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지난 1월 "美 전역 공격 가능 핵무기 완성" 큰소리 쳐놓고 불과 100일도 안 돼 "핵 폐기할 수 있다"
南北회담 지켜본 美, CVID 확대·강조...중단거리 미사일·생화학무기 폐기+'북한인권' 문제도 지적
日, 트럼프 설득해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北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요청
트럼프, 김정은에 안전보장...그러나 "만약 회담장에 나오지 않으면 북한을 '사멸(decimate)'시켜 버릴 것"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을 것인가 미국에 의해 사멸될 것인가"...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 당시 조선황실과 유사한 상황
김정은의 고민은 보편적원칙 무시하고 최악의 인권유린 독재정치를 단행해온 북한정권 70년의 업보

이춘근 객원 칼럼니스트
이춘근 객원 칼럼니스트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과 대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큰소리쳤다. 마이크가 여러 개 놓여 있는 탁자위에서 연설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는 언제라도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단추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핵 단추(Nuclear Button)'란 용어는 핵전략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실제 핵무기를 발사할 경우 단추를 누르지는 않는다. 미국의 경우는 대륙 간 핵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단추가 아닌 ‘열쇠’를 사용한다. 요즈음 신형자동차들은 버튼을 눌러 엔진을 가동하지만 구형 자동차들 대부분은 열쇄를 꽂아 돌림으로서 엔진을 가동시킨 것처럼 말이다.

애써 시비를 걸자면 김정은의 언급에는 허구적인 요소가 많았다. 어느 경우도 국가의 지도자가 핵미사일을 직접 발사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 상황에서 자신이 핵단추를 직접 누를 것처럼 말했다. 핵 단추라는 개념은 핵보유국의 국가원수가 언제라도 즉각적으로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는 개념인 것은 맞다. 핵단추라는 것은 적이 먼저 도발할 경우 언제라도 즉각 대응한다는 의미의 ‘핵 억제(nuclear deterrence)’를 위한 장치인데 김정은의 언급은 이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틀리는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 바로 옆에는 언제라도 검은 가방을 들고 대통령을 수행하는 중령급 장교가 있는데 그가 들고 있는 가방이 바로 축구공(Foot Ball) 이라는 암호명을 갖는 핵 가방이다. 이 핵 가방은 소련이 선제공격을 가했을 경우 즉각 반격을 가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마련된 것이다.

소련의 핵미사일이 발사 된 후 미국 본토 주요 표적들에 도달하는 데는 대체적으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만약 소련이 미사일 발사를 탐지한 이후 미국이 보복 공격을 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30분이 넘는다면 비상시 소련은 미국을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두 나라는 모두 상대방이 선제공격을 가할 경우 거의 즉각적으로 보복공격을 단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항상 미국 대통령 바로 옆에 붙어 따라다니는 핵 가방은 소련의 공격에 대항, 미국의 핵미사일 부대에게 공격을 허가하기 위한 장치다. 핵 가방을 연후 불과 몇 분이면 미사일 부대에 명령이 도달한다. 이처럼 미국과 소련은 적의 공격에 즉각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기에 어느 나라도 선제공격을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김정은이 이 같은 사실(핵 억제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려 했다면 ‘내 사무실’ 이 아니라 ‘내가 연설하고 있는 지금 이 탁자 위에도 핵 단추가 놓여 있다’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미국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가 있다고 큰소리친 후 불과 100일도 되지 않은 3월 초, ‘핵을 폐기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은 ‘선대의 유훈’이라며 정당화시켰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진정 유훈이라면 유훈통치의 나라인 북한이 선대의 유훈을 몇 십 년간 거스르고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갑자기 선대의 유훈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인 1967년 김일성은 ‘우리도 원자탄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이 이를 사용하면 우리도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다’며 핵보유의 염원을 말한 바 있었다. 아직 김일성이 생존해 있던 시절 김정일은 ‘수령님 대에 조국을 통일하려면 하루 빨리 미국에 도달 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직후 1994년 김정일은 북한의 핵과학자들을 불러 놓고 ‘믿을 것은 핵 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2017년 한 해 동안 기세등등하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했던 김정은은 2017년 5월 15일 ‘자손만대에 물려줄 주체탄이 완성되었다’ 며 핵 무력 완성을 자랑했다. 5월 14일 발사했던 미사일 실험 성공을 축하하던 파티에서 북한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2017년 11월 19일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김정은은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그렇게 핵 강국이 되었음을 자랑했던 북한이 불과 3개월 만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무기 해체’에 동의하고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역시 그 배후에는 미국이 군사력 사용을 포함 무지막지하게 내려 누르고 협박했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나 먼저 말로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북한이었다. 김정은이 3월 5일 북한을 방문한 한국 특사들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일행은 3월 8일 백악관을 방문, 이 같은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트럼프도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응답했다.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김정은이 오로지 ‘핵 폐기 회담’ 이 아니면 북한과 마주 앉을 필요도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미국과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다니. 아무래도 김정은은 절체절명의 급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집요한 제재 때문에 북한 경제는 파탄 상태에 이르렀고, 더 이상 버티다가는 미국의 군사공격마저 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한시라도 북한을 무력 공격할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김정은은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비록 과거보다 ‘모호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물론 김정은은 자신의 입을 통해 비핵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적어도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악마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털어버리고 심지어는 ‘오빠 부대’ 까지 만드는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한국을 ‘제압’ 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회담을 준비했다.

