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키우면서도 사람을 아낀 소탈한 仁德의 경영자
국가와 사회 위해 헌신한 군인 경찰관 소방관 각별히 챙겨
간소한 장례 원하는 고인 유지로 '비공개 가족장'
구 회장 타계로 'LG家 4세'인 구광모 시대 열릴 듯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3세.

LG그룹 관계자는 이날 구 회장이 가족이 지켜보는 다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출을 받았으며,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하면서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조용하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을 비공개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LG그룹 관계자는 "가족 외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게 유족의 뜻"이며 "이는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장손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만인 1995년부터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구 회장은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 애슐랜드대 경영학과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잇따라 졸업한 뒤 ㈜럭키에 입사했으며, 이후 럭키 유지총괄본부장에 이어 금성사 이사, 럭키금성 기획조정실 전무, 럭키금성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이밖에 LG상록재단 이사장과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 LG프로야구 구단주 등도 지냈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갔으며, LG그룹의 '기술개발력 제고'와 '세계화 추진' 등 제2의 경영혁신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룹 관계자는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용기 있고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결실을 보는 구 회장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사진은 2001년 평택시 LG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리펑 중국 상무위원장과 구본무 회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R&D)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룹 관계자는 "고인이 지주회사 체제 구축과 계열 분리를 마무리한 2005년 선포했던 이른바 'LG 웨이(Way)'는 여전히 그룹 경영활동의 기본이자 기업문화로 뿌리내려져 있다"면서 "미래 경영환경에 대한 선견지명은 '글로벌 LG'의 든든한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 씨와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딸 연경·연수 씨가 있다.

구 회장은 기업을 키우면서도 사람을 아끼는 '인덕(仁德) 경영'을 실천한 총수로 널리 알려져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때와 같은 '해고 대란(大亂)' 소문이 무성하던 2008년 그는 각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정이 어렵다고 함부로 사람을 내보내거나 (신규 직원을) 안 뽑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내부적으로 감원 계획을 세웠으나 구 회장이 이 발언이 당시 동아일보 특종보도로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고 결국 인위적 인원 감축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고인은 또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된 군인 경찰관 소방관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13년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희생된 경찰관 유가족과 2014년 7월 세월호 사고 현장 지원활동 후 소방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소방관 유족들, 2015년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특전사 군인, 같은해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수색활동을 하다가 북한의 지뢰도발로 중상을 입은 군인을 위해 성금을 내놓았다. LG가 2015년 신설한 'LG 의인상(義人賞)의 수상자도 대부분 이런 군인 경찰관 소방관들이었다.

한편 구 회장이 타계하면서 아들인 'LG가(家) 4세대'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LG 4세대' 경영 지휘권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최근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사업부장(상무)을 지주사인 LG의 등기이사로 내정하면서 구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공식화했다. 다음 달 29일 임시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으면 구 상무는 LG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상무는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2004년 고인의 양자로 입양됐고, 다음달 29일 열릴 ㈜LG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계기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전자장비(전망) 사업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등이 'LG 4세대 총수' 구 상무가 주력할 미래 사업 후보군으로 꼽힌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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