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밀 경찰서' 논란을 겪고 있는 중식당 동방명주 잠실의 실소유주 왕해군 회장이 29일 오후 식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내용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YTN]

'중국 비밀 경찰서' 논란을 겪고 있는 중식당 동방명주 잠실의 실소유주 왕해군 회장이 29일 오후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채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그 내용을 분석하면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된단 지적이다. 기자회견문 전체가 한국인이 보기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지만, 특히 '한국의 언론들과 유착 관계가 형성됐음에도 왜 나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작성하냐'는 발언에서 그동안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보도를 위해 한국 언론에 공을 들여왔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간 이뤄졌던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언론이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기했단 것이다. 정확한 발언은 "오늘부터 여타 잘못된 호칭을 사용한다면 악의적인 명예훼손으로 간주하며 이에 대해 모든 법적 책임을 추궁할 권리를 고려하겠다"며 "보도에서 저의 이름과 직책, 그리고 초상을 오용·왜곡·희화하하지 말라"다.

하지만 그동안 왕 회장과 동방명주의 의혹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특별한 문제를 보이지 않았단 평가다. 본지의 경우엔 동방명주 잠실의 건물 상단에 위치한 상호 네온사인 광고물을 모자이크 처리했으며, 유선장관리소가 설치한 광고문 역시 필수 정보는 가렸다. 또한 그간 어떤 기사에서도 왕 회장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단정적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왕 회장과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관계가 폭로된 일부 보도의 경우엔 실명과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소식이 이미 2020년 11월에 기사화되는 과정에서 왕 회장의 얼굴과 실명, 중식당 이름과 장소도 공개된 바 있다. 즉 재발굴된 기사란 소리다.

펜앤드마이크는 그간 보도에서 왕 회장의 신상을 최대한 가려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을 다해 왔다. 다른 언론들 역시 대체로 그러한 경향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사진=신화통신, 편집=박준규]

이 소식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과거 기사에서 왕 회장에 대한 보도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특히 중국동포타운신문 등 재한 중국인을 위한 언론에선 이미 2010년부터 기사가 난 바 있다. 또한 중국의 신화통신엔 왕 회장이 수 차례 했던 인터뷰가 버젓이 실려 있다. 즉 왕 회장의 신상정보가 오용·왜곡·희화화 되기엔 과거 정보가 너무나 충분히 존재한다.

2. 한국 언론과의 '유착' 내비친 기자회견

왕 회장은 또 기자회견에서 한국 언론에 불편하고 서운한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저는 신사스럽고 온화하고 유머한 사람이지만, 최근 악의적인 언론사들은 정말 저를 화나게 한다"며 "배후의 세력이 얼마나 크기에 모든 언론사가 입을 맞춰 저를 모른 척 하냐. 그 의도는 또한 뭐냐"고 했다. 그러면서 "2022년 8월 19일 한중수교 30주년 한중언론인 친목회도 제가 출자해 동방명주에서 개최했는데 벌써 다 잊으셨냐"라며 "기자님들은 저를 모른다고 해도 되지만 소속된 언론사의 임원진, 심지어 국장님 대표님들도 정말 저를 모르시냐"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장님과 대표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도 보여드릴까"라고 했다.

