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내년 초 전기요금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 한전법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및 법사위 등에서 여야 합의에 따라 통과됐지만, 정작 본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부결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 반대 토론 빌미로 한전법 개정안 여야 합의 파기

법안은 재석 의원 203명 가운데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반대나 기권표를 던졌다. 개정안 부결로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못할 경우, 내년 초 전기요금을 올해 3배 이상 인상해야 하는 실정이다.

국회 본회의 부결에는 ‘한전채 발행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의 반대 토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탈원전 전도사로 알려진 양이 의원은 "한전이 회사채 발행에 나선 이유는 뛰는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라며, 원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다 보니 적자가 누적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회사채 발행 대신 전기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셈이다.

양이 의원의 반대 토론 이후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도 ‘여야 합의’를 뒤엎고 기권 의사를 밝히면서 개정안이 부결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정안 부결에 대해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민주당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통감하지 못할망정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법안의 처리마저 지연”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전이 전력 구입비를 제때 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전력시장 전체가 마비되는 대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양이 의원의 태도에 강하게 반발하며 ‘임시국회에서라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한전의 재정 위기가 초래됐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비판하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2015년만 해도 매년 10조 흑자를 내던 한전이 문재인 정권의 비과학적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적자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탈원전하면서 임기 5년간 한 번도 전기 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그 모든 뒷감당을 윤석열 정부가 떠맡고 있다”며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10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기권을 던졌고 반대토론에 나선 양이원영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전도사”라고 지적했다.

문 정부 땐 전기요금 인상 피하던 민주당, 이제 와서 전기요금 폭탄 투하?

양이 의원은 11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기국회 이후에 시작되는 임시국회에서라도 조속히 한전법을 다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입장을 비판했다.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도 무시한 채 빚만 늘리자는 무책임한 발언 자체가 시장에 안 좋은 신호”라는 비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전도사'로 활약했던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8일 본회의에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데 대해 반대 토론을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전도사'로 활약했던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8일 본회의에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데 대해 반대 토론을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양이 의원의 주장은 ‘한전 재무 건전성 개선 방안이 나와야 한전채 한동 상향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한전이 적자 전환됐다'는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틀렸다. 탈원전 정책으로 폐쇄한 원전은 월성 1호기뿐이다.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 비중과도 관련없다"며 "원전 비중이 29.5%였던 2012년은 고유가로 적자였지만 원전 비중이 29%였던 2020년에는 저유가로 흑자였다. 한전 적자, 흑자는 유가 변동을 반영하지 않은 전기요금 체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회사채 발행은 미봉책이므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된다는 게 양이 의원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의 거센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탈원전의 선봉에 섰던 양이 의원의 전기요금 인상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이도운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한 유튜브에서 ‘사악하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이 위원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서 올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건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탈원전 때문에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 등의 2배, 이대로 가면 ‘연말 디폴트’ 불가피

문재인 정권에서 현실화하지 않은 전기요금은 윤석열 정부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치솟는 연료비에 비해 더디게 오른 전기요금 탓에 올해 한전의 적자는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로 가다간 한전의 ‘부도’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당장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려야 하는 한전법 개정안이 추진된 것이다. 한전의 적자 폭이 폭증함에 따라 회사채를 마련해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던 한전법 개정안은 한국전력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한전채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까지만 발행할 수 있다. 손실과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한전채 규모는 연말이면 72조원으로, 법으로 정한 한도(자본금과 적립금 합산액의 2배)를 넘어선다. 법을 개정해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는다면 내년 3월 결산 정산 이후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진다. 자산 228조원(올 9월 말 기준)의 국내 최대 공공기관인 한전이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회사채 발행 한도 늘리지 않으면 내년 초 올해 3배 수준 전기요금 인상해야

결국 수십조원에 달하는 영업 적자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1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전의 회사채(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내용의 한전법 개정이 올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초에 전기요금을 올해 인상분의 3배 이상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도가 초과한 회사채를 상환하고 전력 대금까지 결제하려면 내년 1분기(1~3월) 전기료를 1㎾h(킬로와트시)당 약 64원 올려야 한다. 올해 1년간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 등 전기료는 총 19.3원 올랐다. 추정치인 64원은 올해 오른 것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올해 오른 19.3원도 소비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23.1%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0년 1월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이처럼 급격한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서는 한전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여야는 임시국회에서 한전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공식 입장을 내고 “한전이 필수 유동성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한전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와 단계적인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조기에 수립하는 한편 정부 재정 지원 방안과 전력시장 제도 개선 방안 등 다각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을 경우 한전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여야는 한전법 개정안을 임시국회에서 다시 발의해 논의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을 경우 한전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여야는 한전법 개정안을 임시국회에서 다시 발의해 논의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민주당, 한전법 개정안 처리에 재합의...민주당의 일각의 ‘전기요금 현실화’ 주장이 변수

민주당도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있다. 임시국회를 열어 한전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국민의힘과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 일각의 기류는 여전히 심상치 않다. 회사채 발행한도를 늘리기보다 전기요금 현실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1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부채한도를 늘리는 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미봉책”이라면서 “전기료 현실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전혀 고민이 제대로 안 된 채 지난 정부부터 일단 빚을 내서 해결하는 미봉책이 계속되고 있으니 이제는 제대로 고민해 봐야겠다는 문제의식에서 반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 전기료가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낮은 편으로 LNG 석유 등 원료 가격이 대폭 상승했는데 생산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현재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민주당의 ‘발목잡기’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 처리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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