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인 알에글라 훈련장. 내걸린 현수막에 대한축구협회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16강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한국팬들은 대한축구협회에 분노하고 있다. 축구협이 파울루 벤투 감독의 공적을 깎아내리는 한편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더 나은 성과를 거두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6년 유나이티드 월드컵부터 참가팀이 48개국으로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축구협이 '아시아 배당 표가 늘어날 것이므로 한국은 당연히 본선에 진출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 한국팬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축구협의 입장은 김병지 축구협 부회장이 6일 오전 라디오에서 한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팬들은 그의 인터뷰에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부회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 대표팀의 카타르 월드컵 성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 부회장은 "4년을 준비하면서 벤투호의 염려스러웠던 부분이 사실 많이 있었다"며 "빌드업 축구를 구사하면서 백패스가 많았었고 그러면서 조금은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세계무대에 나가서 좋은 팀을 상대로도 빌드업 축구가 통할까라는 염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벤투 감독의 고집이라면 고집일 텐데 그 전략이 과연 월드컵에서 먹힐까라고 생각했었다"라며 "우루과이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고 또 가나 상대로는 경기를 압도적으로 가져갔지만 결과가 참 아쉬웠다. 불운했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경기력이 좋았었는데"라고도 했다.

김 부회장은 "3차전 포루투갈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 역전승을 만들었을 때는 벤투호의 뚝심이 좋았다라는 평가가 많았었는데 그런데 여기서 조금 제가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인 게 (있다)"며 "그 전 4년 동안 벤투 감독이 보여줬던 선수 구성, 선수 교체 타이밍, 전술 변화가 이번 월드컵에 있는 동안에 완전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건 뭐냐면 4년 전엔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안했다고 보여지는데 이번 월드컵에는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거다"라며 "이게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갑자기 변화가 됐는지 저도 사실 궁금하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벤투 감독이 4년 간의 부정적인 모습을 일거에 바꾼 별도의 외부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이에 대해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축구 팬들까지도 마음을 벤투 감독에게 실어줄 수 있는, 또 손흥민 선수가 인스타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용이 있다"며 "(손 선수가) '우리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팬들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런 원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었다"고 했다. 김현정 진행자가 "벤투를 움직여서 본인의 빌드업 축구에다가 팬들이 원하는 이런 경기 운용까지 섞어서 원 팀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보면 되는거냐"고 묻자 김 부회장은 "그렇다. 흐름상 그렇게 보여진다"고 했다. 즉 벤투 감독이 스스로 결심해서가 아니라 손 선수와 팬의 압력으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팬들은 "원정 16강 업적은 누가 봐도 대단하지만 벤투는 후려쳐야겠으니 '손 선수와 팬들 덕분에 벤투가 움직였다'고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팬들은 축구협이 벤투 감독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대표팀 감독 재계약 과정에서 다소 '잡음'이 있었던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4년 뒤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이 공동 주최하는 2026 유나이티드 월드컵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해달라 요구했지만 축구협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만 재계약한 후 성적에 따라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벤투 감독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벤투 감독은 지난 9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 월드컵에서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둔 마당에 협상 결렬 소식이 확산되면 그 책임소재를 두고 말이 나올 것이 뻔하므로, 축구협이 일종의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한국팬들은 추측하고 있다.

김 부회장의 후속 발언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4년 뒤를 볼텐데 지난번 월드컵, 지금 이번 월드컵이 지나간다라고 보면 눈여겨 봐야 할 사항들이 있다. 월드컵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아시아 쿼터가 8장에서 9장 정도 사이가 될 텐데 그 전에는 월드컵 나가기 위해서 좋은 감독 모셔와서 준비하면서 4년 동안 플랜을 가져갔는데 이제는 월드컵 진출에 대한 계획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전제조건을 깔고 가야된다는 거다"라고 했다. 즉 본선 진출국이 기존 32개국에서 1.5배 늘어난 48개국이 되므로, 아시아 최강을 자신하는 한국 축구는 자동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되니 굳이 좋은 감독 구할 필요가 있냐는 투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팬들은 "일본은 2005년부터 2015년엔 피파랭킹 10위 진입, 2050년 단독 개최 및 우승이라는 '장기목표'를 갖고 차근차근 준비중인데 축구협은 저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다.

지난 9월 재계약 논의가 결렬되면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사실상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떠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재계약 논의가 결렬되면서 파울루 벤투 감독은 사실상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떠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팬들은 축구협이 월드컵 이전 부진했던 벤투 감독과의 '+4년 추가 계약'에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다만 재계약 불발 과정에서 축구협이 했던 언론플레이, 의도적인 평가절하를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지 않고 늘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는 모습 역시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 축구 시스템, 인재 육성 시스템 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명하거나 훌륭한 감독을 모셔 오면 된다'는 고질적인 패턴이 또 답습될거란 절망감도 크단 분석이다. 

한편 일부 팬들은 김 부회장 개인을 욕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부회장이 그동안 벤투 감독을 지지하기는커녕 항상 비판만 해 왔고, 이날 라디오에서도 그 기조를 사실상 이어 갔다는 것이다. 팬들은 김 부회장의 유튜브에 몰려가 '당장 벤투 감독에게 사과하라'며 요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자칭 2002년 레전드들이 축구 적폐가 됐다' '감독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이제 와서 잘 했다고 태세전환 하는가' '진짜 레전드들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한다' '그렇게 팀과 감독, 선수를 흔들어놓고...본인이 감독해서 대표팀 운영하는 거 보고 싶다' 등의 주요 반응이 있었다. 한국팬들은 김 부회장에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의 축구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2002년 당시 옆에서 직접 보고 들었을 텐데 나이가 들어 축구협에 들어가더니 모조리 잊어버렸나 보다'라고 묻고 있다. 

지난 6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단 만찬에 앞서 거스 히딩크 전 감독,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 송종국, 김병지 등 2002년 주역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팬들은 이제 2002년 레전드들에게 '한국 축구를 위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 관련해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겐 '히딩크 감독이 시도했던 개혁의 험난함을 알고 있을 텐데 벤투 감독을 돕진 못할망정 옆에서 비판만 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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