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밀 경찰서'가 존재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서울 한강변의 한 중식당. 
'중국 비밀 경찰서'가 존재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서울 한강변의 한 중식당. [사진, 편집=박준규]

펜앤드마이크는 지난 23일 "[현장르포] 물 위의 중식당, 정말 '中 비밀 경찰서' 맞나?...직접 가보니"를 통해 서울 강남권의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한 중식당의 의혹을 직접 살펴봤다. 그 결과 요리의 낮은 질에도 6년간 영업을 해왔던 점 외에는 '중국 비밀 경찰서'가 있을 만한 수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식당을 운영하는 업체 및 업주를 조사해 본 결과 중국 정부의 최고기관 국무원 및 관영매체 신화통신과 연결돼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 중식당을 운영하는 업체는 '(주) HG F&B'다. 인터넷엔 이 업체가 지난 2018년 한국의 한 구직사이트를 통해 인력을 모집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엔 이 업체에 대한 설명이 중국어로 기록돼 있다. 설명 중 중요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주)HG F&B는 HG그룹 산하의 문화 외식 유한회사로 00구 00의 선상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면적은 약 3000 제곱미터로 정통 중국 화이양요리와 한국 전통요리를 결합한 신개념 문화 식당이며, 중국 국무원이 허가한 최초의 해외 중식번영기지로서 중국 전통음식문화를 널리 알리고 현지문화와 결합하여 규모있고 조직적이며 규율있는 음식관리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관련 사업에 관심이 있는 뜻 깊은 청년들의 합류를 환영한다"

2018년 중식당을 운영하는 (주)HG  F&B가 한 구직사이트에 올린 구인공고. 현재는 찾을 수 없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아다니고 있다. 붉은색 네모 안의 내용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진=구인사이트, 편집=박준규]

주목할 부분은 '중국 국무원이 허가한 최초의 해외 중식번영기지"다. 한국에 중국식당을 내는데 왜 중국 국무원의 허가가 필요했으며, 한국에서 인력을 모집할 때에도 이 점을 버젓이 홍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 식당을 세운 사람은 화교 왕모 씨다. 그는 료녕성 무순시 청원현 출신으로, 한족도 아니고 조선족도 아닌 만주족이다. 그의 아내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 출신의 조선족으로 알려져 있다. '한강 미디어 그룹'의 회장이기도 한 왕 씨는 '중국 재한 교민협회총회' 수석 부회장·회장을 역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왕 씨는 2003년 처음 한국에 와서 중식당을 시작으로 가정장식, 인터넷, 미디어 등 다양한 산업에 종사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중식당을 세운 왕 모씨. [사진=신화통신, 편집=박준규]

왕 씨는 단순 개인 자격이 아닌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중식당을 열었음이 포착된다. 2016년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늘 베이징에 출장을 다니고, 매번 거의 모두 중국 국무원 화교 사무판공실이 개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곤 했다' '중국 재한 교민 협회 총회 수석 부회장 직을 겸하고 있어 일상 사무 중 국무원과 많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던 것이다. 그는 또 중국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으로부터 '재한 중국 요리사 양성 기지 설립 및 자격인증의 허가를 받았다'고도 했다. 

국무원의 목표는 무엇일까. 신화통신에 따르면, 국무원 화교판공실은 2014년 중식번영계획을 포함해 8개의 '해외 화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왕 씨는 이 프로젝트로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됐다며 '중국 요리 번영 계획'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중국 본토의 식문화를 한국에 침투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역사 부문에서 동북공정, 식문화 부문에서 김치공정, 복식문화에서 한복공정 등 장기적으로 한국을 중국에 동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획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요리 번영 계획' 역시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일 수 있단 지적이다.

조선족도 아닌 만주족인 왕 씨가 정말 한국인을 위해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점도 있다. 그가 2017년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선 "화교의 가장 큰 소원은 조국의 번영과 부강이다. 조국이 강해지면 해외에서 우리의 허릿대도 강해진다"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신화통신은 그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사업하는 와중에) 영광스러운 성공과 고통스러운 좌절이 있었지만 조국의 번영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며 '그는 한중 문화 교류에 주력하는 미디어 회사를 설립하고 그의 경력을 다시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바로 '중국 비밀 경찰서'가 존재한다는 의혹을 받은 중식당이었다.

