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십대 소녀들은 BTS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한국 스타일에 미쳐있어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소녀들이 한국 남성을 좋아해요!”

독일 작센주 헤른후트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 처소(사진=양연희 기자)
독일 작센주 헤른후트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 처소(사진=양연희 기자)

그녀는 자신을 ‘줄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갈색 눈동자에 긴 갈색 머리카락. 미소가 아름다운 줄리아 베이라모브(Julia Bayramove, 24)는 여느 평범한 유럽 아가씨들과 다름없는 스물 네 살의 청춘이었다. 약 8개월 전 러시아의 침공으로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만 빼면.

줄리는 독일 남동부의 작센(Sachsen)주 헤른후트(Herrnhut)의 한 임시 처소에 머물고 있었다. 독일정부는 난민 인정을 받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아파트와 매달 생활비 월 450 유로(약 62만 원)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곳에는 당초 전쟁을 피해온 8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체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둘 독일정부가 제공하는 아파트로 옮겨가고 이제는 그녀를 포함해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11월의 해는 오후 5시가 되면 사라졌다. 긴 겨울 밤, 우리는 따뜻한 주방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자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쓸쓸함을 남기고 금세 사라졌다. 가족을 만나지 못한지 6개월이 되어 간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생일이었는데, 그 후로는 더 외로워졌다고 했다. “저는 이곳에 속한 것 같지 않아요...”

그런 그녀도 ‘BTS(방탄소년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BTS는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서도 아주 인기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십대 소녀들은 BTS뿐만 아니라 한국 드라마, 한국 스타일에 미쳐있다고 했다.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소녀들이 한국 남성을 좋아해요!”

‘그럴 리가 없다’는 내게 그녀는 큰 눈을 반짝이며 거듭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줄리는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한 그날을 기억했다.

2월 24일 새벽 4시. 핸드폰이 울렸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지금 바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아, 졸려요”라고 대꾸했다. 겨울이었고 침대는 따뜻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이불 밖으로 나가기는 싫었다.

몇 달 전부터 곧 전쟁이 일어날 거란 말들이 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농담’처럼 여겼다. 2014년 돈 바스크 전쟁(친러 반군 및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 군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그것은 먼 도시 이야기였고, 당시 그녀는 십대 소녀에 불과했다. 며칠 전부터 러시아의 탱크와 무기들이 국경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전에도 듣던 이야기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때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줄리, 너는 여자다. 러시아 병사들은 미치광이이야. 체첸을 봐라.”

“사람들이 기름과 식량을 엄청나게 사재기하고 있어. 기름은 지금 당장이라도 떨어질 수 있다. 기름이 떨어지면 더 이상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게 된다. 줄리, 지금 당장 일어나 기차를 타고 국경으로 가거라...”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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