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개념이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훼손
'강압으로부터의 자유'가 '경제적 소외로 부터의 해방'으로 변질
사회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구현한다며 노예국가를 낳는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공존할 수 없어
민주주의는 자유에의 평등을 추구, 사회주의는 제약과 예속의 평등을 추구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요즘 헌법에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웃지 못할 논란들이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2일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을 공개했다. 지난해 5월 국정 역사 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인정으로 바꾼 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새로운 집필기준 시안을 마련해 교육부에 제출한 것이다. 이 시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하도록 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안 논의 과정에서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려 했다가 자유와 민주를 지향하는 국가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철회한 바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명기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경제에서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이라는 용어들이 정부의 직제부터 정책에 이르기까지 부쩍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원래 자유(freedom)는 ‘강압으로부터의 자유’, ‘다른 사람의 자의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즉 한 개인이 천부의 인권을 가진 주체로서 아무런 간섭과 속박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의미한다. 유럽에서 정치적 자유는 청교도혁명(1640) 명예혁명(1688)에 이어 프랑스혁명(1789) 1848년 혁명 등 전제군주로부터 시민들이 자유를 쟁취해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18~19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달했다.

경제적으로는 이러한 정치사회적 배경과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토대로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1776)을 발간하고 시장의 경쟁과 노동의 분업에 의해 국부가 증진된다고 주장하면서 자유론을 이어 받았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정치경제와 조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1817)라는 책을 발간하고 교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당연하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이 규제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다. 경제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경제가 활기를 띄게 된다. 근대 유럽 번창했던 상업도시들의 경제활동이 좋은 예다. 베니스 암스테르담 런던 등 주로 국제교역을 통해 근대 유럽의 상업도시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산업혁명도 하고 문예부흥도 하면서 오늘날 유럽 선진국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19세가 말~20세기 초에 이르러 경제적 측면에서 자유의 개념이 시회주의자들에 의해 ‘새로운 자유(a new freedom)’라는 개념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활동의 자유보다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 경제적 자유는 ‘궁핍으로 부터의 자유’, ‘경제적 소외로부터의 해방’ 이라는 의미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궁핍이나 경제적 소외로부터 해방되거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무산계급이나 저소득계층이 보다 많은 몫을 나눠가지는 분배가 기본이 되는 경제적 평등 차원에서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18세기 중반 일어난 산업혁명이 100여 년을 경과하면서 소득분배구조 악화, 노동자계급의 열악한 생활 등이 정치경제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맑스(Karl Marx)에 의해 『자본론』(1867)이 발간되고 이를 구현하고자 했던 러시아혁명(1917)이 발발한 것을 계기로 유럽전역에 사회주의가 열병처럼 확산된 것이 경제적 자유 개념이 변질된 계기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생산수단의 사유를 토대로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 사유재산권, 법치가 보장되는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기업의 경제활동은 이윤동기나 케인스(Keynes)가 ‘동물적 근성’이라고 하고 슘페터(Schumpeter)가 ‘창조적 파괴’라고 명명한 기업가정신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기업투자환경을 개선해 기업가들의 왕성한 투자활동을 북돋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이 생긴 가계는 소비를 하면서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의 자유보다는 경제적 정의나 평등을 목표로 정부당국의 계획에 의해 경제가 운용되는 체제를 의미한다. 계획의 목적은 보편적 복지나 공공선이 주장되기도 한다. 생산수단의 사유는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을 제외하고는 인정하지만 경제적 정의나 평등 달성을 위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 많은 경제체제다. 공산주의는 아예 생산수단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구분된다. 여기서는 시장경제에서처럼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생산’을 중앙 계획당국의 계획에 의해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일을 한 만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번 재산 즉 사유재산의 보장이 철저하지 않아서 열심히 일할 동기가 약해져 생산성이 하락하게 된다. 자원배분도 시장이 아니고 당국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져서 비효율적인 배분이 많아져서 결국은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유럽의 사회주의국가들은 물론 구소련, 동유럽, 개혁 개방 전 중국 베트남 등 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남미의 좌파국가들도 모두 몰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작은 보편적 복지나 공공선의 증대라는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들어 오히려 서민들이나 저소득계층의 빈곤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보이고 있다.

더욱 문제는 현대경제구조는 세세하게 연결된 분업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 부분의 경제적 규제나 정부의 개입은 모든 부문의 규제나 개입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규제나 개입정책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 또 다른 규제나 개입을 하게 되어 종국적으로는 모든 개인을 규제하고 개입하는 전체주의로 가게 된다는 경고다. 개인의 목적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개인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사회적 목적이 중요하게 된다. 마침내 개인의 자유가 완전히 말살되는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나타난 것이 독일민족사회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나치즘)라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또는 국가주의)가 결합된 것이 민족사회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인데 이 경우 개인의 자유는 완전히 말살된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교훈이다.

이러한 현상을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 (1944) 이라고 명명했다. ‘신자유의 길(The Road to New Freedom)’이 아니라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힐레르 벨록(Hilaire Belloc)의 『노예국가』(The Servile State)(1913)의 경구도 주목할 만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사회주의의 원리의 효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부모 가운데 누구도 닮지 않은 제3의 길, 즉 노예국가를 낳는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이다. 정치적 자유도 인정하면서 경제적 평등을 구현한다는 유토피아적인 주장으로 1980년 이전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등 유럽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추구했던 노선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 두 상반된 이념과 주장은 결코 공존할 수 없음이 이미 지적되어 왔다. 토크빌(de Tocqueville)은 “민주주의는 개인자유의 영역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를 제한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가치를 개별인간에게 둔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모든 개인을 일개 숫자에 불과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평등이라는 단어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민주주의는 자유에의 평등을 추구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제약과 예속에의 평등을 추구한다.”

유럽사민주의도 1990년 대 들어 경제가 침체하면서 많은 변모를 거듭하며 변신해 왔다. 영국 노동당은 신좌파(new left) 제3의 길을 선언하고 독일 사민당은 중도좌파를 선언하고 하르츠개혁 등 각종 개혁을 추진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슈뢰더 총리와 영국 노동당의 블레어 총리는 1999년 런던에서 ‘사회적 개념’보다 ‘경제적 개념’을 강조한 유럽사회민주주의 현대화를 규정한 “슈뢰더 블레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동 선언 이후 노동개혁을 중심으로 사회적 개념에 치우쳤던 많은 정책들이 경제적 개념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개혁되었다. 그 결과 독일과 영국 경제는 다시 부활해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루 빨리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느냐 마느냐 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경제면에서도 과도하게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개념의 정책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포용하는 정도로,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글로벌코인평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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