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을 견인한 파울루 벤투 대표팀 감독이 “한국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지난 6일 브라질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1-4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공식화했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 브라질과의 16강전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 브라질과의 16강전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 재계약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벤투 감독의 이같은 결정은 이미 지난 9월에 이뤄졌다고,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에도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벤투 감독과 한국 축구의 동행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벤투 감독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직후인 2018년 8월 28일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4년 넘게 팀을 이끌면서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어냈다. 지난 4년간 몇 차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뚝심’ 리더십으로 이를 극복했다.

2019년 아시안컵 8강 탈락, 2021년 한일전 0:3 완패에 이어 올해도 0:3으로 패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게다가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1:5로 대패했을 때 위기가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벤투 감독은 ‘빌드업’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수칠 때 떠나는 벤투 감독은 한국축구의 미래와 관련해 몇 가지 쟁점을 남겼다.

① 벤투, 선수들과의 무한 신뢰 형성...손흥민, “감사 인사로 부족할 정도 많이 배워”

벤투 감독은 지난달 2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마지막 코너킥 상황에 종료 휘슬을 분 앤서니 테일러 주심에게 강력히 항의해 레드카드를 받았다.

그 결과 포르투갈과의 경기 때는 벤치에 앉을 수 없었다. 주장인 손흥민 선수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수들은 “감독님이 관중석에 앉은 채로 마지막 경기를 끝내게 할 수는 없다”는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끝에, 포르투갈에 2;1의 역전승을 일궈냈다.

어이 없는 경기 종료에 거세게 항의하던 김영권 선수가 주심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자, 벤투 감독이 전력질주해서 항의를 해 벤투 감독이 김영권 선수 대신 레드카드를 받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정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벤투 감독의 성정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정도로 벤투 감독은 선수 보호에 철저했던 것으로 이름나 있다. 선수 본인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 뛰겠다고 하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기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황희찬 선수를 가나전에서 안 뛰게 해서 0:2로 패배했다는 점을 들어 벤투 감독을 비난하는 축구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황희찬 선수가 포르투갈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도 벤투 감독이 충분히 쉬게 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손흥민은 벤투 감독에 대해 “감독님의 축구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사진=뉴스1 유튜브 캡처]
손흥민은 벤투 감독에 대해 “감독님의 축구에 대해 한 번도 의심을 한 적이 없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사진=뉴스1 유튜브 캡처]

벤투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는 손흥민 선수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손 선수는 벤투 감독에 대해 “감독님이 어떤 축구를 하는지 사실 저희들은 의심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많은 분들이 의심을 하셨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감독님한테 감사 인사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② 개인보다 팀을 강조하는 ‘빌드업 축구’는 과제로 남아

빌드업 축구를 중시하는 벤투 감독은 항상 개인보다 팀을 강조했다. 수비라인에서 미드필드를 거쳐 상대 진영으로 우리 공격수까지 이어지는 패스를 통한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경기를 구사하는 기술 축구를 의미한다. 실제로 이런 전략 덕분에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도 볼 점유율에서 밀리지 않는 경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보다 팀을 강조하는 벤투 감독의 전략은 손흥민 선수에게는 적잖은 힘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추첨에서 포르투갈과 한 조에 속하게 되자, 언론에서는 일제히 호날두와 손흥민의 1:1 대결로 몰아갔다. 당시 벤투 감독은 ‘월드컵 경기는 손흥민과 호날두가 1대1로 붙는 게 아니라, 11대 11로 경기한다. 한 팀으로 경기하는 게 중요하다. 손흥민은 더 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호날두가 아닌 팀을 상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이강인 선수 기용을 두고는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벤투 감독에게 기자들이 “이강인 선수를 왜 기용하지 않냐?”라는 질문이 쏟아지자, 벤투 감독은 기자들을 향해 “왜 당신들은 개인을 보느냐, 나는 팀 전체를 본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 1-4로 패한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 1-4로 패한 축구대표팀의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③ 벤투의 뚝심은 갈등으로 비화, 계속된 경질 끝에 한국행

1988년 포르투갈 CF 벤피카에서 프로에 데뷔한 벤투 감독은 2004년까지 포루트갈과 스페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벤투 감독은 현역 시절 성실하면서도 악착같은 플레이로 유명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박지성 선수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포르투갈의 16강 진출이 좌절됐고, 이것이 그의 국가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됐다. 2004년 스포르팅의 유소년팀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벤투 감독은 2010년 포르투갈 성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이후 브라질, 그리스, 중국을 전전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16년 5월 부임한 브라질의 크루제이루에선 성적 부진으로 석달 만에 사임한 데 이어,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에선 구단주와의 불화로 경질됐다. 2017년에는 중국의 충칭 리판에 부임했지만 선수들과의 불화 문제와 구단주의 부족한 지원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또다시 경질됐다.

이런 점 때문에 2018년 벤투 감독 영입 문제가 거론됐을 당시, 국내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경질론이 나올 정도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았다. 이후 향상된 경기력으로 여론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벤투 감독을 영입한 당시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은 "할 일이 많으니 파주에 사무실을 마련해 달라"는 벤투 감독의 진정성을 믿었다고 한다.

④ “한국은 선수들 휴식은 필요 없고 오로지 돈” 작심비판

“선수들 휴식은 필요 없고, 중요한 게 돈, 스폰서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제 의견은 ‘대표팀이 한국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는 겁니다”라며 벤투 감독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작심발언했다. 월드컵 직전까지 일부 선수들이 FA컵, K리그 등을 치르느라 소속팀에서 혹사 수준으로 경기를 뛴 것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9월 한국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벤투 감독의 이같은 작심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당시 벤투 감독은 김진수 선수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월드컵 출전이 확정된 상태에도 끊임없이 경기에 출전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당시 김진수는 K리그 31경기와 FA컵 4경기,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8경기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출전했고, 결국 부상으로 대표팀 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김진수의 부상 원인에 대해 ‘소속팀에서 당한 혹사’를 꼽은 것이다.

벤투 감독은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나 FA컵 등 3일 간격으로 열린 시즌 막판 K리그·FA컵 일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표팀이 한국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8월에도 그런 걸 볼 수 있었다”며 “그 외에도 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길 원하는 것 같은데, 팀도 그렇고 선수도 그렇고 올바른 방식으로 도울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 축구협회 관계자와 선수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항상 선수들의 위치에서 선수들을 많이 보호해주고 선수들을 생각해 준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벤투 감독이 한 작심발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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