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핵보유를 향한 북한 김일성의 잰걸음은 1953년 한국전쟁 종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후 북한은 대를 이어 핵개발에 몰두했고 2006년 첫 핵실험을 하면서 ‘기술적 핵문턱’을 넘었다. 처음에는 “억제용일 뿐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겸손 코스프레’를 하면서 구밀복검(口蜜腹劍: 배에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한다)했지만, 2013년 ‘핵보유법’ 제강을 통해 ‘핵보검(核寶劍)’을 칼집에서 꺼내들고 이제부터는 휘두를 수 있다고 선언했다. 2017년에는 ‘미 본토 타격’을 위협하면서 미국과 핵설전을 벌였다. 실제로 미국과 핵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건드리지 못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노린 영악한 핵게임이었다. 2019년 5월 2018년 평화공세와 함께 잠시 중단했던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 이후에는 각종 신형 투발수단들을 과시했다. 필자가 ‘단계적 핵균형론,’ 즉 현 단계에서는 동맹의 핵역량을 통한 남북 간 핵균형을 구축하되 상황이 더 나빠지면 ‘미국 동의 하 독자 핵무장’을 통해 핵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북한의 난폭한 핵강국 코스프레는 이후에도 거침없이 이어졌고 2022년 9월에는 ‘핵무력 정책법’ 제정을 통해 ‘핵사용’ 전략을 재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1월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가 미 핵전력을 공동으로 기획·연습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어서 2023년 1월 11일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에서 “만약 핵무장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과학기술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게 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단계적 핵균형론’을 거론한 것이어서 이 방향의 주장을 펼쳐온 전문가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발언은 한·미 핵공조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제 하에 나온 것으로서 당장 핵무장을 시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지만,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이래 군통수권자가 공개적으로 ‘핵보유’를 거론한 것이 처음이어서 국내외로부터 주목받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대통령의 발언은 당장 또는 향후에 한국이 어차피 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으로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북한 핵포기 기대는 연목구어(緣木求魚)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내외로부터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직 의원 S씨는 방송을 통해 ‘극소수만을 환호하게 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논평했고, 전직 의원인 연세대 K 객원교수는 대통령의 “한미 공동 핵기획·연습 발언은 군사적 망상”이라면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립서비스 뿐’이라고 강변했다. 미국이 자국 핵무기에 대한 접근권과 사용권의 일부를 한국에 제공할 리가 없다는 논리였다. 미 군축협회 이사장 컨트리맨(Thomas Countryman)은 미 전술핵 재반입이든 자체 핵무장이든 “한국에 핵무기가 존재하게 되면 안보 이익보다 비용과 위험이 더 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워싱턴 소재 카토연구소의 밴도우(Doug Bandow) 박사는 한국의 핵보유를 반대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위해 핵전쟁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컨트리맨이 오바마식 비핵화 이상주의자라면 밴도우는 한국과의 동맹 자체를 미국의 부담으로 보는 ‘반동맹파’인 셈이다.

많지는 않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에 부분적으로 공감을 표하는 외국 전문가들도 있다. 미 외교협회(CFR)의 안(Jennifer Ahn) 박사는 독자 핵무장을 최후의 카드로 남겨둔 채로 일단은 미국이 제공하는 확대억제를 더욱 강화해야 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단계적 핵균형’론과 대체로 유사한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펜실베이니아대의 왈든(Arthur Waldron), 다트머스대의 프레스(Daryl G. Press), 린드(Jennifer Lind) 교수 등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미국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핵보유 문제는 한국의 현실적인 고민”이라고 윤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에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전략문제연구소(CSIS)는 1월 18일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제안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국내의 비판들을 종합해보면 “소수 의견이다,”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경솔하다,” “실속이 없다” 등의 부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중에는 무시해야 할 ‘비판을 위한 비판’도 있고 경청해야 할 것도 있다. 대통령의 핵 발언이 마치 극소수 극우론자들을 대변하는 것인양 폄하하는 사람들은 신문도 보지 않는가 보다. 요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 내외가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답하고 있으며, 약 60%가 남북 간 핵균형이 필요한 것으로 답하고 있다. 그리고 1/4 이상이 미국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독자 핵무장을 강행해야 한다고 하며 미국이 동의하는 경우에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답하는 응답자는 70%가 넘고 있다. ‘무책임성과 위험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는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한국이 직접 핵을 보유하면 남북 간 합의가 폐기되어 북한 핵포기를 설득할 여지가 없어지고 한반도 비핵화가 물건너간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했던 시기는 이미 옛날이다. 북한에게 있어 핵무력은 김일성 유훈이자 백두혈통 세습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상징이고 남북관계를 지배하는 대남 협박수단이며, 동시에 주체통일의 최대 장애물인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증파를 차단하는 외교·군사적 수단이다. 다시 말해, 설득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 찾기(緣木求魚)’나 ‘호수 속에 비친 달 잡기’와 같다.

