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대에 참여한 여성들이 지난 9월 16일(현지시각) '도덕 경찰'에 체포·구금됐다가 알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던 마흐사 아미니(22)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아미니는 히잡을 쓰고 있지 않았단 이유로 체포됐었다. [사진=블룸버그]

이슬람 '공화국' 이란의 '도덕 경찰(morality police)'제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블룸버그 등이 4일 전했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단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구금된 지 3일만인 지난 9월 16일(현지시각) 모종의 이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이란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발생해, 국민적 압박을 느낀 이란 당국이 내린 조치로 풀이된다. 이를 계기로 '신정 국가' 이란에 세속화·자유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도 관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3일(현지시각) 마흐무드 자파르 몬타제리 이란 검찰 총장은 "지도 순찰대(도덕 경찰의 공식 명칭)는 사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과거에 이를 형성했던 동일한 상황에 의해 중단됐다"고 했다고 이란 반(半) 공식 노동 통신사가 전했다. 이란 공화국의 엄격한 종교적 기준에 따른 복장 규칙을 어겼다고 확인된 사람을 체포하는 도덕 경찰이 이미 활동을 종료했다는 것이다.

이란 치안 당국이 '도덕 경찰'을 중단시킨 데엔 아미니의 의문의 죽음 이후 촉발된 전국민적 시위와 국제사회의 압박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유엔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수개월 째 이어진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305-420명이 사망했는데, 여기엔 어린 아이 사망자 41-60명이 포함된다. 또한 1만4000명의 이란인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돼 최고 사형 등 중형을 선고 받았다. 

유엔에서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4일(현지시각) 25개국이 사망·부상·학대·감금 및 시위대와 그 가족에 대한 협박을 조사한다는 결의안을 발의하는 데 동의했다. 이에 반대한 나라는 이란을 포함해 동맹국인 중국과 베네수엘라 등 6개국이었다. 기권한 나라는 브라질, 인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였다. 이란이 여느 독재 국가처럼 인명 피해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권위주의·신정 체제 국가라고 해도 이란 내부 및 국제적 압박을 장기간 견디긴 힘들었단 소리다.

도덕 경찰은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르 전 대통령(2005-2013 집권) 시기인 2006년에 창설됐다. 이후 도덕 경찰은 이란 여성이 외출 시 히잡을 착용했는지부터 시작해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각종 풍속을 단속해나갔다. 반면 후임자였던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2013-2021)은 다소 온건한 성향을 지녀 이 시기엔 풍속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이란 국민들이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 현 대통령의 자유 억압에 항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덕 경찰'의 공식 명칭은 '지도 순찰대(guidance patrol)'이다. 이란 여성의 히잡 착용을 포함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풍속을 교정할 목적으로, 길거리 불시 심문 및 즉결 체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도덕 경찰'의 활동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이를 계기로 이란에 민주화·개인의 자유 확립이 이뤄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섣부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우선 몬타제리 검찰 총장이 언급한 '도덕 경찰' 운영 중단이 이란의 전면적인 정책 전환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불룸버그는 평가했다. 시위대가 요구하고 있는 '종교적 기준에 따른 복장 규칙의 전면 폐기' '시민적 자유, 거버넌스, 법의 통치와 관련해 광범위한 목록의 불만 사항 처리' 등과 같은 사항들은 도덕 경찰의 운영 여부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개혁 대상이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전 팔레비 왕조 시기의 이란인들. 지금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서구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란인들은 백인이기에, 서방 국가 사람들과 사실상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도덕 경찰'의 대체재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슬람 신정 공화국 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는 한에서는 시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안 시스템이 얼마든지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속화·근대화·종교개혁을 통해 정교 분리를 이룬 근대 국가와는 달리 이란은 1979년 되려 종교 국가로 회귀해버렸다.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이자 이맘(시아파의 신학자·종교 지도자)들이 군림하고 있는 이란이 언제 다시 新 도덕 경찰을 만들어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몬타제리 검찰 총장이 이날 노동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이란) 사법부는 공동체 내부 행동을 계속해서 감시할 것"이라고 밝혀 이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팔레비 왕조 시기 단란한 가정의 모습.

결국 이란 국민들이 요구하는 '세속화·자유민주주의 국가로의 변모'를 위해서는 이란의 현 국가 체제를 전복시켰을 때에만 가능하단 소리일 수 있다.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끝내고 '라흐바르(이란의 최고지도자이자 국가원수, 대통령 이상의 권위를 지님)'가 됐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에 '퇴행적 혁명'을 가져왔단 평가를 받는다. 그의 뒤를 이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역시 이란 대통령 이상의 힘을 지닌 절대 권력자이자 종교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이 단순히 '도덕 경찰'의 종료가 아닌 신정 공화국 이란의 종말을 가져올 때, 이란이 옛 '페르시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특히 팔레비 왕조 시기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되고 개인의 자유를 누렸던 이란이기에, 이란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야기할 여파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1970년대 장발을 하고 있던 이란 젊은이들의 모습. 서구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차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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