그런데 미국과의 회담을 준비하는 동안 김정은이 예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물리적, 정치적인 골칫거리들이 노정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그렇게 나올 줄을 알았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북한이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의 요구는 대단히 까다로운 것일 뿐 아니라, 북한이 보기에 미국의 요구 사항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북한 간의 만남을 지켜 본 미국은 그동안 말해왔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CVID 를 더욱 확대 및 강조했다. 즉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영원한(Permanent) 비핵화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CVID(완전한 비핵화) 나 PVID(영원한 비핵화)는 그게 그것이다. 'I'를 의미하는 'Ireversible(되돌이킬 수 없는)'이 바로 영원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무기는 물론 다른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들 까지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은 물론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 뿐 만아니라 생화학 무기 등 다른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까지 해체하라고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인권 문제도 건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시간으로 4월 26일, 즉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바로 그날, 북한 당국의 고문과 학대로 죽게 된 오토 웜비어(Otto Wombier) 군의 부모가 북한 당국을 고소한 것이다. 4월 29일 미국 국무부는 지난 60년 동안 북한은 ‘김씨 일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독재국가’임을 규탄하는 인권 보고서를 간행하기도 했다.

일본의 아베 수상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트럼프를 만나 일본인 납치 문제까지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고 일본 국방장관 오노데라는 매티스 미국 국방 장관을 만나 북한의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까지 모두 폐기 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나라 언론이 영어단어조차 틀리는 '패싱(Passing)'이라는 말을 써가며 일본이 패싱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고들 있지만 사실 일본은 자기의 요구를 다 말하고, 이를 위해 미국에 은밀한 협박도 가하고 있었다. 미국까지 날아 갈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핵만 동결한다면 일본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시사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일본이 핵무장하는 날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이며 특히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자. 트럼프는 일본인 납치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고 다른 미국 관리들은 중단거리 미사일, 화학무기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반 트럼프 언론들이 '볼튼과 폼페오가 불화를 빚고 있다'는 등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해대고 있지만 백악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주도하는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은 북한 핵문제의 리비아 식 해결을 요구하며,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을 것을 강조했다. 북한이 발끈하자 리비아식이 아니라 '트럼프 식'이라며 말 장난들을 하고 있지만 리비아식의 본질적 의미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 우선이고 보상은 나중이라는 의미다. 물론 리비아의 가다피는 핵을 폐기하는 과정에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봉착했고 미국은 가다피에 대항하는 리비아 국민들을 제압해 주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이 가다피를 죽인 것은 아니다. 가다피는 자신을 반대하는 자기 국민들한테 맞아죽은 것이다.

그러는 동안 김정은은 5월 8일 또다시 은밀히 중국을 방문했고 이번에는 비행기를 이용했다. 5월 10일 싱가포르로 확정된 트럼프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예행연습을 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한 분석은 아니다. 김정은이 대련에 타고 갔던 비행기는 싱가포르까지 날아가기에는 역부족인 단거리용 비행기이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제조한 일류신 76(IL-76) 기는 항속거리가 5,000Km 이며 최대 6 시간을 비행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 창이공항까지 대한항공의 신형여객기들이 약 6시간 20분 걸린다하니 김정은이 5월 8일 대련까지 약 350Km 를 비행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장시간, 장거리인 것이다. 현재 북한 비행기 중에서 싱가포르까지 충분히 갈수 있는 비행기는 항속거리 10,000Km 짜리 일류신 62(IL-62) 기인데 대단히 오래된 낡은 기종이라 김정은이 안심하고 타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시껄렁한 이야기 같지만 격식과 형식이 극도로 강조되는 외교의 세계에서 타고 갈 만한 비행기가 마땅치 못하다는 것 역시 김정은의 머리를 쥐나게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이 판문점에 왔을 때 타고 온 폼나는 독일제 차를 생각해 보라.

김정은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6월 12일 이라는 특정 날자가 너무 일찍 결정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에게 6월 12일은 너무 늦게 결정된 날일 수 있다. 회담을 준비하는데 불과 한 달의 여유 밖에 없으니 말이다. 북한의 뉴스를 오래 접한 사람들은 북한의 언론들이 김정은의 일정을 사전에 미리 발표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언론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일정을 좀처럼 미리 발표하지 않는다. 즉 지도자의 동선(動線)을 사전에 밝히지 않는다.

