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윤석열 정부의 국가정보원(원장 김규현)이 최근 2·3급 고위간부 보직 인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6일 알려졌는데, 이 과정에서 100여명에 대해서는 무보직 대기발령을 한 것으로 전해져 눈길이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원 前 국정원장이  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6개월 전 1급 부서장 27명을 전원 해고한 데에 이어 오늘(6일) 보도를 보니 2·3급 100명을 무보직 대기 발령했다"라면서 "제가 국정원장을 한 게 제 죄라고 생각하니 내가 왜 국정원장 직을 (맡아)했는지 진짜 너무 눈물이 난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으로 재임했을 당시 치러졌던 인사 등이 정권이 교체가 되자 대규모 해임되는 등 일종의 '정치적 인사'가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박지원 전 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중잣대격 발언이다. 왜냐하면, 박지원 원장이 실권자였던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국정원의 전신이었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대북정보기능 중 인간정보(Human Intelligence, 약칭 HUMINT) 자원을 대규모 숙청한 바 있다.

그랬던 정권의 핵심실세였던 자가 이번 국정원 인사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 그 자체가 이중잣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사건은 이렇다.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안기부 내 휴민트(인간정보)를 대규모 숙청한다. 1998년 4월1일자로 대북공작국과 대공수사국 등이 조직개편의 파고를 정면으로 맞았고, 이때 안기부 내 부이사관급 140명을 포함해 서기관급 요원 581명이 쇄신 대상이 됐다.

2차 쇄신은 300명에 이어 900명의 대북 담당 요원들이 소리소문없이 인사대상으로 올랐다. 북한 분석관실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 과거 국정원 요원이었던 송영인 씨의 증언에 따르면 "1998년 4월1일 안기부 직원 581명, 대공경찰 2천500명, 국군기무사령부(지금의 방첩사령부) 요원 500여명이 쫓겨났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새로운 국정원 원훈석을 제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정원 원훈은 5년 만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교체됐다. 2021.6.4(사진=청와대, 편집=조주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국가정보원에서 새로운 국정원 원훈석을 제막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정원 원훈은 5년 만에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교체됐다. 2021.6.4(사진=청와대, 편집=조주형 기자)

김대중 정부에서 쫓아낸 국정원·보안요원은 통칭 HUMINT(휴민트)로 불린다. 휴민트는 인간정보를 뜻하는 것으로 정보수집 출처의 성격과 성질에 따라 분류된 기능 중 일부로, 기술정보(TECHINT, Technical Intelligence)와 별도로 인간을 출처로 얻는 정보의 유입 경로를 뜻한다.

제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휴민트가 사라질 경우, 정보는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없다. 지구 궤도에서 사진을 찍거나, 외부기관에서 도청을 하더라도 인간정보에 의한 최종 확인 경로를 거치지 않을 경우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는 실제 공작요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다.

국정원 전 대북조사단 단장을 역임했던 송봉선 전 고려대학교 교수가 <펜앤드마이크>에 관련 내용을 전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자에게 "과거 김정일이 중병을 앓았을 당시, '칫솔'이라는 소리(칫솔질)가(들렸다고) 거론됐다"라고 언급했었다. 정보 수집 대상에 대한 기술적 접근도가 최고수위에 이르더라도, 인간정보를 통해 이를 확인해야 확실성이 높아진다는 것.

이같은 기능을 했던 인간정보 자원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무려 581명에 달하는 고위급 인사들의 옷을 벗겼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수백명에 달하는 대북요원망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DJ당시 휴민트 대량 해고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최근까지도 진행됐다. 과거 해고됐던 이들은 2000년대 초 행정소송을 제기했었고, 민사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보수장이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 또한 이 사건의 여파를 맞았다.

국내 유일의 국가중앙 정보기관의 인사에 대해, 정치권력이 손을 뻗히지 않도록 인사권을 온전히 보장토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직 풀어내지 못한 미래 과제 중 하나이다. 정보기관이란, 추후에 있을 국가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미칠 사활적 위해를 사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DJ정부 때 대북공작국과 대공수사국 요원망을 무너뜨리는 것을 관망한 인물이 오히려 거꾸로 '정치보복'을 운운한 셈이다.

지금가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 사건의 여파는 당시 실권자였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 또한 비껴갈 수 없다. 박지원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 즉 DJ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이던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시 당선인의 대변인으로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을 거쳐 문화관광부(오늘날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두루 거치는 요직 인물이었다. DJ맨으로도 불리던 그가, 수백명을 해고했던 DJ정권의 민낯을 보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정치보복'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국정원 측은 이번 고위급 인선에 대해 "관련 규정에 따라 진행된 인사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전했다./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국정원의 새로운 원훈. 국정원은 24일 새로운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2022.06.24(사진=중앙정보부의 탄생,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편집=조주형 기자)
국정원의 새로운 원훈. 국정원은 24일 새로운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2022.06.24(사진=중앙정보부의 탄생,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편집=조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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