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문화진흥회 김도인 이사

1.세계 주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세계의 주요 공영방송은 어떤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을까? 한쪽 진영에서는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고 공영방송을 국민 품으로 돌려주는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이라 자평하고, 다른 진영에서는 ‘공영방송 영구장악법’이라고 혹평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지켜보면서 생긴 궁금증이다.

독일의 경우, ‘내적 다원성’ 이라는 원칙하에, 다양한 정치‧종교‧사회 그룹에서 추천한 대표들로 30~70명 규모의 방송평의회를 구성하여, 사회 내 다양한 세력의 의견이 방송 프로그램 형성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방송평의회는 공영방송 사장의 선출과 해임권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공영방송 이사회와 시청자위원회, 심의위원회 권한까지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방송평의회 외에도 주로 방송 경영과 관련된 전문적인 결정에 참여하고, 사장을 상시적으로 감독하는 행정위원회가 있는데, 제2 공영방송인 ZDF의 경우 州정부 총리협의회에서 5명, 연방정부에서 1명, 방송평의회에서 8명을 추천해 모두 1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독일 공영방송사의 지배구조는 방송평의회와 행정위원회라는 방송사 외부에서 충원된 감독기관이, 사장을 비롯한 집행부와 함께 삼각축을 이루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영국 BBC의 경우, 한때 BBC Trust와 집행위원회라는 이원적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2017년 발효된 BBC 칙허장부터는 Trust가 폐지되고 BBC 이사회(Board)로 지배구조가 단일화되었다. 이사회는 10명의 非상임이사와 4명의 상임이사로 구성되는데, 이사회 의장과 스코틀랜드 등 영국의 4개 nation을 대표하는 4명의 이사는 정부에서 임명을 하지만, 나머지 이사들은 이사회의 소위원회인 선임위원회(nominations committee)에서 선임한다. 이렇게 구성된 BBC 이사회가 BBC 사장을 비롯한 4명의 주요 집행임원을 임명하며, 모두 10개의 소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송공정성위원회(Editorial guidelines and standards committee)의 경우, 위원장을 포함한 非집행위원 3명과 BBC 사장, 시사‧보도 본부장 모두 5명으로 구성되어, BBC가 자체 방송제작 가이드라인과 감독기관인 OFCOM의 방송심의규정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감독한다. 주요 소위원회에 BBC의 집행 임원이 멤버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BBC 이사회의 지침과 의지가 집행위원회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는 구조이다.

프랑스의 공영 TV방송사인 프랑스 텔레비전은 과거 제1 공영채널이던 TF1이 1987년 민영화된 이후, 나머지 France2와 France3 등 공영채널들을 묶어서 만든 100% 국가 소유의 지주회사다. 사장은 우리의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하는 CSA와 상·하원 소관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프랑스 텔레비전의 이사회는 14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하원의 소관 위원회에 의해 지명된 2명의 상·하원 의원, 5명의 정부측 대표, CSA에서 임명한 5명의 개인, 그리고 직원대표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프랑스 텔레비전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CSA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 6명은 상·하원 의장이 각 3명씩 임명한다. 따라서 프랑스 공영방송에는 다른 나라보다 정치권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프랑스 공영방송의 특징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정이 있으니, 각 정치집단이 공평하게 공영방송의 보도 등 정보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여당의 발언 시간, 그리고 야당의 발언 시간에 대한 쿼터制를 운용하고 있다. 야당에게 할애된 방송 시간은 여당과 대통령의 발언(단, 외교 관련 발언은 계산에서 제외)을 합친 시간의 절반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CSA는 각 채널이 제출한 발언 시간 계산 자료를 매달 의회와 각 당 대표에게 통보한다.

일본 NHK의 지배구조는 경영위원회와 집행이사회, 감사위원회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경영위원회는 NHK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으로 NHK의 경영계획과 예산 및 사업계획 등을 승인하고, 집행임원의 직무수행을 감독하며, NHK회장을 선임한다. 경영위원은 개별 방송의 프로그램 편성에 관여할 수는 없지만, NHK 프로그램 기준과 프로그램 편성 기본계획은 경영위원회의 의결사항이다.