왕씨는 중국 국무원 화교판공실의 행사에 자주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인민정치협상전국위원회에도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 씨는 "화교의 가장 큰 소원은 조국의 번영과 부강"이라고 하기도 했다. [사진=신화통신, 편집=박준규] 

이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점이 또 하나 있다. '미디어 회사'를 설립했다는 것. 이 미디어 회사는 2013년 11월에 설립된 'HG 문화미디어'다. 한국 구인사이트에도 이 업체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해 있으며 '영화, 비디오물 및 방송프로그램 제작 관련 서비스업'을 한다고 등록돼 있다. 대표자명은 왕 씨며 2020년 기준 매출액은 5억1968만원이다. 어떤 영상물을 제작하고 배포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HG 문화미디어'는 구성원이 최대 10여명까지 늘었다가 2022년 하반기부터는 3명을 유지하고 있다. 구인사이트엔 이 업체에서 일한 한국인의 기업 평가가 있다. 평가는 '이 회사를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 사업목적이 불분명한 회사다'란 제목이다. 장점으로는 '중국 한족 및 조선족과의 교류, 중국어 사용 가능, 출퇴근시간 자유로움, 회장 제외하고 직원들간의 사이 평등'을 들었다. 단점으로는 '공산주의다. 못할 것 같은 사업을 과장해서 할 수 있는 척한다. 회장이 나서는 것 좋아함. 한국을 무시하는 게 눈에 보임. 일이 안 풀리면 직원들을 탓함'이 거론됐다. 경영진에 바라는 점으로는 '한국에서 뭐하는 거냐. 본인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직원들의 잘못으로 돌리는 당신은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개선시키길 바람'이다. 즉 한국인이 일할 만한 곳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HG 문화미디어에서 일했던 어느 한국인의 기업 평가. '한국을 무시하는 게 눈에 보인다'는 평가가 눈에 띈다. [사진=구인사이트]

왕 씨는 미디어업체를 설립하고 무엇을 했을까.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중국 신화통신과 협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 신화통신이 지속적으로 수차례 왕 씨에 대한 기사를 내준 것이 그를 방증한다. 또한 왕씨와 신화통신과의 구체적인 협력이 2015년에 있기도 했다. 그해 9월 10일 신화통신은 '신화망 한국채널 독점광고대리 합작파트너인 한국 (주)HG문화미디어 및 그 협력파트너 Jewoo C&D와 신화망 미디어 채널 문화 코너 합작파트너인 후이런뉴미디어가 오늘 베이징 신화망 본부에서 협의를 체결했다'라고 보도했던 것이다. 협의에 따라 3개 업체는 신화망의 2개 플랫폼을 공동 사용하게 됐다.

2015년 9월 10일 신화통신 베이징 본부에서 협의를 체결하는 왕 씨(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신화통신, 편집=박준규]

신화통신은 신화망 한국채널의 창설 목적에 대해서 "중국 국내 사용자들의 한국 정보 섭취 수요량의 증가를 충족하고 특히 경제계 인사들에게 한국의 경제 무역, 사회, 인문, 과학기술 분야 등의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중한 양국 기업의 정보 유통을 증진하고 양국 민중간의 우의와 상호 이해를 강화하는 데 취지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신화망의 한국 관련 보도 능력을 전면적으로 향상시키고 신화망의 해외 전략 및 본토화 건설을 진일보로 추진하기 위함"이라고도 명시했다. 결국 "한국채널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 각 분야의 정보를 망라하며 또한 중한 양국 기업과 상품 정보의 상호 교류에 전문적인 정보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협약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왕 씨. [사진=신화통신, 편집=박준규]

문제는 신화통신이 중국 국영기업이며 중국 국무원의 관할 하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인민일보·환구시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관영언론이다. 신화통신은 그로 인해 중국 정부의 '첩보 기관' 역할을 하고 있단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이 이를 가장 앞장서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2018년 미 법무부는 신화통신이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신화통신 기자 및 중국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CGTN) 기자들이 미국 관료를 면담하기 전에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단 지침을 내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중식당 업주 왕 씨는 단순히 개인의 영리 목적으로 개업한 것이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와의 밀접한 협력 하에 중식당을 열었으며, '조국' 중국의 굴기가 화교의 가장 큰 소원이라 공공연히 밝히며 중국의 프로젝트에 협조했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 요식업 외에도 미디어 업체도 설립하는 등 사업 다양화를 꾀했으며,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과 적극 협업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왕 씨는 중식당 인사말에서 '중국 본토 요리의 맛 그대로" "익숙하지 않은 곳,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 한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곳에서 소중한 기억을 만드세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중국에 가지 않고 서울 한복판에서도 중국 본토 요리대가들의 손맛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을 이용한 사람들의 후기는 전혀 딴판이다. 심지어 '냉동음식과 여기 음식을 비교하는 건 냉동음식에 대한 실례'란 대혹평도 있었다. 왕 씨가 자신 있게 내보이고자 했던 중국 요리를 소홀히 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건 무엇일까.

특히 여러 사업을 전전하던 그가 신화통신 한국채널 독점광고대리 협력파트너가 되고 신화망을 사용하게 될 만큼 중요 인물로 떠오른 것은 중국 정부의 특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중국 정부와 어떤 협력을 했는지 우리 방첩 당국의 확실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중국 본토 요리의 맛 그대로'란 홍보문구는 중식당 이용객들의 평가에 의하면 '허황된 거짓말'이다. 식당의 질적 저하를 대가로 왕 씨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중식당 홈페이지, 편집=박준규]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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