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 "도청 대책이었을 것" 등 美日·유럽 정보당국자 분석 인용
"통역 있던 시진핑 때와 달리 단둘…기억에만 의존 불가피, 한쪽 거짓말도 가능"
"美, 文 전한 김정은 발언 진의 못믿어 폼페오 두차례 방북으로 살펴"
16일 南北 고위급회담 취소 들어 "文 중개외교·정상간 독대 위험성 재확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고 있다. (왼쪽) 이달 7일 중국 다롄에서 만난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산책하고 있다. (왼쪽) 이달 7일 중국 다롄에서 만난 김정은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30분 넘도록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독대한 것을 두고, '도청 방지'는 물론 비공식적인 언어를 통해 문 대통령을 외교적으로 기만하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정보기관원이 해독한 김정은의 산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이 ▲4·27 남북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 ▲지난 7~8일 중국 다롄에서의 북중정상회담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진 산책을 미·유럽 정보당국자들의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 신문은 2회 산책을 두고 "미국, 유럽의 정보 담당관의 시각이 일치하는 것은 야외에 나온 것이 북측이 요구한 도청 대책의 일환이었다는 점"이라며 "김정은에게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미북 정상 회담을 앞두고 속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런 관측의 근거로 신문은 "자국의 치안 기관원들조차 완전히 불신하는 것은 독재자의 일상"이라며 "내부의 숨은 불만 분자에 의해 대화 내용이 미국 등에 노출 위험은 남는다"고 봤다.

또한 "도청기를 설치하기 쉬운 실내가 아니라 경비원도 멀리하고 야외에서 단둘이 걸으면 이러한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다"며, 유럽 정보기관원 언급을 인용해 "만일 실외에 많은 도청기를 둘 수 있어도, 정상이 무작위한 발걸음으로 산책하면 대화의 전모를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옥외로 나오면 각국의 정찰 위성에서 정상의 모습이 포착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존 위성 중에서는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대화를 읽을 만큼 해상도가 발달한 것이 없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회의 산책간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통역의 여부"라고 밝혔다.

다롄 북중회담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 못하는 두 정상을 위한 통역에 의존했지만, 남북회담에선 두 정상이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완전히 단 둘이 산책했다는 것이다.

외교 용어로 '테타테(tete-a-tete)'라고 불리는 비공식 1대 1 회담에서도 통역 여부에 따라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미·일 외교 소식통의 이야기다.

쌍방의 통역이 있으면 그 어떤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통역의 청취를 바탕해 사무적으로 회담 기록이 만들어지며 그 기록은 외교문서로서 일정한 '무게'를 갖는다.

하지만 오로지 정상 둘만의 대화라면 기록으로 남기려 해도 그 내용은 정상의 기억에만 의존하게 된다. 회담 내용에 관한 쌍방의 인식 차가 벌어져 나중에 '말했느냐 말았느냐' 다툼이 발생한다.

둘만의 자리라고 상대가 본심을 드러내는 줄 알게 되는 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에 한쪽이 거짓말로 상대를 농락하는 것도 쉬워진다는 설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핵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경위에서 보듯 북한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의한 외교 공작을 '자랑'으로 여겨왔다"며 "미·유럽 정보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은 시 주석에게는 본심을 말할 필요를 느꼈지만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기만 공작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북 정상회담 준비를 맡은 미 CIA와 국무부도 '문 대통령이 설명하는 김정은의 발언이 전부 진의를 표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지난 3월말 당시 CIA 국장으로서 방북한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5월9일 재차 방북해 비핵화 등에 관한 김정은의 의도를 살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그 후의 전개를 보면 한국 측이 북한의 외교 공작에 휘둘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 "한국과의 우호 무드를 띄우고 온 북한은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장관급 회담 무기한 연기를 한국에 통고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설명에서 '김정은이 이해를 표시하던' 한미 합동훈련도 강력히 비난하며 미국 측이 요구한 비핵화에 대한 반발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애초부터 한국을 잘 다루고, 미국 측이 정상회담을 중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끌려오도록 한 뒤 갑자기 엄격한 요구사항을 들이대 양보를 얻어내는, 일련의 북한의 움직임에는 그런 교활한 전략이 비친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신문은 "어쨌든 단 둘의 정상회담에서 상대방에게 속은 경우의 국익의 손실은 헤아릴 수 없다. 공작에 걸려든 '톱'(top, 지도자)을  서둘러 부하가 궤도수정 해주기도 극히 어렵다"며 "자국에 대한 동맹국 등의 신뢰 추락에도 이어질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의 산책은 북한에 유화적인 문 정권의 중개 외교의 위험함 뿐만 아니라 정상의 '테타테'에 따라붙는 리스크를 미·일·유럽 정보당국자들이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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