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MBC의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사진=MBC]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하 결혼지옥)'이 방송 중 아동 성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는 장면을 내보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아동 심리학 전문가인 오은영 박사도 비판의 중심에 섰다. 새아버지가 이성인 미성년자 의붓딸을 꼭 안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오 박사가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단 것이다. 오 박사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해당 방송에서 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23일엔 미국에서 급히 귀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결혼지옥의 방송 논란에서 누가 진정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고 있어 논란이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방송된 결혼지옥에선 재혼한 부부가 육아 문제로 갈등을 겪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새아버지가 의붓딸에게 신체적으로 과도한 접촉을 가한 듯한 장면이 그대로 공개돼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동시에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 박사에게 집중됐다. 비판의 요지는 오 박사가 시청자들이 보기에 명백하게 성추행을 저지른 새아버지에게 적극적인 지적을 하지 않았단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남편이 가엽다"라고 하는 등 아동 심리학 전문가가 아이의 심리를 고려하기보다는 새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조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단 것이다.

오 박사는 이러한 비판에 23일 입장문을 냈다. 오 박사는 "대단히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다"라면서도 "해당 방송분에 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어서 이에 조심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려 한다"고 했다. 이어 "아동학대,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제 생각은 대단히 단호하다. 절대로 해선 안되며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며 "그것들이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 박사는 그러면서 "시청자분들이 놀라신 그 사전 촬영된 장면에서 저 또한 많은 우려를 했다"며 "당연히 출연자 남편에게 어떠한 좋은 의도라도 '아이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문제 행동들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출연자 남편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 행동으로 아내에 의해 아동 학대 신고가 되어 경찰에서 교육처분을 받은 상태였다"며 "더욱더 촬영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아동 학대 교육의 연장선으로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 접촉을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는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교육적 지적과 설명들을 많이 해 줬다"고 했다.

오 박사는 "이후 실제로 이 출연자 남편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며 "그러나 5시간이 넘는 녹화 분량을 80분에 맞춰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런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지 못해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다"라고도 했다. MBC에서 오 박사의 조언과 노력을 일방적으로 편집해버렸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 박사는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이다.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라며 "시청자분들의 아이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걱정, 감사드린다. 우려하시는 일이 없도록 저와 제작팀이 함께 반드시 지속적으로 살피겠다. 더불어 따끔한 지적과 충고들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겠다"고 약속했다.

오 박사의 입장문이 공개되자 '납득된다'는 반응이 많다. 이제는 현 논란을 초래한 책임소재를 두고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여론의 비판을 받는 쪽은 결혼지옥을 기획한 MBC와 제작팀이다. 가족의 문제점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오 박사의 해결책 제시인데, 결혼지옥 제작팀은 이를 쳐내고 방송했으며, MBC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이번 논란에 대해 "근본적으로 MBC 문제"라며 "오은영 교수가 그렇게 잘못이 있나 의문이 든다. 단호하게 비판한 부분 안 나온 건 편집의 문제고, 온건한 방식으로 해법 제시한 건데, 이게 왜 오 교수 책임으로 가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밝혔다. 

다른 네티즌은 한국 방송사의 선정적 보도 태도와 더불어 한국 시청자의 전반적인 수준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위 '냄비근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 네티즌은 "(이게) 명불허전 대한민국 방송사와 시청자 수준인 것이다"라며 "지금까지 그래왔다. 수많은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형욱·백종원·한문철·오은영 등 비연예인 출신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각종 예능에 블루칩으로 나왔다"며 "그러다가 이미지 소모가 빠르게 되고, 특정 시점이 되면 비판 여론이 생기면서 까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들이 뭘 잘못했나'라고 돌아보면 그들은 변한게 없다"며 "변한 건 시청자들의 간사한 마음과 방송사의 시청률만 생각하는 자극적인 편집"이라고 비판했다. 사건의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방송을 보고 소위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일부 시청자들 때문에 논란만 커질 뿐 실질적으로 개선된 건 아무 것도 없는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꼬집은 것이다.

