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 줄리 이야기②
“전쟁 후 나는 애국자가 되었어요”
“우크라이나 정치계가 부패한 것은 맞지만 적어도 우리는 대통령을 스스로 뽑을 수 있죠...러시아인들은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선출할 수 없어요”

독일 작센주 헤른후트에서 만난 줄리아 베이라모브(사진=본인 제공)
독일 작센주 헤른후트에서 만난 줄리아 베이라모브(사진=본인 제공)

러시아군은 3월 4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Zaporizhzhia) 주 엔너호다 시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를 향해 공격을 단행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유럽 최대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다. 우크라이나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중 6기를 보유, 국내 총 전력 공급의 4분의 1을 담당한다. 자포리자 원전이 폭발하면 1986년 체르노빌 참사의 10배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뉴스가 들렸다.

새벽 1시경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자포리자 원전 부지 내 교육관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보다 앞서 러시아군은 2월 24일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했다. 일부 주민들은 자포리자 원전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인간방패를 만들며 러시아군의 진입을 저지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미사일 공습과 포격으로 방어선을 뚫고 마침내 자포리자 원전 일대를 장악했다.

러시아군이 전력 공급을 차단하고 공격의 방향을 자신들에게로 돌릴까봐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앞서 러시아군이 점령한 마리우폴 시에서는 연료와 음식, 물이 바닥나고 있었다. 마리우폴 시는 자포리자 주에서 남쪽으로 불과 약 201km 떨어져 있었다. 러시아군은 계속해서 길에 불을 질러 시민들의 탈출을 막았다. 구조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마리우폴 시민들은 말 그대로 도시 안에 갇힌 처지가 되었다. 자포리자 주민들은 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까봐 전전긍긍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집단 패닉상태를 불러왔고, 탈출 러쉬에 불을 질렀다.

자포리자에서 작은 악세사리 가게를 운영했던 줄리아 베이라모브(Julia Bayramove, 24)도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폴란드 국경까지는 1,096km. 끔찍한 여정이었지만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신께 감사했다.

줄리는 폴란드 크라쿠프를 거쳐 독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언니와 언니의 남자친구는 이미 베를린으로 떠났다. 부모님도 독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향에 남기로 하셨다. 피란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곳에 남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디겠다고 하셨다. 줄리는 차가운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차는 미치도록 느렸다. 스물 네 시간을 달렸지만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급기야 마지막 정차역을 앞두고 갑자기 기차가 멈췄다. 고장이 났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기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바람을 맞으며 줄리는 국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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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줄리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상반된 감정들이 내 안에서 공존하고 있어요. 원래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들과 결혼을 많이 했어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문화가 비슷해요. 우리는 형제나 마찬가지였죠...”

그녀가 살던 자포리자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녀는 우크라이나 언어와 국기를 싫어했다. 파랑과 노란색의 조합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한 후 그녀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에요...전쟁이 일어난 후 나는 애국자가 되었어요.”

줄리는 지금 독일 작센주의 헤른후트에 머물고 있다. 이곳은 변화무쌍한 날씨 말고는 시간이 정지된 그림처럼 흘러가는 곳이다. 그러나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참을 수 없는 강한 분노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녀는 아침마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한다. 할머니가 계신 조국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다. 러시아 군인들은 드론을 날려 우크라이나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날아와 아무런 경고도 없이 도시를 파괴하는 드론은 미사일보다 더 끔찍하고 위험한 존재다. 고향에서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사진을 볼 때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 사진에 러시아인들이 “하하하 박수”라고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러시아인들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한단 말인가...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휴머니티가 아니다...’

“나는 러시아를 증오해요. 하지만 러시아인들도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속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웅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국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전쟁터에 남아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지금의 그는 전쟁 전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정치계는 매우 부패했고 젤렌스키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줄리는 우크라이나 정계가 심각하게 부패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페트로 포로셰코 전 대통령은 심지어 금으로 만든 화장실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크라이나에는 최소한 국민 스스로 대통령을 선출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치계가 부패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대통령을 스스로 뽑을 수 있죠. 러시아인들은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선출할 수 없어요. 푸틴은 독재자예요. 부패보다 중요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금 조국에 남아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합병되기를 원하고 않느냐고 물었다. 줄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것은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나는 우크라이나로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줄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유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국에서는 복음을 전할 자유가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교회에서 목사가 어떤 설교를 하는지에 대해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멜리토폴(Melitopol,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자포리자주의 항구 도시)에 있는 미국인들이 세운 매우 자유로운 교회를 점령했다. 그리고 목사를 향해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목사의 머리에 권총을 겨눴다.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으로 예상하세요? 만약 러시아가 이기면 어떻게 할 건가요?”

줄리는 차갑게 식은 찻잔을 바라봤다. 숄을 두른 그녀의 어깨가 작은 새처럼 갸냘펐다. 그러나 문득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나토에 영공을 막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나토는 무기는 주었지만 러시아가 무서워서 영공을 막아주지는 않았죠. 나토는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함께 싸웁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보호해주지 않았어요.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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