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커녕 다시 큰소리 치는 '광우병 괴담' 주동자들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10년 전 이맘때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은 주말마다 몸살을 앓았다. 2008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그해 418일 미국 정부와 쇠고기 수입 재개협상을 타결한 직후인 429MBC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상당부분 제작진의 의도적 왜곡이 포함된 함량미달 프로그램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국민의 불안감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포털 게시판 등을 통해 광우병 괴담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200712월 대선과 이듬해 4월 총선 패배로 궁지에 몰려있던 세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문제의 PD수첩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 불과 사흘 뒤인 52일 시작된 광우병 시위는 8월 중순까지 100일 이상 계속되면서 서울 등 전국 곳곳을 '무법천지'로 몰아넣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과 왜곡에 휘둘려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막 출범한 정권이 휘청거리고 나라 곳곳이 패닉에 빠진 모습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나는 아직 죽기 싫어요” “미국 쇠고기는 미친 소황당한 구호

주말 밤마다 서울 도심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이명박 OUT’을 주장하는 대규모 불법폭력 시위가 난무했다. 촛불집회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벌어진 광우병 난동에서 시위대는 많은 경찰관에게 상처를 입혔고 경찰버스들을 때려 부수었다. 당시 근무하던 신문사가 서울 도심의 세종로 4거리에 있어 종종 심야에 시위 현장을 목격했던 나는 폭력배들의 적의에 가득 찬 핏발서린 눈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불법과 폭력, 거짓말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그런 식의 가짜 민주주의는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런 대규모 폭력사태가 '평화로운 촛불집회'였다면 그런 촛불은 꺼져야 하고 국어사전에서 집회란 단어의 뜻은 바꿔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말도 안 되는 구호가 난무했다. 광우병 난동의 주도세력에 휘둘려 어린 10대들조차 나는 아직 죽기 싫어요” “미국산 쇠고기는 미친 소” “이명박 정권 타도라고 외쳤다. 얼치기 좌파물이 든 일부 연예인도 가세했다. 좌파 언론들은 이런 행태들을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마치 바로 죽는 것처럼 요란을 떨던 좌파 정치인이나 연예인 중에는 나중에 미국에 가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미국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포착되거나,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음식을 파는 식당을 운영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들도 적지 않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물량은 2016년보다 13.5% 늘어난 17만7000t으로 외국산 수입 쇠고기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광우병 사태는 개인적으로도 언론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하나로 남아 있다. 당시 일부 좌파 세력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몇몇 주류 신문이 자신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광우병 괴담의 허구를 지적하는 기사들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이들 신문을 위축시키기 위해 광고주 협박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는 그 세력의 거짓과 정면으로 싸우는 취재팀을 지휘하는 주무 부장을 맡아 매일밤 늦게까지 후배 기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팩트를 바탕으로 거짓주장을 논파하는 기사들을 잇달아 내보냈다.

결국 사실상의 폭력을 앞세워 주류신문을 주눅들게 만들려고 했던 일부 극좌 세력의 광고주 협박은 실패했다. 그들은 사법 처리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그때보다 더 젊은 기자들과 함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 진실 시장 국가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광야에서 '새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저널리스트로서 보람은 있지만 그리 편안한 팔자는 아닌 것 같다.

"광우병 소동은 시민운동 아니라 대한민국 정서의 총합"

황당한 광우병 소동 1년 뒤 사단법인 시대정신은 광우병 촛불시위 추적보고서-거짓과 광기의 100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고 광우병 파동을 재조명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시대정신 이사장이었던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는 광우병 파동은 단순한 시민운동이 아니라 반()대한민국적 정서의 총합(總合)을 기반으로 전개된 사건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이미 다 꺼진 촛불을 다시 헤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앞으로 제2, 3의 촛불시위나 광우병 파동의 반복을 막고 한국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이런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이후 10년간 흘러온 역사를 보면 한국 사회는 거짓과 광기에 휘둘린 광우병 파동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눈으로 보면 북한의 소행이 명백한 천안함 폭침을 둘러싸고 나온 천안함 괴담은 어떤가. 안타까운 해난 사고인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세월호 괴담은 또 어떤가. 한국사회는 광우병 괴담과 같은 대()국민 사기극이 재연되지 않을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하지도 못했고 진실에 대한 겸손함이 자리 잡지도 못했다.

비(非)좌파 정권을 흠집내고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정당하다고 여기는 일부 세력의 저질 책동이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것은 2016년 하반기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터진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해 폭포처럼 쏟아진 수없이 많은 악성 거짓 선동일 것이다. 당시 신문과 방송, 온라인을 통해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전파된 내용 중 특히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던 내용, 가령 여성 대통령을 겨냥한 비열한 성적 추문 유포나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까지 최순실이 좌지우지할 만큼 무능한 대통령이란 악성 이미지 확산은 대부분 거짓과 과장, 왜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0년 전 MBC PD수첩의 '광우병 왜곡'은 잠시 '반짝 효과'를 거두는데 그쳤지만 2016년 10월 손석희 사장의 JTBC가 내보낸 태블릿 PC 관련 보도는 여러 면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외면한 문제 많은 보도였지만 지금까지도 상당수 언론과 국민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렇게 유능한 대통령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기관리 능력도 취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임기 도중에 탄핵으로 쫓겨나야할 만큼 다른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 대내외 정책에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거나 정치를 통해 개인적 치부(致富)에 열을 올린 부패 정치인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친박(親朴)'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전 경기지사) 같은 이는 오히려 "한국의 정치인 가운데 돈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깨끗한 의원은 보기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다. '한물간 운동권 찌라시' 수준으로 지면을 만들었던 몇몇 좌파 매체들이야 으레 그러려니 치자. 그러나 광우병 괴담이나 천안함 괴담 사태 때만 해도 거짓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었던 주류 매체들까지 싸구려 선동에 넘어가고 사실과 다른 선정적 괴담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막가파 급진좌파 폭주와 대한민국의 체제 위기를 초래하는 데 부역한 점은 지금 되돌아봐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에서도,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한 서글픈 우리 현실

10년 전 광우병 소동의 기폭제가 됐던 MBC PD수첩의 제작진은 그 이후에도 반성은커녕 줄곧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다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MBC점령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살벌한 숙청을 벌이고 있다. 광우병 괴담 확산에 톡톡히 한몫을 한 일부 연예인과 가짜 지식인들도 요즘 제 세상 만난 듯이 활개치고 있다. 그런 자들이 말하는 민주와 정의는 진정한 민주나 정의와 거리가 한참 멀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권교체를 넘어 체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비스마르크는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고 했다. 광우병 소동 후 10년 동안 한국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작지 않지만 역사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더 나아가 경험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이 서글프고 참담한 현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리고 상당수 한국인은 언제쯤 거짓선동에 쉽게 휘둘리는 이런 집단적 무지(無知)와 '가벼운 귀'에서 벗어나 진실에 바탕을 두고 세상을 읽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시민으로 거듭 날 수 있을까.

권순활 전무 겸 편집국장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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