왕 회장의 발언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왕 회장이 그동안 '한중 화합'이란 명목으로 한국의 언론과 빈번하게 접촉해왔다는 점이다. 왕 회장은 본인과 중국 정부와의 연관성이 대대적으로 보도될 것을 대비해 한국 언론을 '구워삶아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공을 들였던 한국 언론이 '중국 비밀 경찰서' 논란이 터지자 180도 돌변해 악의적인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왕 회장에게서 접대·금품지원 등을 받은 한국 언론인들에 대한 조사가 개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왕 회장이 20년 가까이 한국에 거주했음에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언론 특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이 언론까지도 통제하고, '꽌시(관계)'가 중요한 중국에서는 언론인에 대한 로비로 '입막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 한국은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온갖 언론이 난립하고 있기에 주요 언론들의 입은 막더라도 그외 언론에 마개를 씌우기는 어렵다. 그리고 일단 한 언론이 특종을 잡아 보도하기 시작하면, '매수'됐던 언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 자유로운 언론 생태계의 특징이다. 왕 회장이 지극히 '중국적인 마인드'로 현 사태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한국어-중국어 동시 진행된 기자회견... 특별한 목적 있나?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보라고 진행한 기자회견이 중국어로 먼저 읽고 한국어 번역문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단 점도 특이하다. 거의 20년간 한국에서 거주해 한국말 대화에 능한 왕 회장이라도 글을 쓰고 읽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에 자신에게 '국어'인 중국어로 회견문을 작성했을 수 있다. 또한 '한국어와 중국어 내용이 다를 경우 중국어를 기준으로 한다'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 좀 더 명확한 표현을 위해 중국어로 작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더해 이 기자회견을 보는 '제3의 시청자'가 또 하나 있을 것에 대비해 중국어로 발표했을 수도 있다. 즉 '제3의 시청자'란 중국 정부다. 그는 예전부터 신화 통신과의 인터뷰 등에서 중국 정부 최고기관인 국무원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자랑해왔다. 즉 왕 회장으로서는 지금도 중국 정부에 변함 없이 충성하고 있음을 기자회견을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중국 내부에서도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대응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므로 왕회장이 공개적으로 차후 행보를 보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4. 중국 외교부 브리핑 같았던 기자회견...'상호 이익 수호' '호혜' 강조는 중국 정부 레퍼토리

왕 회장은 "모든 당사자들이 자제할 것을 간곡히 당부드리며, 이해관계자든 정부부처든 우리에게 이유 없는 압박과 방해를 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며 "여러분의 초조함은 이해하지만 현 상황에서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며 상호간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발언은 흡사 중국 외교부의 브리핑과 유사하단 평가다. 한국으로서는 '중국 비밀 경찰서' 의혹이 나온 마당에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는 '이유 없는 압박과 방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왕 회장은 소련의 공산당, 중국공산당의 기본 관념인 '포위돼 있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자' 상호간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길 바란다'는 사드, 미국의 대중포위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견제하며 중국 정부가 하는 말과 사실상 같다. 일각에선 왕 회장이 중국 국무원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중국 정부식 화법을 배운게 아니냔 추측도 내놓는다.

 

5. 논란 이전 동방명주가 정상적인 영업 장소?

왕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비밀경찰서 보도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동방명주는 정상적인 영업 장소였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법적으로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동방명주 앞에는 유선장관리소가 붙인 경고문이 있다. 올해 유선장을 경매를 통해 새로 입수한 업체가 붙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동방명주는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는 업체다. 새로 인수한 업체와 별도의 임대 계약을 맺지 않아 불법 영업 상태가 된 것. 

여기에 더해 식당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적자 운영 중이며 이용객들의 리뷰에 따르면 음식의 질도 형편 없다. 결국 왕 회장의 이 발언은 틀린 셈이 된다. 

동방명주가 무허가 영업 중임을 알리는 유선장관리소의 경고문. 이렇듯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단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 촬영, 편집=박준규]

 

6. 31일 설명회에 100명만 초청한다는 이유는 납득 가능한 것인가?

왕 회장은 31일 설명회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언론 관계자 100명만을 초대하고 그 과정에서 1인당 입장료 3만원을 받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그는 그 이유로 "회의장 공간 제한과 안전 우려"라고 했다.

1인당 3만원의 가격 책정은 차치하고라도, 동방명주가 언론인을 상대로 한 설명회 공간을 갖고 있지 않단 해명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우선 유선장관리소에 따르면 동방명주의 총 면적은 1000평이 넘는다. 또한 동방명주 사이트엔 1층부터 3층까지의 식당 사진과 간략한 설명이 있다. 1층만 해도 100석이 넘는 자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층은 룸으로 돼 있기에 설명회장으로 쓰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3층 연회장은 무려 320명이 수용 가능하다고 돼 있다. 즉 왕 회장이 든 '공간 제한 및 안전 우려'는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란 평가다.

한편, 오는 31일 설명회에 참석해 왕 회장과 동방명주 측의 설명을 듣고, 후속 기사를 작성할 예정이다.

동방명주 홈페이지에 소개된 식당 3층의 연회장 전경. 32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규모다. [사진=동방명주 홈페이지]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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