경영위원은 12명으로 구성되며, 일본 8개 권역을 대표하는 지역대표 8명과 전문 분야별 대표 4명을 총무성에서 추천하면, 양원(중의원, 참의원)의 동의를 얻어 총리가 임명한다. 정당의 간부는 경영위원이 될 수 없지만, 정당원은 상관이 없다. 다만 동일 정당에 소속된 경영위원은 4명까지만 허용이 된다. 또 경영위원회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적어도 1명의 경영위원을 상근직으로 임명한다. 집행이사회는 회장을 포함하여 10명 이내로 구성되는데, 우리 공영방송의 사장 역할을 하는 NHK 회장은 경영위원회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주요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 전문가나 관련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지닌 국민의 대표에게 공영방송의 관리‧감독권을 맡겨서, 공영방송이 방송 종사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경제‧문화‧종교단체 등으로부터 방송평의회 위원을 추천받고 있지만, 방송 관련 단체나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NHK의 경우 경영위원 12명 중 5명이 학계 인사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방송 관련 전공자는 없다. 심지어 집행임원인 NHK 회장도 방송인 출신이 아니라 경제계 출신이다.

둘째,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선거에서 선출된 국민의 대표인 정부나 의회에게 공영방송 이사진의 구성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과거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히틀러가 독재체제를 치닫는 데 방송이 동원된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방송정책 결정권은 연방정부가 아닌 각 州정부에 있으며, 다른 나라 헌법에서는 보기 드물게 독일 기본법 제5조 제1항 제2문에서는 “출판의 자유와 방송 및 영상을 통한 방송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방송의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가 방송 판결을 통해 방송 정책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부와 의회가 책임지고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선임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2.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인가 ‘공영방송 영구 장악법’인가?

지금 방송계는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진을 21명으로 늘리고, 국회가 5명, 시청자위원회가 4명, 방송·미디어 관련학회가 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직능단체가 각 2명씩 6명의 이사를 추천한다는 것이다. 또 국민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 국민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진의 3분의 2 찬성으로 사장을 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마저 무력화시키면서 이 법안을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과방위원장은 “방송은 방송인에게 돌려드리고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고자 한 방송민주화의 일환” 이라고 자화자찬했다. 도대체 현재의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어떻게 잘못 되어있기에 이렇게 무리한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일까?

지금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다음과 같다. 먼저, KBS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11명의 이사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가 사장을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MBC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에 관한 전문성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9명의 이사를 임명하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사장을 추천하면, 주식회사 문화방송 주주총회에서 사장을 선출한다. 하지만 방송문화진흥회가 MBC 주식의 7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MBC 사장을 선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BS의 경우 9명의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지만, 사장은 방송통신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공영방송 이사들을 임명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에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가 여당 1명, 야당 2명을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방통위원회의 여야 구도가 3:2로 되어있고, 방통위원회가 합의로 결정하다 보니, KBS 이사회의 경우 7:4, MBC의 경우 6:3으로 통상 배분이 된다. EBS의 경우 교육부장관이 추천하는 사람 1명과, 교육 관련 단체에서 추천하는 1명을 포함하도록 되어 있기에 좀 더 복잡하다.

그렇다면 방통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들을 뽑는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것일까? 작년에 선임된 공영방송 이사들의 선임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통위원회는 지원자의 명단과 이력, 지원서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나 질의를 접수하여, 방통위원회 상임위원들이 주관하는 면접 심사에서 활용했다. 또한 지원자 전원을 대상으로 여러 방송 현안에 대한 전문성을 알아보는 필기시험까지 치렀다. 결코 정당에서 무자격자를 내려꽂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을 추천해준 정당에 충성하기 위해 시청자의 권익을 무시한 함량미달의 공영방송 이사가 있었나? 그랬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명분으로 적극 활용했을 것이다. 지난 2018년부터 이사회 회의는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는 일부 내용을 빼고는 공개를 하고 있고, 속기록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다. 어떤 이사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다 공개가 되는 셈이다. 만약 어떤 이사가 자신을 추천한 정당을 위한답시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늘어놓는다면, 도리어 해당 이사를 추천한 정당에 누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7년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체제를 쫓아낸 다음 후임 방문진 이사장이 되어 최승호 사장을 선임하는데 앞장섰던 이완기씨는, 현실적으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방문진 이사를 추천하는 현재의 방문진 이사 선임 제도는 ‘MBC의 주인이 국민’이라 할 수 있는 정당성의 원천이라고까지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공영방송 이사를 뽑는 방법이나 공영방송 이사들의 활동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도, 더불어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방송은 방송인에게 돌려드리고 정권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고자 한 방송민주화의 일환”이라는 정청래 과방위원장의 발언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장악을 막기 위한 법”이라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과방위 간사의 발언이 더 솔직하게 들린다. 특히 개정안의 부칙 조항에 있는, ‘종전의 규정에 따라 임명된 이사와 사장의 잔여임기를 보장한다’는 대목은 현재의 언론노조 출신 경영진들을 보호하는 것이 이 법안의 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6년 민주당의 박홍근 현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서, 3개월 이내에 공영방송의 이사와 경영진이 새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개정안을 세계 주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와 비교해보면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첫째, 국회 몫 5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16명의 추천권을 방송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지닌 국민의 대표에게 공영방송의 관리‧감독권을 맡겨서, 공영방송이 방송 종사자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는 다른 나라 공영방송 지배구조와는 딴판인 것이다. 혹자는 시청자위원의 경우, 독일의 방송평의회 위원처럼 다양한 단체의 추천을 받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얘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위원의 선정 과정에 언론노조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둘째, 공영방송의 운영위원을 21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은 자칫 운영위원회의 힘을 더 분산시켜, 집행임원에 대한 견제기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각자 한마디만 얘기해도 시간이 후딱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하여 100명의 위원으로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국민위원회를 이사회에 둔다는 것도 세계 공영방송에 유례가 없다. 언론노조MBC본부의 홍보국장을 지냈던 故이용마 기자는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 대리인단’으로 뽑자고 하면서, ‘국민 대리인단’은 국민 참여재판의 배심원단처럼 추첨제를 통해 뽑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 참여재판의 배심원단은 지방법원 단위로 50~60명을 뽑아서, 현장에서 검사나 변호사가 기피하고 싶은 인물을 제외한 다음 7~8명을 뽑으면 되는데다,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20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할 수가 있어서, ‘국민’의 표본을 구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반면 ‘국민위원회’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지방법원 관할 구역이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특정 시간 서울에서 열릴 ‘국민위원회’ 회의에 참가할 만큼 열의가 있는 사람을 선정해야 되고, 과태료도 부과할 수 없어서, 정치 성향에 따라 참가 의사가 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신 정권 당시 체육관 선거에 동원되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기억하는가?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 2,35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중 두 명을 제외한 2,357명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물론 단독 후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무려 99.9%의 찬성률이었다. 그들도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심의 왜곡이 일어난 것은, 유신체제에 부정적인 사람은 아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입후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민위원회’ 위원을 뽑는데 있어서도, 보수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 소극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

