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국제질서의 판도가 일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서방Collective West에 맞서 러시아는 동서간의 화해협력에서 벗어나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결집하고 있다. 러시아는 수도 모스크바, 제2의 도시 상뜨 뻬쩨르부르크가 유럽에 있지만 광대한 영토는 절반 이상은 아시아에 걸치고 있다. 때문에 유라시아에서 유럽과 아시아가운데 어느쪽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돼 왔지만 우크라이나 분쟁을 계기로 아시아, 그리고 북반부의 서구와 반대쪽인 남반구의 글로벌 사우스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열흘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IMEMO주최로 프리마코프 독서회Primakov Readings/Примаковские чтения란 국제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러시아 전 외무장관 예프게니 프리마코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럼으로 전현직 외교관, 정책결정자, 외국의 학자들이 모여 세계정치, 경제동향에 대한 대화를 촉진하는 장이다. 이 자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제 서방과의 과거 관계는 복원되지 않을 것이며 협력을 굳이 한다면 새로운 원칙에 기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수호와 그들의 가치와 동일시한다면 더이상 서구와는 관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유럽과 작별을 선언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나토의 팽창주의 야심을 거듭 질타했다. 나토를 러시아 방향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구두약속도 엄연한 약속인데 대놓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이끄는 나토는 인도를 중공과 싸움을 하도록 유도하면서 아세안에서 불화를 일으키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진심으로 유럽연합의 독립을 원한다면서 그들이 미국에 완전히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에 동등한 조건으로 협력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8회 국제 프리마코프 독서회.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보좌관과 주미 대사를 지냈던 유리 우샤코프는 예전에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단일 공간을 만들자는 은유는 분명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유럽 서쪽에서 러시아 극동까지 협력해 잘 지내자는 러시아의 발상이 좌초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안보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유럽도 마찬가지라면서 이는 21세기 유럽 안보 아키텍처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리 우샤코프는 예전에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라는 공식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무르만스크에서 뭄바이, 상하이까지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외교정책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총리시절의 프리마코프와 FSB수장시절의 푸틴.
총리시절의 프리마코프와 FSB수장시절의 푸틴.

프리마코프 독서회 조직위원장인 알렉산드르 듼킨은 21세기 유럽안보아키텍처의 종말은 그러나 역사의 종말은 아니며 러시아가 생각한 동서모델이 남북모델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유럽 패밀리라는 개념을 이제는 중공, 인도, 터키, 유라시아, 중앙아시아를 포괄하는 Great Eurasia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러시아가 개별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대략의 스탠스도 나왔다. 알렉산드르 듼킨은 우선 일본이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NATO회원국이 아니며 사할린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탈퇴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2023년에 추가로 대량의 가스구매를 협의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은 미국이 동의한 것으로 확신한다고도 말했다. 지금 당장은 러일관계가 표면적으로는 극도로 적대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 이익이 달려 있기 때문에 화해할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르바쵸프, 옐친시대를 풍미한 외교관 프리마코프와 키신저.

또 이란은 남북자오선을 따라 이어지는 국제남북교통회랑INSTC(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때문에 중요하다면서 이란에 접한 카스피해는 지중해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국제남북교통회랑은 러시아에서 육로, 또는 카스피해를 거쳐 이란으로 연결되고 다시 인도와 해로로 이어지는 물류회랑이다. 이는 발트해, 도버해협, 지브롤터 해협, 지중해, 수에즈 운하를 잇는 복잡한 노선을 대체할 예정이다. 유럽이 러시아를 적대시하는데다 시간과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기존 물류회랑을 버리고 러시아와 이란 두나라 모두에게 이익인 국제남북교통회랑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교통회랑.
남북교통회랑.

알렉산드르 듼킨은 이와 함께 우선순위에서는 좀 뒤에 있지만 아프가니스탄과도 특정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도주하다시피 허둥지둥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은 그러나 확실히 러시아에 우호적이다. 원유를 제공함으로서 단번에 아프간을 판도에 편입시켰다. 러시아는 또 터키로 프랑스를 대체하고 있다. 과거 프랑스가 소련과 미국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워싱턴에 매몰된 상황에서 터키가 프랑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가 아니라 무르만스크에서 뭄바이, 상하이까지라는 발상은 이미 남북국제교통회랑INSTC뿐만 아니라 북극해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 러시아 국영원자력회가 로사톰 주도로 핵쇄빙선 함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쇄빙선으로 무르만스크와 에너지 선적기지인 야말에서 극동의 블라디보스톡, 상하이, 뭄바이를 직접 잇겠다는 야심을 추구하고 있다. 북극해 루트와 국제남북교통회랑INSTC를 이어 물류와 에너지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아우른다는 거대한 수를 두고 있다.

한국은 이 같은 국제질서의 대격변에 눈을 감고 있다.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영미권 매체에만 매몰돼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컬렉티브 웨스트라 불리는 서구의 인구는 세계인구의 18%에 불과하다. 수출과 물류에 생존을 의지하는 한국으로서는 좀 더 넓게 그리고 몇 수 앞을 미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프리마코프 독서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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