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1월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중했을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알아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금성을 통째로 비워 '황제의전'이란 평가를 받았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빼고 다소곳이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한국에서는 '미국 앞에선 알아서 착해지는 중국' 등 시 주석을 비꼬기도 했다. 이번 한일 비자 발급 중단 등에서도 중국은 자신보다 소국엔 대국처럼 굴면서 자신보다 대국에겐 한 마디도 못하는 전형적인 약강강약의 모습을 보여준단 평가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단기 비자 발급 중단, 경유비자 면제 중단 등의 보복 조치를 감행한 중국이 미국에 대해서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장기간 중단됐던 미·중 간 항공편의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11일 관영매체를 통해 자신들은 '다른 어떤 나라들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정책을 취한 적 없다'며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로 동등하게 다뤘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스스로 부인하고 소국이 대국에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중국민항국 운수사(司, 국)의 량난 사장은 지난 10일 공산당 대외연락부가 외국 상공계 인사들을 초청해 진행한 간담회에서, 민항국이 8일부터 중국과 외국 항공사들의 운항 재개 신청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신청엔 미·중 항공노선 운영 재개를 원하는 양국 항공사들의 신청도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이날부터 '방역 만리장성'이라 불릴 정도로 엄격했던 '입국자 격리' 및 '중국 도착 후 코로나19 PCR 검사'를 폐지하면서 지난 3년 간 걸어잠궜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에 발맞춰 항공사들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량 사장은 이러한 요청에 대해 "민항국은 현재 절차에 따라 심사 및 승인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중국과 미국 항공사가 협정과 시장 수요에 맞춰 양국간 항공편을 운영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고 중국신문망은 전했다. 이어 "민항국은 항공편 운항 재개 과정에서 미국 민항 주관 부문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중·미간 항공편의 순조로운 운항 재개를 추진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중국신문망의 보도 내용을 참고하면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단기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하고 중국 경유 비자까지 중단하는 등 연쇄 보복 조치로 대응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항공편 수를 늘리고 있다. 즉 상대 국가의 국력에 따라 서로 다른 대응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보다 힘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보복 조치를 단행하지만, 자신보다 힘이 강하다고 인정하는 나라에겐 말 한마디 못 하는 중국의 외교 태도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란 것이다.

중국은 자신의 세계관 내에서 소국은 철저히 무시하면서 반대로 대국에는 철저히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한국에 대해서는 지난 2016년 말 천하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너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는 등 과거 조공체제 하에서나 있을 법한 상국의 자세를 취했다. 반면 지난 2017년 11월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서 있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다소곳하게 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말 천하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사드 배치 관련해 한국 기업인들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말. 이는 외교적 언사로는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사진=KBS]

또한 중국 정부는 11일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 사설을 통해 한국에 자신들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의 이전 코로나 예방 정책은 엄격하긴 했지만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정책이 취해진 적은 없었다"며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로 동등하게 다뤘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부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돼 가는 상황에서 대책 없는 '위드코로나' 실시가 과학적·현실적인 건 아니란 우려와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글로벌타임스 사설에서 "미국과 일본은 감염에 있어 새 정점을 경험하고 있다"며 "한국 언론에서도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XBB변이가 '유럽을 점령할 것'이라고 기사가 많이 났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보복 조치를 단행할 것이 아니라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니냔 지적이 나온다. 과학적·현실적 방역 정책을 추구해왔다고 주장하는 중국이 변이 확진자가 폭증하는 미국과 상호 간의 항공편을 늘린다면, 자가당착적 태도에 불과하단 것이다.

실제로 미국도 한·일과 마찬가지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에 대해서는 항공편 탑승 이틀 안에 실시한 코로나 검사 음성 확인서 제출을 의무하는 등 방역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미국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한국과 일본에만 비자 관련해 보복 카드를 들이밀었다. 대국인 미국에는 아무말 못하면서 자신보다 소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웃 국가에 화풀이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인 셈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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