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약 10%(6만 1000개) 줄이는 내용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정부가 내년 노인 일자리 예산을 삭감함에 따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퍠륜 예산’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대한은퇴자협회 회원들이 지난 9월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등에 반대하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은퇴자협회 회원들이 지난 9월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등에 반대하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당의 이런 비판에도 기재부는 노인 일자리 예산과 관련해서 “노인 일자리 사업 체질 개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윤석열 정부는 노인 일자리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 비중을 높이겠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왔다.

민주당과 기재부 중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재부 입장이 사실이다. 기재부 안에 따르면 내년 노인 일자리 수와 예산규모는 증가하게 돼 있다. 공공형 일자리만 감소할 뿐이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이 부분만을 침소봉대해서 ‘패륜 예산’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인 복지를 축소한다는 거짓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노인 계층의 불만을 선동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국회 심사 과정에서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공형 일자리까지 추가로 늘린다면 내년 노인 일자리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① 내년도 노인 일자리 수=공공형 감소해도 전체 2만9000개 증가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는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보건복지부 소관 공공·민간·사회서비스 일자리와 고용노동부 소관 고령자 고용장려금 일자리로 나뉜다. 이중에서 정부가 당초 줄이겠다고 한 것은 보건복지부 소관 중에서도 ‘공공형’이다.

공공형은 일하는 시간이 월 30시간으로 짧고, 급여는 월 27만원 (내년 기준)으로 다소 낮은, 단순노무직 일자리를 말한다. 주로 70대 이상 저소득 노인이 정책 대상이 된다.

이와 달리 주로 지역사회 돌봄시설에서 일하는 ‘사회서비스형(월 급여 59만4천원)’과 소규모 점포에서 일하거나 배송·운송 등을 하는 ‘민간형(1인당 연간 사업비 267만원)’은 직업 경험이 더 풍부하고 연령대가 낮은 ‘베이비부머’ 세대 수요에 맞춰져 있다. 노인이 기업과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정부 예산이 기업을 통해 근로 노인에게 지원되며 근로시간이 공공형에 비해 길고 급여도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고용장려금’은 고령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주는 지원금으로, 노인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고령자를 신규 채용하거나 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 2년 동안 한시적으로 1인당 월 10만∼3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일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복지부 소관 노인 일자리는 82만2000개로 올해(84만5000개)보다 2만3000개 줄어든다. 공공형 일자리는 올해 60만8000개에서 54만7000개로 약 10%(6만1000개) 감축된다. 공공형을 줄이는 대신 민간형과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각각 2만3000개(16만7000개->19만개), 1만5000개(7만개->8만5000개) 늘렸다.

다만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고령자 고용장려금 일자리까지 고려하면 2만9000개가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고령자 고용장려금 대상 일자리는 올해 9000개에서 6만1000개로 5만2000개 늘렸다. 늘어난 노인 일자리 증가폭은 공공형 감소폭을 상쇄하고도 2만9000개가 늘어나는 셈이다.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심각하고,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하는 고령층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심각하고,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하는 고령층이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② 일자리 예산 규모=지난해보다 0.4% 증가...일자리 예산이 줄었다는 이재명의 선동은 거짓

당초 노인 일자리와 관련한 복지부의 내년도 예산은 1조4478억원으로, 올해보다 56억원(0.4%) 늘어난다. 일자리 수는 줄지만, 예산은 증가한 것이다. 1인당 월 급여가 적은 공공형은 줄이는 대신, 월 급여가 더 많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가 지난 10월 4일 노인 일자리와 관련해 “예산을 줄이면 그분들은 폐지를 주우러 길거리로 나서야 된다. 이것은 패륜 예산”이라고 강조한 것은, 팩트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게다가 지난 7일 추경호 부총리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식화함에 따라, 일자리 예산뿐만 아니라 공공형 일자리 자체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정부가 내부적으로 실시한 일자리 유형별 연령 비중 조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르면 공공형의 89.0%는 70대 이상이 수혜 대상이다. 민간형(33.7%) 사회서비스형(56.5%)의 70대 이상 비중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일자리’ 측면보다 ‘복지’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애초에 공공형은 2004년 일자리와 노인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던 사업이다. 도입 첫해에는 참가자의 90%가 70살 미만이었지만, 지금은 90%가 70살 이상이다.

따라서 기재부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 데는 현실적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세제·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노인 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의힘도 이에 동의한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내년 경기 둔화·고용 한파 전망 속 노인 일자리를 포함한 직접 일자리가 취업자 수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로 분석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공형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대해 “노인 일자리 덕에 전체 일자리가 늘어난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안 되지만, 경기 하강 대응 측면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장기적으로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일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공공형 일자리 대상자 중 60대는 충분히 민간·사회서비스형으로 이동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며 “근로 능력이 취약한 초고령자는 공공형에 남아 있되, 다른 이들은 더 넉넉한 급여를 제공하는 민간 일자리로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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