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8%대까지 치솟으면서, 임대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세입자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함에 따라, 전세 물건이 꾸준히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전세’ ‘역월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역월세에 대해서는, 세입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라 임대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라 임대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역전세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하락한 만큼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역월세’는 역전세가 늘어나면서, 전세 보증금을 깎아주는 수준을 넘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주는 ‘집주인 을(乙)’ 현상을 의미한다.

전세가격 하락 속에 쌓이는 전세물건, 집주인이 을(乙)로 전락?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역전세와 역월세를 맞았다’는 집주인의 사연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전세금 1억원 돌려드리고(역전세), 1억원에 대한 이자를 지원해 드리기로(역월세) 했다. 임차인이 이 조건에 협의해서 다행스럽게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전세 갱신 시기가 도래했는데, 해당 아파트의 전세금이 직전 계약보다 2억원이 떨어진 상황에서, 고심 끝에 집주인이 짜낸 방안이었다고 한다.

전세 물건이 시장에 쌓이면서, 집주인이 을(乙)이 됐다. ‘귀한 세입자님’을 모시기 위해 ‘입주청소 무료’는 물론 ‘이사비 200만원 지원’, ‘30만원 관리비 매월 지원’, ‘3년 계약도 가능’ 등의 지원책이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① 강남 3구 대단지 아파트들의 가파른 전세 가격 하락, 역전세 심화돼

특히 수도권 아파트 전세 가격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2년간 집값 상승의 선두에 있었던 강남3구 대단지 아파트들의 하락세가 가파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면적 84㎡는 지난 9일 12억3750만원(2층)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지난 6월 최고가 22억원(17층)과 비교하면 약 10억원이나 떨어진 가격이다. 인근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 역시 지난 19일 14억5000만원(19층)에 세입자를 들였는데, 이는 지난 5월 기록한 23억원(19층)에 비하면 8억5000만원이나 하락했다.

송파구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해만 해도 14억~16억원대까지 전셋값이 올랐던 이들 단지는 최근 9억원대로 떨어졌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 역시 지난 21일 8억원(1층)에 전세 거래가 체결되면서, 지난 6월 15억8000만원(20층) 대비 전세가격이 반 토막 났다.

해당 단지의 집주인이 현재 세입자를 붙잡으려면 보증금 5억원 이상의 거액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새로운 세입자를 바로 구해도 수억원씩 낮게 거래가 체결돼, 더 이상 보증금을 '돌려막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말부터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역전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걸린 전월세 매물. [사진=연합뉴스]
올해 말부터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역전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걸린 전월세 매물.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역전세’ 현상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역전세난과 주택가격 변화의 시사점' 연구보고서에 따른 분석이다.

임상빈·이승빈 지방세연구실 연구원은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가격이 급락하면서 전세시장에서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며 "올해 대도시 주택 입주물량이 적은 시기였음에도 역전세난이 발생했는데, 이는 높은 전세자금 대출금리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저금리 시기인 부동산가격 상승기에는 전세자금대출이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극대화해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하지만, 고금리 시기에는 전세자금대출이 부동산가격 하락을 촉진해 역의 레버리지 효과로 집값 하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올해 말부터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역전세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다만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우리 정부도 '11·10 대책'으로 대출규제 등을 완화하고 있어, 주택시장의 급락 상황은 다소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② 역월세 현상은 깡통 전세의 위험 신호, 전세 보증금 지키기 위한 조치 필요해

전세 보증금을 깎아주는 수준을 넘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는 ‘역월세’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입주 물량이 몰려 매매·전세가격의 하락이 두드러지는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전세 가격 하락이 가팔라진 강남3구에서도 최근 역월세가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역월세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첫 등장했다가, 이후 2000년대 초반 카드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부동산시장에 침체의 그늘이 드리울 때 잠깐 발생했다는 것이 부동산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다가 최근 2~3년간 집값 급등기에 과도한 대출을 일으킨 집주인들 중에서는 낮아진 전세금을 돌려줄 여력이 부족해, 역월세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이 멈추기까지, 전셋값 하락과 함께 역월세 현상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집주인의 이런 사정은 안타깝지만, 역월세 몇 푼에 만족해서는 큰일 난다”는 조언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역월세를 제시하는 주인을 무턱대고 믿다가는 전세 보증금을 날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역월세 현상은 깡통 전세의 위험 신호로, 전세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역월세 현상은 깡통 전세의 위험 신호로, 전세 보증금을 떼일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기는 곳은 위험하다”며 “깡통 전세 위험을 낮추려면,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과거 전세계약을 할 때는 ‘70%’룰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전세보증금과 근저당최고액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집이 경매 등으로 넘어갈 경우에도 전세 보증금을 상당부분 돌려받을 수 있는 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 평균은 이미 70%를 웃돈 지 오래이다. 연립·다세대주택(빌라)는 90%를 넘어선 곳도 있다. 최근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가운데 매매가격이 더 많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전세가율은 더 치솟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역월세 현상이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되면서 대출이자 부담으로 월세 전환이 늘고 전세 물건이 적체되면서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잇따른 금리 인상 여파로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다"며 "임차인들은 보증금 보호를 위해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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