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가결이 선포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TBS에 2023년까지만 출연금을 제공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7일 TBS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9차 TBS이사회에서 이강택 대표이사 사퇴에 따른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구성 논의가 있었지만 보류한단 결정이 내려졌다. 유선영 TBS 이사장은 이에 대해 "이사들 임기가 3개월이 남아 있어 다음 이사회에 해도 2개월 전에 임추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규정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를 댔지만, 1일 공개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이는 허울뿐인 이유란 평가가 나온다.

유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임추위 구성과 관련해 "이사회는 직장의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고 이사회도 1개월 앞서 임추위를 구성하고자 했지만 시의회 (폐지조례안) 결정이 예상과 달리 너무 빠르게 전격적으로 이뤄지고 말았다"며 "이 점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일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인 지 확신이 없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이어 "조직 전체를 바꿀 인사권을 가진 신임 대표가 오기 전까지 서울시와 시의회 행정조치에 대해 법적인 방어도 고려하고 준비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며 "방송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침 이사님들 임기가 다음 이사회에 해도 2개월 전에 임추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번 안건은 보류하는 것으로 한다"고 했다.

유 이사장의 발언을 분석했을 때 말의 방점은 "서울시와 시의회 행정조치에 대해 법적인 방어를 고려하고 준비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게 풀이할 수 있는 근거로는 "(TBS가) 다양한 각도에서 법적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다"며 "(폐지조례안이) 행정법을 위반한 소지가 분명하다는 생각이고 효력가처분 행정소송을 통해 행정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결정이 나게 되면 그 즉시 폐지조례안이 무효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행정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란 유 이사장의 후속 발언이다. 

유 이사장이 별도의 가처분 소송을 통해 TBS에 대한 서울시 예산 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조례안을 '무력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임추위 구성을 잠정 보류하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 이사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와 다소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의회의 폐지조례안을 재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오 시장에게 재의요구를 해볼 것이라고도 이사회에서 밝힌 상황. 유 이사장이 오 시장에게 협상을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소송을 시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단 뜻으로도 읽힌다.

문제는 이사회 내 다른 인사들이 유 이사장의 '지연 전술'에 반발한 정황이 포착되었단 점이다. 이강훈 이사는 "수장이 공석이기 때문에 빨리 공백을 메워야 하는 것이 맞고 예정됐던 임추위 일정은 그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이 있어서 공유해드리고 저도 같은 입장임을 말씀드린다"며 "대표이사 공석은 팩트이고 상황을 수습하는 방향에서 예정대로 임추위 구성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이사는 그러면서 "TBS가 지켜야 할 신뢰는 최대한 많은 시민의 신뢰"라며 "지역공영방송으로서 어울리는 자세와 태도를 정립하고 스스로 세운 과제를 시민들에게 보고하고 그래서 점차적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돌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이사가 유 이사장의 계획에 반대를 표함과 동시에 현 TBS가 진영논리에 입각해 친야 성향을 띠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이 이사는 또한 "조례폐지안 통과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챙겨야 하는 것이나 그와는 별도로 기관으로의 안정성을 서둘러 복구시켜 최대한 많은 시민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새 대표이사 관련 임추위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냐라는 생각이다"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시민들의 지지에 대한 이 이사와 나의 입장은 다르다"며 "TBS 임직원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사회가 해 온 논의나 의결을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여러분들은 저희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셔야 한다.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란 다소 전체주의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단 평가다.

유 이사장의 발언에 서울시를 대표해 이사회에 참석했던 김 모 홍보담당관과 권 모 공기업담당관도 유 이사장의 독선적 태도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김 담당관은 "임추위 구성과 재의 요구를 연결시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TBS의 수장을 오래 비워놓는 것은 조직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직원들을 위해서도 조속히 임추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사장 역할은 이사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본인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 담당관은 '2027년까지 출연금을 제공하기로 했던 서울시가 2023년까지만 하겠다 했으므로 서울시 및 시의회가 임추위 위원 추천권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론했다. "조례상 2023년까지는 출연금을 지원하므로 그때까지는 법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출연기관"이라는 것이다. 

권 담당관 역시 유 이사장의 의견에 반론을 폈다. 그는 "시장의 재의요구 (조건)은 엄격하다"며 "위법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부칙의 우선채용 부분을 뺏기 때문에 명확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재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것과 별개로 임추위 구성은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의 발언을 봤을 때 오 시장이 유 이사장의 폐지조례안 재의 요구를 들어줄 것 같지 않단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이강택 대표이사의 사표가 수리되고 2일엔 김어준 씨의 TBS 하차설이 나오는 등 '난공불락'이던 친야 TBS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 이사장이 2024년 1월까지 임기가 보장됐다고 해서 'TBS 개혁'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과연 막을 수 있겠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일 김어준 씨가 TBS 뉴스공장에서 하차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의회가 TBS 출연금을 폐지조례안으로 막아버린 결과다.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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