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2022년 우리의 현실, 2023년 우리의 희망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또 그 이전 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릴 정도인 대한민국은 2022년 한 해도 역동적인 변화를 겪었다.

어쩌면 이런 변화를 더욱 잘 느끼기 위해서는 외국 생활의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경우 3년 반 동안 유학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생활이나, 1년간 방문교수로 가보았던 미국 위스콘신 주의 주도였던 매디슨 시의 생활은 서울의 생활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적한 삶이었고, 귀국 후에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더욱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뉴스 속의 사건사고들이 많아서 대한민국이 역동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시적인 변화가 크고, 그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다양한 영역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변화가 우리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2022년 5월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수많은 정치적 이슈들이 터져나왔다. 그중의 일부는 흐지부지되었지만, 일부는 지금까지도 정치권을 움직이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더욱이 드라마틱한 선거 결과로 윤석열 후보자가 당선된 이후 내각의 구성, 정책방향의 형성 등과 관련한 갈등도 매우 컸고, 야당이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국회 속에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계속되고 협치가 불발하면서 정치적 혼란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내각 구성과 관련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검수완박 입법을 둘러싼 갈등,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시행령 통치를 한다는 비난,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논란 등이 정치권에서 계속되었으며,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등은 2022년의 정치권 주요 이슈의 일부일 뿐이다.

그밖에도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불안요소들.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성의 심화,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갈등과 화물연대 파업 및 전장련 지하철 시위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그리고 저출산⋅고령화의 파급효과로 인한 사회문화적 변화 등은 올 한해를 뜨겁게 만든, 그리고 아마 내년에도 계속될 이슈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역동성 자체는 과거와 다를 바 없으나, 역동성의 배경과 방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국가발전의 방향성 자체에 대해서는 큰 논란이 없었지만,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60~70년대의 경제발전 시기에도, 80~90년대의 민주화 시기에도 총론에 대한 갈등보다는 각론에서의 이견이 문제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방향을 잃고 있다. 전체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비전과 희망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을 잘 견디고, 2023년을 맞이하는 국민들에게 국가는 어떤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2.5.10(사진=연합뉴스, 화면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2.5.10(사진=연합뉴스, 화면편집=조주형 기자)

국가비전의 성공사례, 실패사례

국가 비전이란 단순한 정책목표와는 다르다. 구체적⋅개별적인 정책목표는 각종 정책들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분야마다 다르게 제시될 수 있으며, 정책목표의 설득력은 목표 자체의 정당성과 더불어 이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세부적인 실행전략에 있다.

반면에 국민 전체를 설득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국가비전은 시대의 과제에 대한 통찰로부터 나온다. 올바른 통찰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에 국가비전은 시대의 좌표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비전은 의미 없는 메아리가 될 뿐이다.

성공적인 국가비전의 사례로는 1960년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J. F.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론티어십을 들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셰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이후에 세계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미국인들은 냉전과 매카시즘의 혼란 등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일깨우면서 일련의 새로운 개혁정책들을 추진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실패한 국가비전의 대표적 예로는 전두환 정부의 정의사회 구현을 들 수 있다. 신군부 쿠데타에 의해 집권했던 전두환은 5⋅16군사정부의 모델에 따라 정의사회 구현을 앞세웠으며, 이를 제5공화국의 정체성 내지 국가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비전의 제시가 제5공화국의 방향성을 규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호응을 얻기는 더욱 불가능하였다.

첫째, 정의사회 등의 보편적 주제는 시대적 과제를 담는 것으로는 부적절하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그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특별한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둘째, 전두환 정부는 시대에 역행하면서 서울의 봄을 짓밝은 신군부 쿠데타의 결과였기 때문에 국민의 불신을 크게 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국가비전이 필요했는데, 정의사회 구현은 이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거부감을 크게 자극할 뿐이었다.

셋째,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우면서 그 실행방법으로 동원했던 삼청작전 내지 삼청교육대는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다.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억압함으로써 반발을 사는 국가비전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전두환 정부의 정의사회 구현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이나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론도 성공적인 국가비전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 국가비전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내용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데, 창조경제라는 어려운 말도, 포용국가라는 못지않게 어려운 말도 국민들의 공감 확보에는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2020.11.2(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2020.11.2(사진=연합뉴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서 비전

군주국가와 달리 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이나 장관 등 특정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국가 전체의 발전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 전체의 발전은 다수 국민들의 공감대 속에서 결집된 노력이 있을 때에만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엇을 앞세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는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다수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1960~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잘 살아 보세"를 앞세워 국민의 공감을 얻었던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가능할 수는 없다.

1987년 당시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및 이를 통한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6월 민주혁명에 의해 국민의 뜻이 강력하게 드러나면서 전두환 정권이 한 발 물러났고, 6⋅29선언에 의해 국민의 뜻을 수용하는 헌법개정이 진행되었고, 이른바 87년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바탕 위에 서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선진화된 민주국가일 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와 산업구조의 다원화 및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 등으로 국민들의 세대 간, 계층 간 다양성이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국민들의 욕구 또한 매우 다양하다.

한편으로는 경제발전 및 소득 증대를 통한 절대적인 부의 증가가 여전히 선호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소득이 조금 적더라도 웰빙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공정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는가 하면, 분배의 정의에 대해서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양한 욕구들이 중첩되고, 충돌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명백히 잘못된 것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단지 찬반이 더욱 뜨거워질 뿐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2023년의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적 통합을 기대하려면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심층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단지 여론조사 등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표피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까지 통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국가비전의 절반은 찾아지는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지만, 이를 전략적 국가정책들과 밀접하게 연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실현가능한 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만들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  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역사적 전환점에 선 대한민국,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그러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은 그동안 압축성장이라 지칭될 정도로 빠른 변화와 발전을 계속해 왔다. 이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민주화의 진전 또한 갈등 속의 정체기에 접어든 지금, 대한민국은 쉬어가는 시기가 된 것일까? 아니면 다시금 힘을 모야 앞을 향해 달려야 할 시기일까?

1987년 민주화 직후에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듯이, 대한민국의 정치나 경제가 낙관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을 비롯하여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도 끊임없는 혁신과 발전, 이를 통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쉬어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 오만이고 나태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앞으로 향해 달려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강한 대한민국’을 내세워 국방력을 강화하고, 세계 각국으로 방산물자를 수출하는 데 주력해야 할까? 그렇게 하기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경쟁 및 전쟁 여하에 따른 영향 등 국제적 여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지 않을까?

‘K-문화강국’을 비전으로 삼아 K-Pop을 비롯한 각종 대중문화, 나아가 전통문화까지 세계와 교류하고, 그 가운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그것이 대한민국 전체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정도의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다시금 ‘IT 강국’ 이미지를 높이면서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파급효과를 키우는 것은 어떨까? 성장 잠재력과 국가발전에의 영향은 매우 크겠지만, 지나치게 국가발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은 국민 모두의 몫이다. 그러나 이를 결정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은 국가의 과제다. 분명한 것은 이제 국민을 묶는 국가비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국가비전을 들고나오기를 바란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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