3.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의 공영방송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화와 방송·통신 융합으로 인해, ‘주파수의 희소성’이라는 공영방송의 전제조건이 도전받고, 시청자들의 미디어 이용 행태가 바뀌면서, 보지도 않는 공영방송에 왜 수신료를 내야하느냐는 시청자들의 거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지상파방송을 수신하는 튜너 없이, 인터넷과 연결해 OTT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는 튜너리스 TV가 인기를 끌 정도로, NHK 수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늘고 있다. NHK가 경제인 출신 회장을 영입하여, 과감한 경비절감을 통해 수신료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지 못하다고 국민이 판단하면, 조만간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영방송다운 것일까? 공영방송 주창론자인 숙명여대 강형철 교수는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다우려면 두 가지 변별성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 시절 여권 추천으로 KBS 이사를 지냈고, 현재는 박성제 MBC 사장 체제에서 MBC 시청자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소위 ‘진보진영’도 그의 의견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SNS의 영향으로 ‘집단 양극화의 법칙’이 우려되는 요즘, 공영방송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뉴스, 정보, 관점을 제공하여 사회통합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둘째,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경험의 폭’과 ‘기대 수준’을 확장해 건전한 시장경쟁을 오히려 촉진해야 한다.

먼저, 지금 우리 공영방송이 사회통합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 일부 공영방송은 민영방송보다 더 정파적인 방송으로 사회통합기능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회분열과 갈등의 진원지가 되었다. 언론노조원들이 중심이 된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자신을 감시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특정 정치진영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병행성’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최근 들어 MBC나 KBS는 시청자들의 ‘경험의 폭’과 ‘기대 수준’을 확장하는 변별성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최근 5년간 MBC, KBS가 대박 드라마를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는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히트시킨 적이 있는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 공영방송은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자기편끼리 전리품을 나누는데 몰두하느라,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하였다. 그래서 경쟁력이 하락하고 경영 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중간광고 도입이나 수신료 배분과 같은 정권의 시혜를 통해 극복하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더 정파적인 보도를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 5년간 이런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경영권 교체에 대한 걱정 없이 계속 지금처럼 해달라는 시그널이다. 그래서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상관없이, 소수의 방송 직능대표와 관련 학회 등의 지지만 유지할 수 있으면 영원히 계속되는 일종의 ‘영구기관’과 같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이런 의도가 깔려있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완력으로 이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 공영방송 제도는 지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얼떨결에 도입된 지 40년이 지났다. 바뀐 방송환경에 맞추어 재건축이 필요한 때다. 이왕 방송법 개정안 때문에 공영방송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김에, 세계의 공영방송은 존재이유를 인정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관리‧감독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공영방송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었으면 한다./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김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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