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한 분은 가고 한 분은 남았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괴상하고 해괴한 이론으로 사람들을 미혹시켜온 사람들이다. 가신 분은 변형윤이다. 그를 우두머리로 하는 속칭 한현학파(조선시대냐 아직도 호를 쓰게)는 한국 경제와 서민들의 생활을 망친 장본인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한 끝에 무책임하게 돈을 풀었고 이게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전 정권에 소득주도 성장 이론이라는 영감을 주신 것도 이 분들이다. 변형윤의 목표는 대한민국이 잘 살고 선진국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시비 걸기는 박정희 시대부터다. 박정희 정부가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드라이브를 걸자 그 길에 압정을 뿌려가며 과연 되겠어? 비웃었다. 생전에 그는 모든 발전에 딴죽을 걸었다.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대외종속을 심화시킨다고 했는데 이건 대학 경제학과 1학년도 웃을 얘기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었으면 지금 한국에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은 없다. 그는 평생 시장을 모르고 살았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갔지만 추종자들은 남았다. 이들은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대한민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것이다.

그럼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직접 쌓았니?

남은 분은 서중석이다. 최근 20권으로 완간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에서 그는 경제 성장이 박정희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이유는 별 거 아니다. 마침 세계 경제가 좋아서 얼결에 우리도 경제성장을 했을 뿐 박정희가 한 일은 없다는 얘기다. ‘경제는 박정희’라는 등식은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는 책 한 권을 다 할애한다. 먼저 묻는다. 댁의 역사 서술에 대한 이해는 대체 어느 별에서 가져온 것이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혼자 다 싸웠나. 그런데도 우리는 이순신이 해전에서 승리했다고 표현한다. 진시황이 외롭게 돌 날라 가며 만리장성을 쌓고 휘발유통 들고 다니며 혼자서 책을 다 불태웠나. 우리는 진시황이 쌓고 태웠다고 쓴다. 역사 서술은 그런 거다. 그의 시대에 벌어진 일은 그의 공과로 쓴다. 박정희 시대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상식에서 멀다. 한편 박정희는 독재만 했고 경제는 알아서 발전했다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 그는 경제발전의 주역이 기업인들이라고 설명한다(일반 인민이 다 했다고 주장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주영을 닦달해 배 팔아오라며 해외로 내보낸 게 박정희였다. 정부가 지불보증 해줄 테니 맘껏 뛰어보라고 등 떠민 게 박정희다. 말고도 다른 사례 더 들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반박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있다는 사실 자체가 치욕스럽다. 덩달아 바보가 되는 기분, 진짜 불결하다. 똥이다. 이 분은 아직 현역이며 앞으로도 한 동안 필드에서 뛰실 것이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착란의 정신병원 상태로 만들어 놓으실지 참으로 걱정이다.

그럴수록 읽어라 진짜 지식을

뉴스에도 가짜뉴스가 있듯 지식에도 가짜 지식이 있다. 거짓 선지자들이 현실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제 주장에 맞게 재단한 것이 가짜 지식이다. 가짜 지식의 첫 번째 특징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거울 위에 이리저리 페인트를 발라 놓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건너뛰고 뭉개고 덧칠해서 사람들이 읽지 못하게 만든다. 가짜 지식의 두 번째 특징은 자기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안다고 장담하는 것이다. 인류의 발전 경로를 훤히 다 꿰고 있으며(이를 칼 마르크스 신드롬이라도 부르고 싶다. 역사 발전 5단계론) 세상을 관리하고 통제하고 심지어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허풍을 친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인물들을 잘 알고 있다. 스탈린이 그랬고 마오쩌뚱이 그랬고 크메르 루주가 그랬다. 세상과 인간을 바꿔주리 미친 짓을 하며 셋이 죽인 사람 숫자를 다 더하면 2차 대전에서 죽은 사람 숫자가 나온다. 그 죽은 사람을 슬퍼하느라 눈물 흘린 가족의 수까지 더하면 미국 정도 규모의 나라를 새로 세울 수 있다(적게 잡은 거다). 이들은 전체주의 가짜 지식에 함몰된 결과 끔찍한 일을 벌였다. 가짜 지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진짜 지식은 사람을 살린다.

시장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시장실패라는 헛소리에 대한 통렬한 반박

최병선 선생의 신작 ‘규제 vs 시장(부제, 시장을 알아야 규제가 보인다’를 읽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시장과 규제가 상극이라는 사실 정도는 아실 것이다. 그러나 설명하라면 쉽지 않다. 그걸 쉽고 단순하며 명료하게 풀어 쓴 게 이 책이다. 책에서 앞서 말한 가짜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여러 사회 문제들을 보면서 왜 저런 문제 하나 옳게 해결하지 못하지? 하며 답답해한다면 당신은 형성적 합리주의자다.” 무릎을 치게 만든다. 우리 역시 종종 가짜 지식의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다. “왜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지? 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지?” 같은 식으로 우리는 이성을 과대평가한다. 어려운 말 같지만 형성적 합리주의는 아주 쉬운 개념이다. 문명이 인간의 의도적인 설계의 산물이라는 착각을 넘어 인간의 능력으로 문명의 어떤 부분을 개혁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착각에 빠져드는 게 형성적 합리주의다. 무엇이 떠오르시나. 바로 사회개조론, 전체주의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것이다. 반대가 진화적 합리주의다. 이성 자체가 사회진화의 산물이니 형성적 합리주의와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다르다. 이성이 있어 진화한 게 아니라 진화하다보니 이성이 생겼고 이성은 오랜 시간 따라 하기 혹은 흉내 내기를 통해, 반복적인 경험과 진화적 학습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라는 설명은 이 책에 가둬두기에는 아까운 진화인류학적인 통찰이다. 2장인 ‘하이에크의 눈으로 다시 보는 시장’과 3장인 ‘코우즈의 눈으로 다시 보는 시장’은 방어적 지식이자 자유주의자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생각의 질이 향상되고 머릿속이 정리된다. “가격은 고도로 축약된 정보”, “시장에서의 협력은 서로의 목적과 뜻이 같아서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협력” 등 계속 밑줄을 치게 만드는 문장의 향연이다. 아직 하이에크를 읽지 않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라. 이미 하이에크를 읽으셨다면 역시 이 책을 읽으라. 4장부터는 저자의 주종목인 규제에 대한 이야기로 앞부분과 달리 공격적인 지식이다. 정부 규제의 당위성을 끌어내기 위해 시장실패라는 허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은 통쾌하다.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많지만 자칫 책의 서머리가 될 것 같아 여기서 줄인다. 어항의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물고기가 죽는다. 어항에 산소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짖는 소리에 오래 노출되고 이를 효과적으로 때맞춰 방어하지 못하면 의식은 무뎌지고 정신은 황폐해진다. 뇌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 머릿속은 난지도가 된다. 새 물과 산소를 종종 넣어주어야 하고 이 책은 딱, 정확히, 제대로 그 역할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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