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오는 3월 8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장악한 친윤계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선거 출마를 맹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며 대구로의 하방을 자처한 홍준표 대구시장도 대통령 의중을 살펴가며 당내 문제에 쓴소리를 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홍 시장 역시 연일 나 전 의원을 공개 비난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을 부위원장직에서 해촉할 가능성을 암시하며 자진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전날에 이어 오늘도 "장관급 고위 공직자가 정부 정책 기조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말을 했다"며 "고위 공직을 당 대표 선거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나 전 의원이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대출 원금 일부 탕감 주장까지 내놓자 대통령실은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의 이례적인 실명 비판 브리핑을 통해 대응을 시작했다. 나 전 의원의 주장은 개인 의견일 뿐이며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는 공개 면박이었다.

주말새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을 해촉할 것임을 내비칠 정도로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위의 정식 회의가 여태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음에도 나 전 의원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위원회 차원에서 해당 정책을 검토했다는 '거짓 해명'을 했다고까지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3년 임기의 장관급 공직자로 임명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 전 의원이 당권 도전으로 마음을 굳히자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관계자들은 "부위원장직을 그만두고 나가는 게 맞다" "사표 내야지 어린애도 아니고 고위 공직자가 어떻게 그런 행태를 보일 수 있느냐"고 했다.

여당 전당대회 개입으로 비춰질까 우려되는지 대통령실은 "정책을 두고 심각한 견해 차이가 벌어진 만큼 정부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바로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정관계 안팎에선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 축출 전후로 나 전 의원은 차기 당대표 후보군에 진즉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정부 출범 당시부터 장관직을 바랐던 것으로 알려진 나 전 의원에게 정부 위원회 자리까지만 줬다. 대통령실은 당내 윤핵관 등과 더불어 당대표 후보 단일화 작업에 들어갔고 최근엔 선거 사무실까지 마련한 권성동 의원이 불출마로 급히 노선을 돌림에 따라 김기현 의원으로 교통정리가 마무리됐다는 평이 우세하다.

대통령실과 마찬가지로 김기현 의원과 김 의원을 지지하는 친윤계 의원들은 나 전 의원 출마를 대놓고 성토했다.

김기현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정부직 대사(기후환경대사), 정부직 부위원장(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을 맡고 있으면서 당의 대표를 한다면 그것이 국민 정서에 바람직한 것이냐는 비판이 들어올 것"이라며 "과거에 그런 전례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거는 좀 과도한 본인의 생각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친윤계 초선의원으로 맹활약 중인 박수영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지금 후보들 중 가장 안정적으로 당을 운영할 분은 김기현 전 원내대표라고 생각한다"며 "지지하는 현역 의원이 한명도 없는 분이 지금 지지율이 조금 높다고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정치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그냥 조용히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연탄 만지는 손으로 아무리 자기 얼굴을 닦아도 검정은 더 묻게 된다. 보수의 품격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비난을 늘어놓을 때 참 어이가 없었는데 요즘 하는 거 보니 품격이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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