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의원을 둘러싼 당내 분란이 전당대회 경쟁을 넘어서 당내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나 전 의원을 향한 친윤계의 거친 공격은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거론하며 금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과열경쟁은 자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단순한 과열경쟁이 아니라 대의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과 출마를 검토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신년인사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과 출마를 검토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신년인사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경원, 당대표 출마는 ‘정상적인 정치행위’...윤 대통령과 ‘대립각’ 피하려 노력

나 전 의원을 돌연 반윤의 우두머리로 매도하거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으면서 자리 욕심만 부리는 사람이라고 난도질하는 등 친윤의 행태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나 전 의원에 대한 동정론까지 확산되는 실정이다.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을 정확히 내놓지 않으면서 실기(失期)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나 전 의원의 출마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 내 중진 정치인 중의 한 명이면서 당심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의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일부 조사에서 김기현 의원이 1위, 나 전 의원이 2위로 바뀌었지만 당 대표 출마를 위한 기본 자격을 갖추고 있다. 즉 나 전 의원의 정상적인 정치행위에 대해 ‘반윤’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나 전 의원은 윤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과의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아랍 에미리트 수십조 원 투자 유치를 이끌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 전 의원은 16일 SNS를 통해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로 맺은 원자력 협정과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상화를 이뤄낸 성과라고 평가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다. [사진=페아스북 캡처]
나경원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나 전 의원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종희 전 의원도 16일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 순방 중 출마 의사를 밝히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귀국 후 출마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이나 박 전 의원의 입장은 모두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유화 메시지로 풀이되고 있다. 나 전 의원의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사직에 대해 대통령실이 바로 해임 결정을 내린 것을 감안하면, 친윤계에 의해 ‘반윤’으로 매도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비춰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친윤계 좌장 장제원의 나경원 공격, 일부는 사실과 달라

시간이 흐르면서 친윤계의 공격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친윤계 좌장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의 공격은 ‘무차별 난도질’ 혹은 ‘마녀사냥식 공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 의원은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다. 불과 3개월 전에 본인이 그토록 원해서 간 자리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고, 기후환경대사 직은 본인이 원하는 명칭으로 바꿔 주면서까지 배려한 자리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아닌가?”라며 나 전 의원을 몰아세웠다.

장 의원의 공격에 대해 나 전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2의 진박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나"라며 반격에 나섰다.

그러면서 나 전 의원은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아침 대통령실 소속 누군가가 제 집 앞을 찾아왔다. 그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했다"라며 "당초 그 자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인 모 국회의원의 '겸직'으로 예정되어 있으나, 대신 해 달라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불과 3개월 전에 본인이 그토록 원해서 간 자리’라는 장제원 의원의 표현과는 180도 다른 나 전 의원의 해명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할 따름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그렇게까지 친윤계가 나 전 의원을 공격하는 이유가 오로지 ‘당권 장악’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김기현, 정진석 등 과열경쟁에 대한 우려 표명

‘친윤계 대표 후보’로 김기현 의원은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16일 아침 인터넷 신문 인터뷰에서 “누구든 출마해도 되지만,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거나 손실이 가는 형태는 공동체를 위해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 전 의원을 향한 ‘마녀사냥’식 공격에서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당권 주자 간 공방이 거세지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아침 회의에서 “과열 경쟁이 우려된다”며 자제를 호소하는 실정이다. 정 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은 당대표 얼굴로 치르는 선거가 아니고, 윤 대통령의 얼굴과 성과로 치러질 선거”라며 “상대를 향한 말이 너무 날이 서 있는 느낌이라 좀더 차분하게 갔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위원장은 앞서 ‘친윤’ 혹은 ‘비윤’이라는 용어를 자제하자는 말로 당내 단결을 호소한 바 있다.

나경원 출마 후 김기현 당선되면 당내 민주주의 성숙해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친윤계의 나 전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실정이다.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특정 세력이 노골적인 판짜기를 했다가, 보수 여당으로 진보 야당에 원내 제1당의 지위를 뺏기는 수모를 당한 경험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나 전 의원이 지난 15일 SNS에서 지적한 대로 ‘진박감별사’ 파동으로 인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 대해 가진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보수 여당의 패배에 한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 친윤계가 보여주고 있는 거친 공격과 패거리 의식은 2016년 총선의 데자뷔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친윤이 미리 판을 짜고 ‘친윤’ 당대표를 만들어내려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만약 2016년 총선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비박’ ‘반박’ ‘멀박’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친박’ ‘진박’계를 자제시켰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더욱이 대의민주정치의 원칙상 누구든지 제약없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 후퇴는 물론 총선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김기현 의원이나 나 전 의원 모두 ‘친윤’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만약 나 전 의원이 출마한 상황에서도 김 의원이 ‘친윤’ 의원들과 그에 영향 받은 80여만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대표에 선출된다면, 오히려 당내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성숙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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