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산시 대출 탕감' 내용이 포함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상의 없이 이뤄진 발표라며 적극 반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이 지난 5일 '출산시 대출 탕감' 내용이 포함된 저출산 대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상의 없이 한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이 단순히 부위원장으로서 한국의 당면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안을 제시한 게 아니라 당대표 출마를 위한 '자기정치'를 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나 전 의원의 처지가 '사면초가'가 되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이 제시한 '출산시 대출 탕감' 정책이 그저 저출산고령사회의원회의 부위원장으로서 밝힌 정책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의원회의 위원장은 엄연히 윤석열 대통령이고 나 전 의원은 부위원장임에도 대통령실과의 논의 한번 없이 독단적으로 이 정책을 발표했단 입장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문재인 정부의 현금 포퓰리즘을 지양해 미래세대에 빚을 남기지 않는 것임을 천명했는데도, 이를 모를 리 없는 나 전 의원이 '다른 목적'을 위해 이런 돌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의 '다른 목적'이란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다. 이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부위원장직과 저출산 대책 일방적 발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단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발표된 당대표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인 국힘 지지층 사이에서 35.0%로 1위를 차지했다. 15.2%를 차지한 김기현 의원과도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이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것이 그가 임기 3년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음에도 당대표 출마로 뜻을 정한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에 나 전 의원은 당협을 돌며 당심 굳히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을 2번이나 적극 반박했다. 지난 5일 나 전 의원이 처음으로 '출산시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하고 난 후 다음날인 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나 전 의원의 언급은) 개인 의견일 뿐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으며, 8일에도 대통령실은 다시 한번 나 전 의원 주장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일련의 처사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러워 하고 있다"며 "나 전 의원은 위원회 논의와 전문가 검증 없이 언론에 발표해 정책의 혼선을 초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무총리실이 '국정기조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했음에도 발표를 강행한 것은 행정부의 일원임을 망각한 처사"라고도 지적했다.

나 전 의원의 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반박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해명 내용과 과정에도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 전 의원은 6일 대통령실의 반박 브리핑 이후 MBC를 통해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한 건데, 개인 의견으로 치부한 건 너무하다"며 "대출원금 탕감 정책은 위원회에서 계속 검토하겠다"고 해명 겸 반박했는데, 대통령실은 이 해명이 잘못됐다고 보고 있다. 연말에 열리기로 했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연기됐음에도 나 전 의원이 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또한 MBC의 이 모 기자가 나 전 의원의 해명을 전했는데, 이 기자는 지난해 11월 21일 도어스테핑을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가는 윤 대통령에게 "뭐가 가짜뉴스라는 거냐"며 거세해 항의했던 당사자였다. 이 기자는 당시 슬리퍼를 신는 등 대통령실 출입 기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복장을 착용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윤 정부 고위직을 맡고 있는 나 전 의원이 윤 대통령과 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 기자와 인터뷰를 했단 점에도 분노하고 있단 평가다.

나 전 의원이 비판받는 또 한가지 이유는 과거 스스로 정치인의 '자기 정치'에 대해 반대한 적이 있단 점이다. 나 전 의원은 이준석 전 국힘 당대표의 징계 과정에서 당내 혼란이 빚어졌던 지난해 8월 중순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지지율도 과연 계속해서 유지할 것이냐에 대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지금은 물러서고 기다릴 때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가 하는 모습은 당에도 자해 행위가 되는 것이다"라며 "조금만 내려놓고 조금만 기다리면 그래도 젊은 정치인이시고 또 당대표까지도 지내셨기 때문에 분명히 미래가 있을 텐데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이준석 전 대표에게 조언을 건넨 바 있다. 당시 나 전 의원은 이 전 대표의 가처분 행위 등이 '당 자해 행위'라 보고 물러나라고 했는데 이는 윤 대통령과 당내 다수의 의견을 거스르지 말란 뜻으로 풀이됐다. 이 말대로라면 나 전 의원도 그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한 '윤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당대표 후보로 출마해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된다.

나 전 의원의 '자기정치'의 결과 대통령실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해촉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은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지극히 부적절한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며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처사"란 입장이다.

한편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출산시 대출 탕감'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나 전 의원은 한국판 대출 탕감 대책을 제시했는데, 그에 따르면 출산을 하게 되면 이자와 원금을 탕감해주게 된다. 이는 출산과 신혼자금 대출을 연계하는 것으로, 나 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조금 더 과감하게 원금 부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탕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이는 신혼부부에게 저금리로 4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첫째를 낳으면 원금의 절반을 탕감해주며, 셋째를 낳게 되면 전액 면제해주는 헝가리 사례를 든 것으로 풀이된 바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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