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서비스노조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산하 노조의 의사결정 효력을 부인하는 막가파식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노조와 금융감독원 노조가 조합원 총회를 통해 탈퇴를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밀린 조합비를 납부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민주노총, ‘손가락 하나 자르고 가라’는 식의 조폭행태 보여”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외면해왔으나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9일 민주노총 행태에 정면 비판함에 따라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생겼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여해 민주노총의 행태를 정면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여해 민주노총의 행태를 정면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노총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노조 탈퇴를 막기 위해 밀린 조합비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민노총의 정치투쟁에 반발해 환멸을 느끼고 탈퇴하려는데 왜 막느냐”면서 “한국은행 노조가 탈퇴를 하는 과정에서는 조폭 세계에서 탈퇴하려면 '손가락 하나 자르고 가라'는 식의 공포 분위기마저 느껴진다”고 강력 비판했다. 민노총의 행태가 조폭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주 원내대표는 “노동당국과 수사당국은 탈퇴 거부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위법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향후 민노총이 제기한 소송 재판을 통해 민노총의 ‘조폭식 탈퇴 방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질 전망이다.

한은 노조와 금감원 노조, 조합원 총회 통해 ‘민노총 탈퇴’ 결정...민노총은 탈퇴 거부하면서 밀린 조합비 납부 소송 제기해

한국은행 노조와 금융감독원 노조는 각각 2020년 7월과 지난해 4월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모두 조합원 총회를 통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내린 의사결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지난해 12월 말 이들 노조에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급단체인 사무금융노조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퇴 시점부터 밀린 조합비를 납부하라는 황당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입하는 이익단체이다. 가입과 탈퇴에 있어서 자발적 의사가 기준이 돼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한국은행 노조와 금감원노조 조합원들의 자발적 의사를 무시하고 ‘조직의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조폭 행태’라고 비난을 해도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무리수를 두는 것은 ‘탈퇴 러시’를 방지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치투쟁에 몰두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거부해온 민주노총의 행태에 대해 한국사회 전반의 피로와 혐오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에 초강수가 효과를 낳기보다는 반발을 초래하는 흐름이다.

사무금융노조가 한은 노조에 제기한 소송액은 1억8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은 노조가 2020년 7월 탈퇴 전까지 매월 650만원 가량의 조합비를 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28개월 분의 조합비를 요구한 것이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해 4월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따라서 8개월 정도의 조합비를 소송액으로 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예금보험공사 낙하산사장 임명시도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예금보험공사 낙하산사장 임명시도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은 노조는 지난 2020년 7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탈퇴를 결의했다. 전체 대의원 59명 중 57명이 참석해 52명이 투표했다. 그 결과 찬성 46표가 나와 탈퇴안이 통과됐다. 한은 노조는 내부 규약대로 대의원대회를 통해 탈퇴를 결정해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구성원의 복지와 근로조건 개선 그리고 사측과의 공동발전 등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기에 상급단체의 노선이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자체 규약에서 “개별노조 총회를 통한 집단탈퇴는 불가하다. 조합원 탈퇴절차는 지회장, 지부장, 위원장 결재를 거쳐 탈퇴 처리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노조탈퇴를 위해서는 조합원이 개별적으로 지회장 등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 노조도 지난 4월 “금감원이 금융회사를 감독 및 감사해야 하는데 금융회사들과 함께 같은 산별노조(사무금융노조)에 가입해 있어서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탈퇴를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금감원 노조에 대해서도 밀린 노조비를 내라고 소송을 했다.

법원이 민주노총 손 들어주면, ‘조폭 행태’에 정당성 부여하는 최악의 사태 벌어져

향후 법원의 판결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법원이 민주노총의 손을 들어준다면, 구성원의 자유의사에 의한 탈퇴를 막는 ‘조폭 행태’를 사실상 용인해주는 결과를 빚게 된다. 일단 민주노총에 가입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족쇄를 차게 된다는 점을 사법부가 만천하에 공포하는 격이 된다.

그러나 한은 노조와 금감원 노조는 2016년 대법원의 ‘발레오만도 판결’을 거론하면서 민주노총이 패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시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가 2010년 6월 조합원 총회를 열어 민노총을 탈퇴했다. 대신에 개별 기업노조인 발레오전장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노사분규로 직장폐쇄가 장기화되자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강경노선에 반대하며 탈퇴한 것이다. 당시 금속노조 산하 지회장은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집단탈퇴’는 금지돼 있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탈퇴는 개별적으로 지회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2심에선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민주노총이 조합원의 개별적인 탈퇴만 인정한 것은 이익단체인 노조의 탈퇴에 제약을 두는 조항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포스코 노조의 민노총 탈퇴 신고 반려...민주노총의 탈퇴 방해 공작 인정한 셈

정부부처의 대응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민노총은 지난해 12월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저지한 바 있다.

2018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포스코 노동자들이 금속노동조합 가입보고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해 12월 민노총은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저지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포스코 노동자들이 금속노동조합 가입보고 기자회견을 했다. 지난해 12월 민노총은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를 저지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금속노조는 포스코지회가 민노총에서 탈퇴하려 하자 포스코지회 임원 3명과 대의원 4명을 제명했다. 이에 맞서 노조 집행부는 총회를 통해 탈퇴안을 투표에 부쳤고, 69.93%가 찬성해 탈퇴가 결정됐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 신고를 반려했다. 제명당한 노조 집행부가 탈퇴 투표 총회를 소집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고용노동부의 논리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앞으로 포스코와 유사한 방식으로 개별노조들의 탈퇴 시도를 무산시킬 수 있다. 탈퇴를 위한 총회를 소집하려는 노조 집행부를 사전에 제명시켜 버리면, 총회 자체가 원인무효라는 게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조폭식 탈퇴 방해’ 행태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와 정부당국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자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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