게다가, 최근 북한의 핵 행보는 갈수록 ‘통제 불능’이다. 작년에는 최고 지도자 1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핵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한 야만적인 ‘핵무력 정책법’을 제정했고, 한국을 향해서는 ”핵무력의 사명은 전쟁 초기에 적의 전쟁 의지를 소멸시키는 것“이라면서 한반도 유사시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하겠다고 협박했다. 2022년 한해에만 40여 회에 걸쳐 10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여 신기록을 세웠고, 작년 12월 로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전원회의를 통해서는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핵무기의 공격 임무 실행, 신속한 핵반격을 위한 새로운 ICBM 개발, 전술핵 운용, 군사용 정찰위성 운용 등 한국과 미국을 겨냥하는 ‘국방력 강화 4대 목표’를 선언했다. 김정이 위원장은 직접 ‘핵탄두의 기하급수적 증강’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 2018년 군사합의 등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핵무력 증강과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북한이 폐기한 합의들을 우리만 지키면서 퍼주기식 비핵화 외교나 계속하는 바보가 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거나 ‘사상적으로 위험한 사람’일 것이다. 어디선가 도인(道人)이 나타나 인중유화(忍中有和: 인내하면 화목할 수 있다)나 백인만화(百忍萬和: 백번 참으면 만사가 화목해진다)를 외치면서 그것이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위한 길이라고 설파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 간 관계에 있어서의 덕목은 인간관계의 그것과 정반대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옆에 있는 친구가 폭력을 휘두를때 우정을 위해 맞아주고 참아줄 수 있지만 지켜야 하는 가족을 둔 가장이 되면 그 폭력을 방치할 수 없다. 수천만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남북관계를 위해 북핵을 눈감아 주자”는 바보놀음을 계속해야 하는가? 도인의 말을 믿고 백번을 참으려 하다가는 백번이 되기 전에 속절없이 망국(亡國)을 맞을 것이다.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나라는 없다.

핵균형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의 길

비판자들은 한국에 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간다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가 진리다. 일찌기 예수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기대하기 전에 네가 먼저 사랑을 베풀라”고 설파했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 ‘예수식 접근’으로 성공한 군비통제는 없다. 즉 제로섬 경쟁관계에 있는 두 나라 중 일방이 선의의 설득으로 상대방이 가진 비대칭적·일방적 무력수단을 내려놓게 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정반대로 ‘레이건식 접근,’ 즉 상응하는 대응조치로 상대의 비대칭 수단을 무력화시키고 오히려 유지하는데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줌으로써 상대를 협상으로 나오게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1980년대 초반 소련이 미국의 제안을 무시하고 공격용 핵미사일들을 개발을 계속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의 모든 형태의 핵공격을 우주와 공중 그리고 해상과 지상에서 막아내는 ‘전략핵방어구상(SDI)’을 추진했다. 소련은 자신들의 핵무기가 무력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공격무기 개발에 나섰지만 결국 소련 경제의 파탄을 가져와 전략핵 감축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중거리핵폐기조약(INFT), 1991년과 1993년의 전략핵감축조약(STARTⅠ,Ⅱ)은 그렇게 체결되었다. 대기권핵실험금지조약(PTBT, 1963), 우주에서의 핵무기 배치를 금지한 외계조약(Out Space Treaty, 1967), 핵실험 규모를 150kt 이하로 제한한 핵실험규모제한조약(TTBT, 1974) 등 그 이전의 수많은 핵군비통제 조약들도 이대로 가면 모두에게 손해라는 공동의식 하에서 성사되었다. 요컨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집요한 핵보유 동기를 가진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저들의 핵무기를 ‘보검’이 아닌 ‘쓸모 없이 양식만 축내는 코끼리(white elephant)’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중국에게 북핵을 무한정 두둔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방법이기도 한다.

