2078년 143.8%까지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④ 연금선진국 개혁방식=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변경

국민연금 기금 운용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기금을 쌓고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연금으로 지급하는 '적립방식'이다. 둘째, 매해마다 필요한 연금 재원을 당대의 젊은 세대로부터 세금이나 보험료로 거둬서 연금을 주는 '부과방식'이다.

한국은 부분적립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연금선진국들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국민연금의 운용방식을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변경했다. 미국, 독일, 스웨덴 등 연금 선진국들은 초기에는 상당 수준의 기금을 비축했으나 연금 수급자 규모 증가, 급속한 노령화 등으로 적립기금이 급감했다.

이들 국가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연금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5차 재정계산을 담당한 국민연금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 따르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 운용방식을 변경해도 상황은 간단치 않다. 현행 40%의 소득대체율을 지속하려면 보험료율(부과방식 필요보험료율)이 2060년 29.8%, 2070년 33.4%, 2080년 34.9%까지 인상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는 한 가지 방안만으로는 연금고갈 방지와 노후생활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연금개혁을 달성하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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