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좌우 어느 쪽도 정국 주도력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두 진영 모두 뭔가 해낼 능력은 없고 방해할 능력만 발달한 상태
현재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정국 대응은 너무 느슨하고 게을러
민주당 단일대오 언제까지 유지되겠나? 원칙론적 대야 접근으로 '갈라치기'해야
문재인 척결 위해서도 이재명과 영수회담은 반드시 필요

청담동의 어느 고급 카페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여 명과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태원에서 무려 15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은 물 만난 듯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탄핵과 퇴진에 대한 요구마저도 거의 일상화된 느낌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나라 정치의 일상은 과거 어느 시대, 어느 정권과도 비교 불가능할 만큼 살풍경해졌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허니문 기간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대개 정권 말기나 최소한 정권이 반환점을 돈 이후에나 거론되곤 하던 정권 퇴진 요구가 일상화됐다. 요즘은 정권 퇴진이나 탄핵 요구 정도는 야권이 내세우는 정권 공격 메시지의 토핑 정도로 취급되는 느낌마저 있다.

정치적 공격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수법은 적절한 재료와 논리를 결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대중들이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익숙한 클리세를 동원하는 것은 확실한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좌파는 노무현의 등장 이후 점점 더 이런 정서적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특히 노무현의 자살 이후 좌파의 정치적 공격은 거의 100% 비극적 소재에 대한 대중들의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발전해왔다. 5.18과 세월호가 주력 무기지만, 그 소재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형 비극이 추가될 때마다 좌파들은 자신들의 정서적 무기의 리스트가 더 풍부해지는 것에 환호작약하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 대해 ‘관 장사’ 또는 ‘시체 장사’라는 비아냥이 따라붙곤 하는 게 편견만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정서라는 것은 쉽게 자극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치기도 쉽다. 그래서 정서적 무기는 일회성인 것이 원칙이다. 이게 일상화되면 사람들은 자극에 점차 무감각해지게 된다. 정서적 자극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만, 그 반응의 깊이는 얕아진다. 정서적 반응의 민감화와 둔감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서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스피드광이 끊임없이 가속도가 주는 자극에 매달리고, 마약 중독자가 점점 더 약효가 강한 마약을 찾아 헤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박꾼들도 점점 더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나는 도박을 찾아 옮겨다니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구태의연한 정치적 명분과 싸구려 클리세에 의존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좌파의 정치적 미래는 암울하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하는 우파 진영의 어젠다 창출 등 정국 주도력이 워낙 빈약하기에 당장은 좌파가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대로 가면 우파가 정국 주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좌파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이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표면적인 정치 공세는 좌파가 주도하고 있지만, 이게 윤석열 정권에 대한 결정타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도 비록 낮기는 하지만 추가 하락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좌파 진영은 2016년 촛불시위에 이은 탄핵 정국의 재연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다는 분석이 다각도로 제기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좌우 어느 쪽도 정국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리한 대치 국면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것은 좌우 어느 진영의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호(號)가 진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좌우 양 진영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낼 능력은 없고, 오직 상대방이 결실을 내는 걸 방해할 능력만 발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정치적 타격은 더불어민주당 등 좌파 진영이 더 크게 입을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결국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집권 세력은 정국 운용에서부터 국가의 진로 설정까지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좀더 적극적으로 정국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정국 대응은 너무 느슨하고 게으르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도, 창의력도, 상상력도 엿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는 느낌이랄까?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지금 야권을 움직이는 힘은 분노와 공포이다. 분노는 문재인이 임기 내내 40%대를 웃도는 지지율을 유지했음에도 정작 대선에서는 기본 10년 집권의 관행(?)을 깨고 아슬아슬하게 0.7%p 차이로 정권을 넘겨줬다는 데 따른 것이다. 공포는 지난 5년간 정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 탈법과 무법,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만방자하게 국정을 망가뜨린 데 대한 책임 문제가 걸려 있다.