정치적 안정 없으면 동맹도 없고 안보도 없다

물론 경청해야 하는 비판과 조언도 많다. 미국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동맹의 균열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장을 강행하는 것은 ‘덕보다 실이 많은 선택’이라는 말은 맞다. 6·25를 맞은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살아남은 것이나 이후 누려온 성장과 번영이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안정성 위에서 가능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맹을 흔들면서까지 핵무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북한이 가까이에 현시(顯示)된 미 핵역량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핵균형을 구축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며, 여기에는 나토(NATO)식 핵공유협정(nuclear sharing sgreement) 하 미 전술핵 재반입 또는 재반입에 준하는 효과를 내는 방식의 핵운용, 핵탑재 미 전략잠수함의 한반도 인근 해역 상시 배치 또는 수시 시찰, 북한을 겨냥하는 지대지 핵미사일(예: Dark Eagle)의 오키나와 도는 괌 배치, 핵상황을 가정한 연합 핵연습, 동맹조약에 핵우산 조항 삽입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다. 미 정부, 의회, 학계 등의 반대여론을 극복해야 하고 전임 정부가 미국 내에서 펼친 ‘가짜평화 로비’도 반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널리 인재들을 모아 Track-1.5 및 Track-2 외교에 활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걸핏하면 좌파정부가 들어서서 북한과 내통하는 것으로 보이는 나라와 핵자산을 공동 운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즉 정치권에서 종북세력들을 청산하고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지 못하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인데, 이 책임은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경솔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 있다. 대통령 스스로가 핵문제 전반과 전후 맥락을 깊숙히 파악한 상태에서 내놓은 진중한 발언인가, 안보와 동맹에 막중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이 시점에 직접 그런 형태로 발언해야 했는가 등에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시 대통령은 선제(kill-chain), 방어(KAMD), 응징보복(KMPR) 등 3대 역량으로 구축되는 ‘한국형 3축 체제’와 관련해서 ‘응징보복’ 능력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당연히 맞는 말이다. 선제와 방어도 필요한 역량이지만 기술적·재정적 타당성에 제약이 많고 특히 ‘선제’는 까딱하면 전쟁도발국으로 몰릴 수 있는 행동이어서 정치적 타당성에 제약이 분명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 ‘선제’를 강조했었다. 요컨대 대통령의 안보 발언은 앞뒤가 맞아야 하고 전문적이고 진중해야 하며, 누구도 함부로 반박하기 힘든 ‘안보 리더십’을 발산해야 한다. 민감한 안보 발언을 할 때에는 대통령과 군 또는 한·미 사이에 ‘업무 분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준비해야 할 길

동맹을 활용하여 남북 간 핵균형을 구축하는 것은 당장 가야 하는 길이며, 독자 핵무장을 통해 핵균형을 구축하는 것은 미래에 가야 하는 길일 수 있기에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중국이 팽창주의 행보를 계속하고 북한이 주제넘는 핵강국의 길을 고집하는 한, 그것들이 싫든 좋든 한국이 가야 할 길이고 준비해야 할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실속 없다”는 비판을 불식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강화된 동맹외교를 통해 제1단계 핵균형을 속히 실현하면서 동시에 제2단계 핵균형을 위한 ‘한국판 맨하탄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단이 내려지면 최단시일 내 핵무장 국가로 돌변할 수 있도록 핵탄 설계, 농축, 재처리, 핵분열 물질, 고폭, 기폭장치 등을 사전에 연구·개발·준비하는 것이다.

이 길들을 가거나 준비하는데 있어 국민과 정부 그리고 군은 안불망위(安不忘危: 편안할 때도 경계심을 가지고 위기에 대비한다)와 망전필위(忘戰必危: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온다)의 정신을 공유해야 하며, 정치권은 비판을 위한 비판을 삼가야 한다. 대륙으로부터의 위협이 가중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설쳤던 사람들, 북핵 대비가 시급한 줄 알면서도 한·미·일 연합훈련을 ‘친일’로 매도했던 정치인들, 그리고 평양의 구미에 맞추어 한국군을 ‘고개숙인 군대’로 만드는 전임정부이 국방개혁에 보조를 맞추면서 진급했던 군인들... 이런 사람들이 북한의 드론 도발 사태가 발생하자 갑자기 애국자가 되어 ‘안보 걱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국회에서 삿대질을 하는 역겨운 코메디는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대통령의 발언에 ‘실속’을 채우는 것은 지금부터 정부와 국민 그리고 여야(與野) 모두가 힘을 합쳐 해나가야 하는 안보과제이지 정쟁(政爭)의 대상은 아니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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