일각에선 '결혼지옥'이란 제목 자체를 문제삼기도 한다. 안 그래도 비혼 풍조가 만연하고 결혼한 커플들마저 아이를 낳지 않아 미래에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소멸'할 수 있단 암담한 전망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이름부터 시청자들에게 결혼의 부정적 측면만을 주입할 가능성이 높단 것이다. 이로 인해 결혼 생활의 문제점을 지혜롭게 해결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은 이와 관련해 '방송국을 보면 결혼 더 못하게 하려고 XX하는 것 같다" "진짜 제작진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불가능한 방송이더라" 등 결혼지옥에 대해 다소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논란을 두고 MBC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국민의힘 윤두현 원내부대표는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는 왜 MBC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인가"라며 "MBC는 방송통신심의 대상 그 위에 존재하는 불가침의 성역인가. 지난 19일의 방송에서 심각한 방송윤리 위반이 있었지만 방심위의 대처는 한심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600건의 민원이 방심위에 쇄도하고 MBC시청자 게시판에도 1000건이 넘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방심위는 '민원이 많으니 어떤 조치는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며 "피해 어린이 입장에서 보면 이런 방송이 어떻게 용납될 수 있나. 방심위, 정연주 위원장, 시청률에 매몰돼 자극적 화면을 여과 없이 내보낸 MBC의 공동 책임임을 국민 앞에 고발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논란에 결혼지옥 측은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청자분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아동에게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은영 박사와 함께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적인 도움을 제공할 예정"이란 입장을 냈다.

다음은 오은영 박사 공식입장문 전문.

 

안녕하세요. 오은영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시청자분들에게 이런 입장문을 드리는 상황이, 무엇보다 대단히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최근 방송된 ‘고스톱 부부’편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고 또 분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이 사안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특히 아이의 복지나 안전 등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방송분에 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어서 이에 조심스럽게 몇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체벌을 절대 반대해 왔습니다. 아동학대,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저의 생각은 지금까지 써 온 책들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대단히 단호합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것들이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분들이 놀라신 그 사전 촬영된 장면에서 저 또한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당연히 출연자의 남편에게도 어떠한 좋은 의도라도 “아이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문제 행동들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라고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출연자 남편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 행동으로 인해 아내에 의해 아동 학대 신고가 되어 이후 경찰에서 교육 처분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촬영 시간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아동 학대 교육의 연장선으로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 접촉을 강압적으로 하지 말라’는 내용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교육적 지적과 설명들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이후 실제로 이 출연자 남편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시간이 넘는 녹화 분량을 80분에 맞춰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런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지 못하여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대단히 참담한 심정입니다.

또한 방송에서 ‘촉각이 예민한 아이’에 대한 언급은 출연자 부부의 딸에 대한 언급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촉각이 예민한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가깝게 생각하는 부모들의 신체 접촉도 불편하고 괴롭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아이가 싫다는 표현을 하면 부모라도 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는 설명이었지 출연자 부부의 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출연자 자녀의 탓이라거나 남편의 행동을 옹호한다는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가엽다”라고 말한 부분은 과거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을 했던 것에 대해 ‘남편의 어린 시절이 가엽다’라고 한 것입니다. 현재의 문제 행동과 과거에 있었던 남편의 불행을 연결시켜서 정당화하려고 했던 설명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 시켰던 것 또한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이입니다.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시청자분들의 아이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걱정, 감사드립니다. 우려하시는 일이 없도록 저와 오은영리포트 제작팀이 함께 반드시 지속적으로 살피겠습니다. 더불어 따끔한 지적과 충고들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저의 의견을 제시해온 것은 세상에 계신 많은 부모님들이 가장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수단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방송으로 여러 가지 염려를 낳았기에 저 역시 매우 참담하며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향후에는 제 의견이 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더욱더 유념하겠습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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