문제는 야권 전체가 이런 분노와 공포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다 함께 공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이다. 누군가가 이런 비극적 결탁의 구조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이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번에 걸쳐 제안한 바 있는 여야 영수회담의 수용을 적극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과 같이 첨예한 여야 대치 및 갈등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의 영수회담을 제안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치권 나아가 국민적 해빙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대통령실이나 여권 그리고 우파 진영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갖가지 의혹과 관련해 영수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재명 대표는 국회 제1당을 대표하며, 대한민국 국민 거의 절반의 정치적 선택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설혹 그에 대한 사법 처리가 현실화된다 해도 그가 가진 대표성은 지워질 수 없다.

이대로 이재명 대표가 사법 처리될 경우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의 정치적 분노와 원한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반작용으로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상징성이 훨씬 커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천하에 없는 증거와 법리를 동원해서 그 사법 처리를 합리화한다 해도 그런 이성적 설득이 먹혀들만한 조건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나 사법 처리를 면제해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애초에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사법체계가 그리 간단하지도 않다. 하지만, 수사와 사법 처리와는 별도로 정치적으로 대화할 것은 대화하고, 풀 것은 풀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야 설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처리가 이뤄진다고 해도 야권의 감정적 앙금과 원한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권은 여러 차례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다. 그 가운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영수회담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국이 꽉 막힌 상황에서는 영수회담이 일종의 돌파구 역할을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수회담의 의제는 여야가 조율하기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영수회담을 통해서 반드시 이재명 대표에게 얻어내야 할 언질은 분명히 있다. 영수회담은 바로 이것을 얻기 위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 전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과의 오찬 모임에서 했다는 발언에 그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종북 주사파는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다. 반자유·반국가·반헌법세력이며, 이들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재명 대표가 이 대원칙에 공감하고, 이 원칙을 중심으로 여야간 협치를 추진하는 데 합의하면 이번 영수회담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돤다. 애초부터 여기에 대한 합의가 영수회담 성사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 맞다.

이재명 대표가 이 대원칙을 부정할 수 있을까? 거부할 수 없다고 본다. 만일 거부한다면 그건 스스로 반자유·반국가·반헌법세력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때부터는 말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반체제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상대해주면 된다. 그때는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정치적 명분을 장악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금 진퇴양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야권의 정치 공세는 거세지만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없다. 이대로 시간은 흘러간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일종의 공범의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규율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단일대오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영수회담은 이재명 대표에게 거의 유일한 정치적 활로라고 할 수 있다. 영수회담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어내느냐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정치 역량에 달린 문제지만 사실 영수회담의 성사 자체가 이재명 대표에게는 크나큰 정치적 선물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국민의힘이 또 하나 기억해둬야 할 사실이 있다. 지금 좌파 진영은 국민 대중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대중이 모두 좌파 이념이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들은 심정적으로 정치적 편향을 갖고 있을뿐 정치적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을 좌파 진영의 핵심 이념 집단과 분리해낼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핵심 주사파를 분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과 당 밖의 이념집단들과의 격리도 반드시 수행해내야 할 과제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의 연관 속에서 호가호위하며 정치권 안팎에서 존재감을 유지해가는 시민사회 원로들이나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을 분리해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 당권파 및 당 대표와의 정상적인 관계 설정이 선결 과제이다. 영수회담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의제 설정은 윤석열 대통령 등 여권이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정상화를 위해서 가장 핵심 이슈인 문재인 척결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문재인이 끼치고 있고 앞으로도 끼칠 폐해는 이재명 대표와는 비교 불가이다.

문재인은 반대한민국 주사파 진영의 정치적 상징자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의 정치적 권위와 영향력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문재인이 퇴임 이후 더욱 오만방자해지는 것은 이재명 대표가 자기 위상을 찾지 못하는 현실과도 관련이 깊다.

문재인 척결을 위해서도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재명과 문재인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오월동주 관계이다.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도 문재인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죄수의 딜레마 같은 구조로 엮여 있는데, 그 갈등 구조를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정치적 무능력 탓일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실의 정무 기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서 설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존재감이 제로인 상황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실은 눈에 띄지 않지만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주어야 한다. 지금 대통령실은 그런 믿음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푸는 핵심 고리가 여야 영수회담이다. 상황을 보는 선입견을 털어내면 문제가 의외로 단순명료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주도적으로 꽉 막힌 정국을 푸는 해법을 제시했으면 한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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