최근 우리는 김정은이 중국을 두 번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언제라도 과거형으로 발표되었다. 즉 언제 ‘방문 할 것이다’가 아니라 ‘방문하시었다’였다. 그 이유는 김정은의 경호 문제 때문이다. 김정은이 주석궁을 언제 며칠 동안 비울 것이 분명한 일정을 사전에 미리 발표하는 것은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희귀한 일인데 6월 12일 김정은이 평양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만 천하에 무려 한 달 이전에 알려진 꼴이다. 아마도 6월 11, 12, 13일 평양의 주석궁은 주인이 없는 빈 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게 김정은에게 자신 있는 일일까? 그래서 북한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국과의 회담을 무산시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디어 북한은 사실은 말이 잘 안 되는 핑계를 찾았다. 5월 16일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이 북한에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며, 북-미 정상회담(6월12일 싱가포르)에 응할지 다시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그 다음날인 17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시작된 지 며칠 동안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한미양국이 벌이는 맥스 선더(Max Thunder) 공군 연합 훈련을 시비 걸고 나온 것이다. 김정은은 미군 주둔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는데 훈련가지고 시비를 건다니, 그것도 훈련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중에 시비를 건다니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시비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놀랍다. 특히 미국의 국회의원들이 놀라운 말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대화하기를 꺼리는 상대하고 대화를 굳이 진행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 공화당 중진이며 대통령에 출마 했었던 마르코 루비오 의원은 북한이 미-북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을 시사한 것과 관련해, “그렇다면 북한은 회담을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북 회담이 없을 경우 제재는 계속될 것이며 군사 위협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말이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는 트럼프도 북한에 대해 오히려 더욱 강력한 반박을 했다.

우선 북한은 볼턴 보좌관의 언급에 시비를 걸었다. 볼턴이 가다피의 경우처럼 김정은을 제거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김계관이 볼튼을 해임시킬 수 있는 것처럼 쓰고 있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볼튼과 트럼프의 견해는 전혀 다르지 않으며, 볼튼은 계속 트럼프에게 자문을 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쓰고 있다.

북한이 볼튼의 리비아 식 모델을 비난한 데 대한 트럼프의 말이 기가 막히다. 트럼프는 미국은 가다피에게는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았었는데 김정은에게는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미국 언론이 이를 보도하기 위해 사용한 영어 단어들이 황당하다. Fox 뉴스의 경우 "트럼프는 김정은이 권좌에 있는 것을 ‘허락’(Allow) 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직접 김정은을 ‘보호’(Protect)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 등을 자막 처리 했는데 실제로 트럼프는 'Protect'라는 영어 단어를 직접 말했다. Allow, Protect 라는 용어가 거침없이 사용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지속적인 집권을 허락(Allow)하고 보호(Protect)해 주겠다고 한다. 이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의미를 가진 말인지 알아보자.

우선 가다피를 죽인 것은 가다피의 억압에 항거해서 일어난 리비아 국민들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다피에 반대하는 리비아 인들로 구성된 반군(叛軍)이 가다피를 무참하게 때려 죽였다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군이 사살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리비아의 핵무기 시설들을 사찰하는 와중에 리비아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미국은 민주화 운동을 ‘진압’해 주지 않았다. 당시 튀니지아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이 중동 지역 곳곳에서 독재자들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자스민 혁명이라 불리는 중동 민주화 혁명은 리비아에서 전파, 가다피를 권좌에서 끌어 내리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미국이 중동의 민주화를 부추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국가 주민들이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가다피 및 다른 중동 국가지도자들의 독재와 무능으로 인한 경제파탄 때문이었다.

북한이 리비아 식은 싫다며 미-북 정상회담을 보이콧하겠다고 하니 트럼프가 가다피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보장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한 뒤 김정은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미국은 그것을 ‘허락’하고 심지어 김정은을 ‘보호’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러나 만약 김정은이 회담장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북한을 '사멸(decimate)'시켜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일부러 그렇게(틀리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리비아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다피는 미국과의 회담에 나가서 약속했다가 죽은 것이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떻게 김정은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군’이 평양에 진입해서 김정은 정권의 안녕과 질서를 보장해 주는 일이다. 말로만 해주는 체제의 안전 보장을 김정은은 결코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보증을 해 주어야 하는데 미군의 북한 주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지금 미국과 북한을 보면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고종은 일본에 조선을 넘기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는데 ‘자기를 폐위시키지 말고 살려 달라’는 것이었다. 을사보호조약 제5조는 일본이 고종의 부탁을 들어준 것으로 되어있다. 제5조는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한다”고 되어 있다. 지금 트럼프 정부는 김정은 체제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 할 터이니 대화의 장으로 나오던가 그렇지 않을 경우 decimate 당하던가 하나를 택하라고 겁박하고 있는 것 아닌가?

김정은은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트럼프가 보장해 주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혹은 회담에 나가지 않은 채 decimate 당하고 말 것인가? 앞의 것을 택한다면 김정은은 희대의 도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쳐 죽여야 할 미국이 보장해주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도 분명치 않다. 후자를 택하는 것은 자칫하면 앉은 채 죽는 일이다. 딜레마인 것이다. 김정은의 고민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부터 보편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최악의 인권유린 독재정치를 단행해 왔던 북한 정권 70년의 업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춘근 객원 칼럼니스트(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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