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29일 시멘트 분야 운송거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계엄령에 준하는 명령이 화물노동자에게 내려졌다”고 비판했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이 국제노동기가(ILO) 협약에서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한 노조원이 안전 운임제 품목 확대 촉구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인천 신항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 앞에서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한 노조원이 안전 운임제 품목 확대 촉구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은 ILO핵심협약 105호 강제근로 폐지 협약에 위반”

화물연대는 29일 성명을 내고 “업무개시명령은 태생부터 화물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고 탄압하기 위해 도입됐다. 법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으로 2004년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사문화된 법”이라며 “즉각 업무 복귀를 명령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시 화물노동자의 화물운송 종사자 자격을 박탈할 수 있어 계엄령에 준하는 명령”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105호 강제근로 폐지 협약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이 조항에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로서의 강제근로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봐도 업무개시명령은 헌법 제15조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화물연대는 지적했다.

오남준 화물연대 부위원장은 “화물연대는 정부의 반헌법적인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탄압 수위가 높아질수록 강력한 투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 2000년 의료계 집단휴진 당시 발동돼...공공성 유무가 쟁점

업무개시명령은 특정한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법률로 업무를 개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1994년 1월 '의료법'과 '약사법'의 개정으로 이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2002년 대한의사협회 소속 전국의사 1만여명이 27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의약분업 철폐를 위한 전국의사 궐기대회'에서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 소속 전국의사 1만여명이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의약분업 철폐를 위한 전국의사 궐기대회'에서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2.10.27. [사진=연합뉴스]

업무개시명령은 2000년 의료계가 의약분업에 반발해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갔을 당시 발동된 바 있다. 최근엔 2020년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벌였을 때도 이 명령이 내려졌다.

화물 운송을 규율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화물자동차법)에 이 조항이 신설된 것은 2004년 1월 개정 때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전년도인 2003년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가 의료법과 약사법을 참고해 화물자동차법에 이 조항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의사와 약사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으로, 높은 수준의 공적 의무가 부여됐다고 볼 수 있는 반면, 화물운송업에 이런 정도의 공공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당시 개정안에 대해 "화물운송사업은 직접적으로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과 관련되지 않는다"며 "화물차운수사업자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통한 규제를 해야 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익상의 이유는 없다고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도 "화물운송사업은 (중략) 기본적으로 영리성을 추구하는 업종이고, (중략) 각종 제도도 업계의 자율에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공공성을 강조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중략) 사회적 약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제도"라며 "법안 심의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ILO 협약 105호 중 노동규율의 수단, 파업참가에 대한 제재로서의 강제노동 위반 소지 있어

ILO 협약 105호는 ILO의 190개 협약 가운데 '핵심 협약'으로 분류된 8개 중 하나에 해당한다. 핵심 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고용상 차별 금지' 등 4개 분야에 2개씩 있다.

이 중 105호는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으로, ILO가 금지하는 강제노동의 형태를 열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거나 기존의 정치·사회·경제 체제를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에 대한 제재 ▲ 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수단 ▲ 노동 규율의 수단 ▲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 인종·사회·민족·종교적 차별대우의 수단 등으로 강제노동을 하게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이 가운데 노동 규율의 수단과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항목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ILO협약 105호는 아직 국내 비준 안돼...화물차 운전기사의 근로자성 부족도 변수

다만 현행법상 화물차 운전자는 사용자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근로자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까닭에, 화물연대의 파업은 엄밀한 의미의 '파업'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운송 거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05호 협약은 아직 국내에서 비준되지 않은 조항이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제재로 강제노동 부과를 금지한 내용이 국가보안법 등과 상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을 따를 국내법상 의무는 없는 셈이다.

단, ILO는 이런 핵심 협약에 대해서는 모든 회원국이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그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ILO 핵심 협약 8개 조항 중 105호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조항을 비준한 상태이다. 105호 미(未)비준 국가로는 미얀마, 통가 등이 있는데, 주요 국가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2012년에는 이윤석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업무개시명령 제도가 105호 협약을 위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 속기록을 보면 당시 정부는 이 제도의 폐지에 반대했고 의원들도 존치를 원하면서 업무개시명령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후 국회에 이를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현행 제14조 3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공공운수노조, ILO측에 긴급 개입 요청할 듯...ILO권고는 이행 강제성 없어

공공운수노조는 우리 정부가 ILO 핵심 협약을 위반했다며 질베르 웅보 ILO 사무총장에게 긴급개입을 요청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ILO는 노동자단체가 이런 진정을 내면 별도 노사정위원회를 꾸려 해당 정부에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이를 조사해 권고사항을 제시한다. 해당 정부가 ILO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ILO 이사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사안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최악의 경우 총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ILO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여서 이행의 강제성은 없지만 ILO는 최근 들어 노사정위원회의 권고사항이 담긴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어, 해당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동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비준되지 않은 조항이라는 점에서, ILO의 권고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 “화물연대 조합원은 근로자 아니라 업무개시명령이 합법적”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28일 광주 광산구 진곡화물차고지에 운행을 멈춘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2022.11.28. [사진=연합뉴스]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28일 광주 광산구 진곡화물차고지에 운행을 멈춘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2022.11.28. [사진=연합뉴스]

게다가 재계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화물자동차법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화주업체 측 재계 관계자는 "집단적인 운송거부 행위를 파업이라고 하려면 화물연대가 법상 노조로 인정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이에 따라 "화물연대는 화물자동차법에 규율을 받고 있는데, 정부가 이 법에 따라 발동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정부도 업무개시명령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화물차 운전자들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화물운송업체의 지시에 응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운송을 거부하더라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감안할 때, 이들의 집단적 운송 거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 이외에 적절한 대응수단이 없다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법률상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고, 개별적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상 기본권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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